학위 인증 후기 – 2.(좀 이상하지만) 괜찮은데 스위스?

Policy Korea

스위스의 사립대학 민간인증 기관인 eduQua의 심사를 받고 귀국했던 날 밤에 쓴 글이다.


국내 대학은 설립 전에 대략 2년 정도 교육부의 심사를 받고, 졸업생은 커녕 입학공고를 하기 전에 사전인가를 받아야 한다.

심사 내용 중, 인적요건과 물적요건을 다 충족시키려면 수도권에선 대략 2,000억원 남짓이 필요할 것 같고,

지방으로 내려가도 최소 500억은 있어야 된다. 대학원대학처럼 수익성재산 요구조건이 100억이어도 300억은 있어야 될 것 같다.

심사받는 2년간 인적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뽑은 직원들에게 수입 0원 상태로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줘야하는건 말할 것도 없다.

사이버대학도 수익성재산 35억, 토지/건물 요건 충족시키려면 최소 100억이다. 수도권은 300억 정도, 서울시내는 그 이상을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스위스나 미국의 공식적인 인증은 정부 기관이 지정한 민간기관에서 실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교육을 다 받고나서 졸업생이 생기고 나서야 심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초고속으로 진행해도 3기 졸업생이 나오는 시점에 보통 사후인가가 나온다.

보통 신생 학교는 그런 준비를 완벽하게 다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Sub standard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를 인가해주다가는 지정 민간기관 자체가 지정 취소를 당하니까 빡빡하게 심사하는데,

한국인 입장에서 당황스러울만한 부분이, 규정 안에 인적요건과 물적요건에 대한 구체적인 요건 이야기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상세 요건 대신, 규정상 표현만 놓고보면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Infrastructure를 갖고 있고, 실제로 학생들이 우수한 교육을 받고 졸업해서 시장에서 선호하는 능력자가 되는지가 중요하다.

(Source: AAQ – Swiss Accreditation Council(SAC))

위의 스위스 연방정부 인가 요구조건을 보면 알겠지만,

상식적인 항목인 a, b, h, i와 반드시 졸업생이 있어야한다는 g 항목을 제외하더라도,

c, d, e, f 항목 어디에도 구체적으로 한국처럼 수익성 재산이 300억, 토지 면적 얼마 이상, 건물 연면적, 건축면적 얼마 이상 같은 이야기가 없다.

같은 문서 후반에 보면 Distance learning인 경우, 실험 연구 교육 등등 각각의 상황에 맞춰서 심사가 진행된다는 말도 적혀있다.

(특히 a는 스위스의 국가 설립 철학이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사고의 자유, 교육/연구의 자유, 나아가 학교건 뭐건 사업을 온갖 규정으로 막지않는… 여긴 나같은 자유주의자 기업가에게 천국인 나라다.)

 

해외 대학 인증은 하나같이 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게 유지되느냐 (위의 d 항목)에 대해서 엄청나게 강조를 해 놨다.

위에 링크 건 인증 절차 설명 문서도 50페이지 중에 무려 20페이지를 d 항목에 대한 부가 설명으로 채워놨다.

특히 국내 요구조건과 겹칠만한 d항목의 Resources라는 세부 섹션 상세 사항을 봐도,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문제가 없을지를 담보할 수 있는 설비가 있느냐를 놓고 따지지,

국내처럼 건물 크기와 땅 넓이를 재는 뻘짓 따위는 없다.

 

좀 더 나아가면, 국내는 대학을 못 만들게 막아버리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반면,

스위스에선 For-profit university라고, 학교도 수익창출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대학 설립이라는 사업을 권유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단, Sub standard 학교를 인가해주는 일은 없도록 Quality assurance라는걸 엄청나게 강조하더라.

그리고, 그 Quality는 토지, 건물, 수익성재산, 교수 숫자 같은 지정된 값이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 수준이 실제로 높게 나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항상 사후 인증으로 진행되고.

낮은 교육 수준을 공급하는 학교는 Accreditation을 못 받거나, 결국은 취소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덕분에 유럽 대학들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

A대학 수석이 B대학 꼴등 수준은 한국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겠지만, 유럽은 그런 일이 극히 드물다.

속칭 Diploma mill(학위 공장)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처음 설립을 고민하던 당시에 어느 한국인이 미국에 온라인 대학을 만들어서 한국인 학생을 받았는데, 무허가… 같은 단어 기사와 함께 구속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같은 상황이 될까봐 두려웠고, 솔직히 말하면, eduQua에서 합리적인 응대절차를 밟아주지않고 외국인이라고 차별했었으면 처음부터 포기했었을 것이다.

다만, 짧게나마, Entry level에 불과한 수준이나마 해외대학 인가 절차를 겪고난 요즘, 졸업생이 나올 때까지는 인가 신청도 못 하는 구조의 시스템을 갖춘 나라들에

국내 기준을 들이대면서 학교 설립 첫 날부터 인가 없다고 무허가라며 구속시키는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자세한 속사정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학교 인가만큼은 그 설립자 분이 얼마나 괴롭게 절차를 밟았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이제 나도 학교를 더 키우기 위해 상위 인가를 받으려고 학생들, 교수진들에게 논문 압박을 하는 길을 택할지,

아니면 내가 연락했던 대다수의 스위스 학교들처럼 적당히 교육만 시켜서 졸업시키는, 그래서 인가에 큰 욕심을 안 내는 길을 택할지

결정을 해야할 타이밍이 곧 올 것이다.

