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투자 확대한 美 대학들, 기금운용 수익률 악화

pabii research
MIT 등 주요 대학들, VC·PE 등 대체투자 비중 늘려
'예일 모델' 적용해 대체투자 비중 30~40%까지 증가
VC 등 손실 계속되면 장기적인 투자전략 재검토할 수도

상반기, MIT·하버드 등 주요 대학기금 투자 손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피치북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벤처캐피탈(VC)의 투자 수익이 악화되면서 미국 주요 대학의 기금운용 수익률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주요 대학의 기금운용 수익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부 대학들은 여전히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19일(현지시각)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해 스탠퍼드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MIT 등 주요 대학들이 올해 상반기 기금운용 실적을 공시했다. 이 중 MIT와 듀크대학교의 기금운용 수익률은 각각 -2.9%, -1.0%로 투자 손실을 기록했다. 기금 규모가 570억 달러(약 77조2,920억원)로 가장 큰 하버드대학교는 2.9%의 수익률을 나타내며 저조한 실적을 냈고 브라운대학교 2.7%, 예일대학교 1.8%, 펜실베니아대학교는 1.3%를 기록했다.

미국 대학기금의 연간 투자 수익률(2023년 상반기 기준), 주: 투자 수익을 기록한 대학(네이비), 투자 손실을 기록한 대학(민트)/출처=Pitchbook

컬럼비아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는 각각 4.6%, 4.4%의 기금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컬럼비아대학교는 10억 달러(약 1조3,556억원) 이상의 투자 손실을 봤고 스탠퍼드대학교는 -4.2%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두 대학 모두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5%룰’을 감안하면 4%대 기금운용 수익률은 사실상 투자 손실로 볼 수 있다. 미국은 5%룰을 통해 기금운용 수익의 5%를 대학 운영에 투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물가상승률 3%를 가정하면 기금운용 수익률이 최소 연 8%가 돼야 원금 손실 없이 대학 재정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 비중 큰 대체투자, 전체 수익률에 영향

최근 대학의 기금운용 수익률이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회복세가 VC나 성장자본펀드(GEF)에 대한 투자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하버드 매니지먼트 컴퍼니(HMC)는 상반기 기금운용 수익률과 함께 공개한 보고서에서 “전체 포트폴리오의 11%를 차지하고 있는 주식에서 큰 수익을 기록했지만 30% 넘는 비중을 가진 사모펀드(PE)와 VC에서 손실이 발생하면서 전체적으로 수익률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스탠퍼드대학교의 투자를 총괄하는 스탠퍼드 매니지먼트 컴퍼니(SMC)의 로버트 월리스(Robert Wallace) CEO도 “지난 회계연도 스탠퍼드대학교의 기금은 대부분의 포트폴리오에서 수익을 냈지만 VC와 GEF에서 손실이 발생해 전체적인 투자 수익을 상쇄했다”며 “현재는 2022년 손실분을 점차적으로 회복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자산 규모가 가장 큰 대학 중 하나로 136억 달러(약 18조4,362억원)의 기금을 보유한 버지니아대학교도 올해 상반기 2%의 기금운용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이중 PE와 VC 포트폴리오에서는 -5.3%로 손실을 봤다.

MIT의 재무담당 글렌 쇼어(Glen Shor)는 최근 수익률 악화의 원인으로 포트폴리오 내 벤처기업들의 평가 가치 하락을 언급했고 브라운대학교의 투자 담당자는 대체 투자 옵션을 찾기 고금리 환경을 원인으로 꼽았다. 2021년 기술시장이 급성장하면서 LP(출자자)들은 VC에 대한 투자 비중을 과도하게 확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술주에 대한 조정과 엑시트(투자금회수) 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VC의 투자 수익이 악화됐다. 피치북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부터 1년간 VC 펀드의 내부수익률(IRR)은 -14.51%를 기록한 반면 PE 펀드는 같은 기간 1.13%의 IRR을 나타냈다. 이에 최근 LP들은 공통투자권 등 유리한 조건을 확보함으로써 현금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GP(위탁운용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장기분산 투자 강조한 예일대, 기금 규모 크게 늘어

지난 20년간 미국의 대학들은 이른바 ‘예일 모델’이라고 불리는 예일대학교의 기금운용 전략을 적용해 왔다. 예일대학교의 최고투자책임자(CIO)였던 데이비드 스웬슨(David Swensen)이 주창한 예일 모델은 주식, 채권 이외에 PE, VC, 헤지펀드, 부동산 등 대체투자의 비중을 늘려 장기 분산 투자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전략이다. 스웬슨이 등장하기 전 대학 기금은 주식에 60%, 채권에 40%를 투자하는 보수적인 방식을 고수했지만 예일 모델을 적용한 지난 36년간 예일대학교의 기금 규모는 10억 달러에서 423억 달러(약 57조3,419억원)로 40배 넘게 불어났다. 특히 기술시장이 급성장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눈부신 투자 수익을 이끌어냈다.

일반적으로 대학 기금은 단기적인 수익 회수가 아닌 장기 투자의 관점에서 운용되기 때문에 대학들이 지난 1년간의 수익률 하락으로 VC에 대한 투자 전략 전반을 수정할 가능성은 낮다. 더욱이 지난해 기술주들의 기업가치가 크게 하향 조정되면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이에 대한 기저효과로 올해 다시 투자 수익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6월 미국 공립대학 중 가장 큰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는 텍사스대학교 인베스트 매니지먼트 컴퍼니(UTIMCO) 이사회는 680억 달러(약 92조1,808억원) 규모의 투자 포트폴리오 중 PE의 비중을 25%에서 30%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은 대학의 투자 담당자들이 향후 PE가 안정적이고 확실한 투자 수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연기금과 같은 기관 투자자들도 예일 모델을 적용해 VC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 올해 초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제도(CalPERS)는 기술시장의 급성장기에 대체투자를 통해 수익을 확보하지 못한 것을 두고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라고 성토하면서 VC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CalPERS를 비롯한 미국의 연기금들은 VC를 통해 투입 자본 대비 최소 3배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학 기금은 일반 기관 투자자와 달리 수익의 5%만 대학에 돌려주고 나머지 수익과 자산을 투자 제한이나 과세 부담 없이 초장기로 운용할 수 있다. 이에 미국 대학의 CIO들은 장기 목표에 입각한 초장기 분산투자를 최우선 원칙으로 한다. 통상 미국의 대학들은 VC나 PE에 전체 자산의 30~40%를 출자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통화량 증가로 인해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대학 기금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의 투자 시장에서 VC나 PE의 수익 하락이 이어지고, 이로 인해 기금운용 수익률이 악화된다면 대학들은 해당 투자에 대해 보다 면밀히 검토해 재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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