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배우면 어디서 일할 수 있어요? 배운거는 어디에 쓸 수 있어요?

pabii research

가끔 학생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주워 듣는 업계 현실이나, 외부에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넘겨짚을 만한 사건들이 있다.

어느 학생이 “데싸 면접에서 알고리즘 물어보고 SGD 막 이런 거 왜 더 빠르냐고 물어본다”며 욕이란 욕을 다 했다는 이야기,

우리 MBA 학생들이 그걸 듣고는 또 더 욕을 해대면서 한국 수준 진짜 절망적이라며 썅욕하는 이야기,

우리 대학원 상담한다고 찾아와서는 “거기서 배우면 어디서 일할 수 있어요?” “배운거는 어디에 쓸 수 있어요?” 라고 묻길래 속이 터졌다는 이야기,

그런 한심한 질문하는 학생들 거르고 제대로 된 사고 방식 만들려고 세운 대학원인데, 엉뚱한 질문으로 떠 보길래,

넌 어차피 서울대, 카이스트 대학원 못 갈꺼니까 그냥 서성한 데이터 어쩌고나 가라고, 꺼지라고 해 줬다는 이야기 등등

 

“거기서 배우면 어디서 일할 수 있어요?” “배운거는 어디에 쓸 수 있어요?”

 

저 답답한 질문을 보며 문득 어린시절 내 생각이 났다.

중학시절부터 친구들 사이에 난 “수학은 전교권, 나머지는 바닥권”이라는 놀림을 듣는 학생이었는데,

중3 시절 색약 검사를 했던 날 담임 선생님이, 한국에서는 색약이면 이과를 못 간다고 이야길 해 주셔서 밤새 펑펑 울었었다.

그래도 전색맹이 아닌게 어디냐고, 그럼 운전면허도 못 따는데, 일상 생활에는 지장없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며 들었던 생각이,

내가 유일하게 전교권인 과목의 능력이 의미없는 인생을 살아야되는데, 그게 무슨 허무한 인생인가 싶어, 정말 죽고 싶더라.

그 와중에 아버지는 BBS라는 이상한거나 만들며 전화비나 축내고 컴퓨터 게임이나 만들던 놈, 이제 법대 보내면 되겠다고 좋아하시던데…

 

학부 경제학을 하신 친척 중 한 분이 문과에서도 수학을 엄청나게 많이해야 하는 전공이라며 경제학을 소개해주신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환율, 이자율, 물가 이런 용어들에 익숙해지는 고교 시절을 보냈었다.

그러다 정말 내가 인생을 걸고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은 계기는 ‘조지 소로스’라는 인간이 우리나라를 털어먹었다는 뉴스 기사였다.

한국의 정부 고위직 관계자라는 사람들 수백명이 한 두명의 금융 천재에게 놀림을 당했다는 비참한 뉴스를 보는데,

어린시절부터 사업하시는 아버지에게 공무원들의 무능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외 금융 권력을 욕하는 그 기사를 보면서 되려 무능한 공무원을 욕하고 싶고, 나도 저런 금융 권력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학 진학 무렵에 잠깐 경영학과를 지원할까 고민했으나, 경영학과의 마케팅 원론, 인사관리, 조직관리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보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경제학을 선택했다.

 

수능 성적도 좋은데 왜 법대 안 가느냐고 끝까지 불평불만이셨던, 사시도 행시도 왜 안 치냐고 한숨을 내쉬셨던 부모님 두 분께 죄송하지만,

당시 멋 모르고 골랐던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돌이켜봤을 때 내 인생에서 했던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학부 시절 배운 경제학은 별로 큰 도움이 못 되었던 것 같다. 가르쳐주신 교수님들께 정말 죄송하지만.

하지만 그 학벌 덕분에 Ivy리그 출신도 아니고, 외국서 살다온 것도 아니고, 부모 빽도 없던 내가 오직 실력으로 외국계IB를 뚫고 갈 수 있었고,

학벌과 직장 둘을 모은 덕분에, 1류 대학 리스트의 맨 밑바닥 정도에 있는 학교에서 석사 공부를 하며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정말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제대로 된 교육에서 기적같이 살아남은 덕분에 경제학이 왜 문과의 수학과인지, 수학이라는 언어를 빌려 쓰는 학문이라는 것이 어떤 학문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경제학을 떠나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나의 강력한 사고력 무기 중 하나다.

지난 10년간 배운 다른 학문과 업계 지식을 흡수하는데, 사업을 하게되는데도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뽑아 쓸 날이 오겠지.

 

얼마전, KAIST에 출강을 갔다가 학부 1학년 학생에게 다시 1학년이 되면 무슨 선택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위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대학 출신이라는 걸 삭제하기 위해 하루빨리 해외 명문대로 Transfer하고, 국적도 갈아치우고,

한국인이 아니라 국제인으로 사는 삶을 선택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직원들과 식사 중에 같은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전공은 뭘로 골랐을 것 같냐고 묻더라.