 

어쩌면 eduQua 이상의 더 상위 인가를 도전하지 않는 많은 학교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오버해봐야 얻을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겠지.

제대로 논문 쓰는 교수진이나 논문 쓸 능력을 익힐 수 있는 학생을 받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쪽 전공 기준으로, 도메인 지식 같은 세부 전공 주제를 떠나서, 수학, 통계학을 언어로 활용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거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다.

나 역시 한국인을 대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실험(?)을 하는 중인데, 경영학과도 살아남으니 성공한 것 같긴 하지만, 공대는 말할 것도 없고, 통계학과도 은근 실패 사례가 있을 정도니까.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에 내가 이정도면 그래도 괜찮.. 이라는 잣대를 잡았을 때 통과할 수 있는 논문 쓰는 교수진 그렇게 많지 않다. 하물며 학생들이야…

다만, 내 성격상 더 이상 상위 인가를 도전 안 한다고 다른 학교들처럼 학위장사로 방향을 트는 건 도저히 못할 짓인것 같다.

차라리 학교 문을 닫았으면 닫았지.

 

왜 하필 스위스?

왜 하필 스위스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었는데, 대답할 항목들이 너무 많지만,

일단은 아래의 스위스 연방정부 지정 심사기관 담당자의 메일 답변을 보자.

스위스는 학위 인가 (Accreditation)와 학위 인증 (Recognition)이 다르게 운영되는 특이한 나라다.

무슨 말인가하면, 정부 산하 기관에서 Accreditation을 받아도 다른 곳에서 Recognition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정부의 “관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국인에게는 황당한 이야기지만,

스위스 사람들 뇌 속에 정부라는게 “연방 정부”가 아니라 “지방 정부”고, 지방 정부마다 규정은 다 멋대로고, 마음에 안 들면 옆 지방으로 이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주”라는 개념이 없는 우리에게는 A주에서 Recognition 되는 학위가 B주에서 안 된다는게, 한 나라인데 왜 그러냐 싶겠지만,

심지어 한국-일본-중국 사이에서도 서로간 학위를 인정해줘야 할 의무가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미국 하버드에서 받은 석사 학위로 한국의 서울대에 박사 학위 지원에 쓴다던가, 혹은 반대로 Recognition 받을 수 있다는 법적 조항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기관의 선택에 따른다는 것이 현재 국제 전례고, 그러니 좀 더 영역을 넓힌 Recognition이 가능하도록,

Accreditation을 한 개 주, 한 개 국가에서가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하버드 학위를 인정 안 해주는 기관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스위스가 재미있는 나라인게, 학위 인가는 정부 산하 조직, 민간 조직 등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받고 운영이 가능하고,

특정 인가가 엄청난 이득을 받는게 불평등이라는 민간의 반발 때문에 아예 교육부가 학위 인증에 직접 관여하질 않는다.

대학 같은 교육 기관을 기업이 만들어서 운영해도 되도록 열린 시장, 즉 교육법이 아니라 상법이 대학 교육을 규제하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학자금 지원금 정도 말고는 달리 개입도 없고, 규제도 안 한다.

거기다 연방(Federation)정부와 주(Canton) 정부 사이에서 정하는 내용도 다 다르다.

우리 SIAI 같은 경우도 어차피 온라인 대학이니까 Canton 중에 우리에게 가장 우호적인 곳을 골랐다.

 

대신 University라는 이름만큼은 정부가 지정하는 기관만 쓸 수 있도록 제한을 걸어뒀는데,

비슷한 내용을 아래의 “스위스 교육부(?)”에서 받은 답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민간 기관의 경우, 연방 정부 고등교육법(?)인 HEdA 규정에 따라 SAC인가가 없으면 University라는 이름은 못 쓰지만,

그래서 자격증이 필요한 의료, 교육, 법 같은 분야는 못 진입하지만, 그 외 전공 학위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학위는 받아주는 사람이 결정한다.

eduQua 인가는 민간 인가고, 스위스 연방정부의 “인가 (Accreditation) 및 인증 (Recognition)”과는 관계가 없으니,

차라리 주(Canton) 정부를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답변을 해 놨다.

그럼 주 정부 관계자는, 너네가 이상한 사업하는거만 아니면 별로 신경 안 쓰니까 HEdA 규정 어기는거 아니면 너네 알아서 해라는 식이다.

(물론 안 그런 빡빡한 주 정부도 있다는 이야기를 설립 당시 변호사에게 듣긴 했었다.)

 

 

이런 좀 황당한 내용을 겨우 이해하고 난 다음에 다른 스위스 대학들 중에 내가 아는 곳들을 이곳저곳 뒤져봤는데,

스위스 남서부 Lausanne에 있는 IMD라는 유럽 1-3등을 왔다갔다하는 초특급 유명 MBA 프로그램은 스위스 정부 인가 그 딴거 쳐다보지도 않고 있더라.

