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 ‘설왕설래’, “과학기술 경쟁력 저하” vs “효율성 증대”

거세지는 R&D 예산 삭감 반대 물결, 급기야 과기부 장관 무능론까지 ‘5% 선’마저 무너진 R&D 예산, “퇴직자 급증 등 위기 이미 드러나” 내부선 자조적 목소리도, “예산 따기 어려우니 빠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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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정부가 국가 R&D 예산 삭감 방침을 표면화한 이후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 퇴직자가 크게 늘었다는 집계가 나왔다. 이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일제히 내년도 R&D 예산 삭감 문제를 지적하는 모양새다.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가 ‘카르텔’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며 R&D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했는데, 과연 카르텔의 실체가 있나?”라는 회의적 주장이 나오는 만큼 정부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尹 ‘R&D 카르텔’ 언급에 비판 물결, “카르텔 실체 있나”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카르텔의 근거를 대라고 따져 물었다. 민 의원은 “정말 연구 현장에 카르텔이 존재하느냐는 설문에서 연구원의 74.7%가 ‘그런 게 어디 있느냐(없다)’는 반응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이 장관은 “그동안 언론, 정치권 심지어 연구계조차 R&D 예산 낭비를 지적했었고 R&D 예산 사용에 실제로 비효율적인 부분이 적지 않게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장관의 설명에 ‘명확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종전의 일방적 답변만 되풀이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장관은 무능론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허숙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R&D 카르텔이 무엇인지 분명한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고 따져 물었다. 민 의원은 “과기부에서 제시한 R&D 비효율 사례 5가지를 분석해 보니 기존에 어느 정도 이 같은 R&D 비효율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꽤 있었다”며 “그런데도 막아내지 못한, 실체도 없는 카르텔을 아무 데다 갖다 붙인 것 아니냐”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러자 이 장관은 “카르텔이라고 한다면 연구비를 받기 위해 불법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눠 먹기식, 뿌려주기식, 그리고 주인이 정해져 있는 R&D 사업 등이 포함되는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이런 관행을 제대로 개선해 연구다운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 가겠다”고 역설했다.

정부가 R&D 예산 삭감을 이유로 ‘카르텔’을 제시한 데 대해선 여야 모두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장관님께서 말하는 ‘R&D를 R&D답게 해보자’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이냐”며 “지금 이 국면에서는 뿌려주기식, 유사 중복 R&D 사업이 개선돼야 한다는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취지는 사라지고 카르텔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만 남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당으로서 도와주려 해도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장관께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어느 정도 준비해 왔으면 한다”고 일침했다.

예산 삭감 후 출연연 퇴직자 늘었다

예산 삭감 방침을 설정한 후 출연연 퇴직자가 크게 늘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국회 과방위 소속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기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로부터 제출받은 ‘출연연 연구인력 이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1~6월 출연연을 떠난 자발적 퇴직자는 88명이었다. 그런데 하반기 들어 퇴직자가 급증했다. 올해 7~8월 57명의 연구원이 퇴직했는데, 이는 8월 말까지 연간 누적 퇴직자(145명)의 39%에 달하는 수치다. 고 의원 측은 “6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가 R&D 카르텔’ 비판 후 연구자들이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 최근 5년 새(2018년~올해 8월) 출연연을 떠난 연구인력은 총 974명이었으며, 퇴사자의 85%가 연구 경험을 가진 선임급 이상이었다. 퇴직자 중 학계로 간 인력이 58%(565명)에 달했고, 산업계는 11%(106명), 정부연구원 5%(49명), 민간연구원 1%(12명) 순이었다. 이와 관련해 고 의원은 “핵심 연구인력 이탈로 이들의 연구 경험과 역량 등을 활용하기 어려워졌다”며 “이는 출연연뿐 아니라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최근 국가 R&D 예산 삭감에 따른 출연연 예산 삭감이 인력 유출의 신호탄이 되진 않을지 면밀히 살피겠다”고 전했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결과론적으로 인력 유출 및 그에 따른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는 게 고 의원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정부 R&D 예산은 지난날과 비교하면 확연히 줄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 656조9,000억원 중 국가 R&D 예산에 25조9,000억원을 편성한 바 있다. 이는 예산 총지출 대비 3.94% 수준으로, 매년 미래 대비를 위해 유지해 오던 5% 투자 기조가 무너진 것이다. 이에 한 전문가는 “국가 R&D는 미래산업에 근간이 될 혁신기술 개발이 주된 임무”라며 “이는 그간 모든 정부가 국가 R&D 효율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미래 투자 차원에서 총지출 대비 5% 투자 기조를 유지했던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지출 대비 5% 투자 기조가 무너지면서 인력 유출이 현실화된 점을 거듭 꼬집기도 했다.

최근 10년간 정부 총지출 대비 국가 R&D 예산 추이/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R&D 예산 삭감, ‘옥석 가리기’의 시작

다만 일각에선 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예산 삭감을 통해 오히려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수 있으리란 것이다. 예산 삭감으로 인해 과학기술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는 당연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과학기술계 내부에선 “결국 올 게 왔다”며 “눈치 보고 예산 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빛바랜 이들이 떠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그간 R&D 예산은 빠르게 불어났으나, 불어난 예산을 적절히 배치하기 위한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구멍 난 독에 물 붓는 식의 ‘세금 쏟아붓기’만 이뤄지던 과학기술계가 예산 삭감을 통해 다시금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R&D 예산을 노리고 편법적으로 연구과제를 따낸 기업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R&D를 수행할 능력이 없으면서 이른바 ‘R&D 기획 브로커’를 대필작가 삼아 뚜렷한 결과물 없이 예산만 축내는 식이다. R&D 예산을 가로채는 방식도 가지각색이었다. 모 가구 업체는 정부 R&D 사업 과제를 따낸 뒤 종전의 연구 주제와 전혀 관련 없는 기능성 화장품을 만드는가 하면, 모 중소 제조업체는 2,000만원을 주고 브로커 기획업체를 통해 과제계획서를 대필 받아 R&D 사업을 수주한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세간엔 ‘코리안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R&D 사업에 쏟아붓는 세금에 비해 성과가 적다는 것을 비판하는 단어다. 우리나라의 국가 R&D 예산은 세계 7위며, 그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스웨덴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핵심 기술에 대해선 대외 의존도가 여전히 매우 높은 상황이다. 또 특허출원 수 자체는 많지만 고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양질의 국제특허는 상당히 부족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부가 세금을 들여 생존 능력 없는 중소기업, 소위 ‘좀비 기업’을 계속 유지시키려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이유다.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위해선 건전한 기업들에 지원이 집중되는 자원 배분을 이뤄내야 할 필요가 있다.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긴 하나, 제대로 된 옥석 가리기는 결국 경쟁력을 향상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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