한참 생각을 했는데, 전공을 ‘Data Science’로 골랐을 것 같다. 부전공은 경제학으로 하고.

단, 미안하지만 한국에 있는 대학들은 내 학부 시절 경제학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Data Science를 교육하고 있는만큼,

한국에서 Data Science 전공으로 대학을 가는 것은 좀 고려해봐야될 것 같다.

 

다시 위의 “거기서 배우면 어디서 일할 수 있어요?” “배운거는 어디에 쓸 수 있어요?” 로 돌아가면,

난 살면서 저런 질문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가 XXX, YYY를 하고 싶은데, 그걸 하려면 무슨 공부를 해야하나, 어느 대학의 어떤 과를 가야하나는 질문만 했다.

아마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게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을 찾는 사람들일 것이다.

한 꺼풀 더 벗겨내면, (자기능력대비) ‘좀 더 거들먹거릴 수 있는 위치’에 가는 것이 중요할 뿐,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국내 커뮤니티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느 대기업을 다닌다고 자랑질하는, 자기 노예 사슬이 더 편하다고 자랑질하는 그런 ‘위치’.

 

KAIST 강의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한 지인이, 대학원생들 취직에 바짝 신경 써 줘야하지 않냐고 묻더라.

평생 내 취직을 한번도 신경 써 주는 사람, 조직을 만나본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았는데 ㅎㅎ

저 학생들이 이런 고급 교육을 받고는 ‘SGD가 왜 빠른가요?’ 같은 한심한 질문이나 받는 면접을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지지 않을까?

회사 몇 달 다니지 않은 직원들도 벌써 내 교육을 어깨너머라도 이해했는지 유명인사들이 데이터 해석을 이상하게하는걸 보고 화를 내던데…

논리를 설명해주니 “이걸 배우면 저런 이야기하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반박할 수 있겠네요?”라는 반문을 하는 직원들을 보며,

“배운거는 어디에 쓸 수 있어요?” 같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속이 터졌을 우리 대학원생들에게 미안하더라.

‘쌩’문과 출신 직원들도 몇 마디 논리를 알아듣고 어떻게 쓰면 되는데 자기들이 제대로 학부 훈련을 못 받았다는걸 저렇게 느끼는데,

학부 통계학, CS 전공자들이 ‘어디에 쓰냐’는 황당한 질문을 하는 답답함을 어쩌랴.

 

우리학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한테 미안한데, 어디 취직하건 상관없이 팀장급 이상의 고위 결정을 직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면,

윗 사람의 무지 탓에 ‘들이 받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같이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나는 한국에서 어딜가나 그렇게 느꼈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없는, 단순 암기로 학벌과 학점을 따서 졸업장만 있는 바보들이기 때문에,

당신들의 논리적 이해와 사고 확장이 ‘처음 듣는’ 내용이라, ‘나 모르는거 티나는거 싫은데’ 같은 생각만 하고 살고 있다.

이해가 됐다면 ‘이렇게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유명인사가 틀렸다고 주장할 수 있겠네’라는 사고의 흐름이 생겼을텐데,

이해를 못했으니, 아니 능력이 없으니, 아니 하고 싶지도 않으니, 그저 ‘이거 복붙해가면 돈 많이 벌고 잘난 체 할 수 있나요?’ 수준의 질문만 하게되겠지.

 

한편으로보면, 국내 DS 시장이, 내가 바보라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더 심하게 무지한 사람들을 ‘속여서’ 투자 받은 돈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사기꾼들이 무식한 쩐주들을 속이는데 1도 기여하지 않은 내가 교육시킨 학생들을, 사기꾼들이 사기치는 자리에 밀어넣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날 더러 저 학생들을 다 책임져야되는거 아니냐고 묻던데, 가르친 내용들을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레벨의 훈련이 되는 수준과 국내 사기꾼 포지션들 사이에는 >>>>넘사벽>>>이라는게 있는 것 같네.

 

사업 초창기부터 묵묵하게 회사 일을 챙겨주고 있는 한 개발자가

대표님 하시려는 사업은 그런그런 스타트업 수준이 아니라 덩치가 너무 큰데, 투자금이 수천억 들어온다고해도 할 수 있는 사람 뽑는게 더 큰 문제일 것 같아요

라고 하더라.

내 눈에 차는 수준이 높은 건지, 아니면 한국 수준이 너무 심하게 낮은건지.

난 항상 ‘Stupidest person in the building’인 인생을 살아왔는데, 인재라는게 이렇게 없구나.

“거기서 배우면 어디서 일할 수 있어요?” “배운거는 어디에 쓸 수 있어요?” 라는 질문이나 하는 애들이 인재로 성장할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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