(Source: IMD)

홈페이지에 가봐도 3개의 유명 MBA 학위 인증 기관에서 Accreditation 받았다고 자랑하는 내용 밖에 없다.

좌측 하단에 *Acceptance of ECTS credits is determined by external authorities 라고 된 부분이,

한국식으로 치면 자기네 학점을 다른 기관에서 인정할지 말지는 그 기관의 결정이라는 뜻이다. (Link)

한국에서는 이런 문구를 보면 가짜 학교라고 말이 나오거나, 커뮤니티 정신병자들이 공격 대상으로 삼겠지만,

유럽에서 IMD MBA는 Harvard나 Stanford MBA정도급 대우를 받는다. IMD가 꿈의 학교인 학생들도 많다.

물론 Federal accreditation을 안 받았다고 Fake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Link)

 

이 문제로 이곳저곳 질문을 보내보니, 학위 인증 (Recognition)은 사실 자기 나라 밖으로 나가면 안 해줘도 그만이라는 공통 답변을 여러차례 받았다.

우리 생각에는 어떤 레벨의 학위 인가 (Accreditation)를 정부에서 인가해준 교육기관에서 받으면 전세계적으로 인정해 줄 것 같지만,

심지어 제대로 된 국제적 협약 같은 것도 없는 상태다. 너네 나라 교육을 우리가 어떻게 믿냐, 이런 식인거지.

기억을 되살려보니, 나 역시 학부 때 겨울 계절학기 6학점을 해외 대학원에서 듣고 왔었는데,

심지어 학교에서 나오는 지원금을 받으며 승인을 받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Syllabus와 강의노트를 다 제출하고, 지도교수, 학장 승인을 받고,

거의 반년이나 지나서야 내 성적증명서에 그 6학점이 등록됐었다. 심지어 S대보다 글로벌 학교 랭킹도 높은 학교였건만ㅋ

반대로 국내 타 대학 겨울계절학기로 학점을 받아온 친구는 바로 졸업요건 다 충족되어서 졸업한다고 그 6학점을 써 먹은 기억이 난다.

국내에서 내 모교보다 학교 랭킹이 더 높은 곳이 없을 것이라는걸 다들 아실테니,

랭킹이 아니라 같은 Jurisdiction 안에 있느냐 없느냐로 학점 및 학위에 대한 Recognition이 갈린다는 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내 프로그램을 호스팅 해 주는 조건 계약으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던 어느 학교는, 나와 결별하고 나서 몇 달 후에

설립 25년만에 University가 아니라 한 단계 아래로 Business접목에 맞춘 교육을 하는 Fachhochschulinstitut (FH)로 SAC 인가를 받았는데,

요즘 연락이 와서 자기네 상황이 좀 더 좋아졌으니 다시 계약 진행할 생각있냐고 넌지시 떠보는 와중에

We have a competitive advantage over ~ 이라는 표현을 썼을 뿐, 아예 무슨 환골탈태 했다는 표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도 갓난아기 같은 학교를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학교랑 동급의 학교라고 우길 생각은 전혀없고,

학교를 키우려면 이런 저런 인가 작업을 밟기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 스위스냐는 질문에 대한 2번째 답이었다.

좀 이상한 나라인데, 덕분에 대학 교육 시장에 진입하는 Entry hurdle을 넘을 수 있도록 열어주는 나라였다.

 

(좀 이상하지만) 괜찮은데 스위스?

솔직히 말하면, 스위스에서 연방 정부 인가를 받으려고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

IMD처럼 다른 나라의 더 권위있는 인가를 받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 하는 중이다.

우리가 스위스 교육 시장에서 얻을게 별로 없거든.

어차피 인구도 별로 없고, EU랑 맺은 Erasmus 연계도 깨진 상태고, 그래서 다른 유럽 대학들이랑 연계의 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언젠가 내부 역량이 축적되면 도전하려고 하는 FOREX쪽 자산 운용에 규제가 거의 없는 부분 이외에 달리 그 시장에 매력을 못 느끼겠다.

거기다 미국 인증 기관들이 요새 해외 대학이랑 온라인 대학들 Accreditation 주는 쪽으로 엄청 전향적으로 바뀌었더구만.

회사 내부적으로도 우리의 타겟 Accreditation 기관들과 요건 충족을 위해 이런저런 상담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번에 시장 개척(?)을 하며 알게 된 건, 향후 사업 라인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뭘 해도 규제가 덜하니 스위스가 괜찮은 test bed 시장인 것 같다.

딱 그런 관점에서, 학교 운영과는 별개로 1년간 많은 지식을 얻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학위 인증 후기 – 1.어쩌다보니 스위스ㅠㅠ

학위 인증 후기 – 2.(좀 이상하지만) 괜찮은데 스위스?

학위 인증 후기 – 3.글로벌 Accreditation 시장

학위 인증 후기 – 4.학생들과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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