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방석’ 앉은 족보 사이트, ‘돈이 곧 성적’ 되는 현실 바꾸려면

“학교 기출 문제 비공개, 사교육비 부담 늘렸다” 족보 문제, 교육 현장의 ‘무전유죄 유전무죄’ ‘실력이 곧 성적’ 되기 위해선, ‘일제고사’ 부활도 선택 사항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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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족보닷컴

대다수의 중·고등학교가 시험 문제의 저작권과 민원 제기를 이유로 내신 문제 공개를 꺼리기 시작하면서 유료 족보 업체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기출 문제를 구해야 중간·기말 시험 대비에 유리한 데다, 각 학교 교사들이 내는 이른바 ‘내신 킬러 문항’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족보 활용은 ‘돈이 곧 성적’이 되는 방식인 만큼, 이를 ‘실력’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실력이 곧 성적’이 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출 문제 비공개에, 족보 사이트 ‘대박’ 터졌다

수년 전부터 학교 측이 기출 문제를 비공개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의 족보 사이트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학교가 기출 문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으나, 공개된 기출 문제가 학원가에서 돈벌이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고 시험 문제를 두고 학부모나 학원 측의 민원이 폭주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학교 측은 비공개로 방침을 바꿨다.

기출 문제를 비공개로 전환하자, 족보 업체들의 매출은 급증했다. 족보 업체 5곳의 2019~2022년의 매출액을 조사한 결과 족보 업체의 연간 매출액은 3년 동안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26배까지 늘었다. 한 족보 업체 사이트는 2019년 111억5,249만원이었던 매출액이 2022년 217억2,681만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고, 또 다른 족보 업체는 2019년 매출액 2억8,152만원에서 2022년 75억7,000만원으로 무려 26배 넘게 뛰었다.

문제는 고가의 회원료에도 불구하고 족보 사이트에 오류가 많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씨는 “어려운 문제를 대비하려고 한 달에 8만원 가까이 내는데도 실제 기출 문제와 큰 차이가 있었던 적이 많다”고 전했다. 고등학생 B씨 또한 “고등학교 내신은 챙길 과목과 시험 범위가 커 족보 사이트에서 범위에 맞는 자료를 찾는 데만 시간이 걸린다”며 “족보 정확도도 낮아서 수년간 사이트를 이용하다가 최근에 그만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학교가 공식적으로 기출 문제를 공개하지 않아 학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오히려 늘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재곤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시험 문제의 저작권이 교사에게 있는데 사설 업체에서 시험지를 유통하는 건 주객전도”라며 “학교가 공식적으로 시험지를 공개한다면 교사들이 낸 시험 문제가 사교육 시장에서 악용되는 걸 막는 건 물론 교사가 시험 문제 저작권을 갖는다는 인식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만연한 족보 문제, 교육의 의미 퇴색시켜

족보 문제는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지적돼 온 문제 중 하나다. 사법시험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지난 2004년에도 사법시험 제1차시험에서 민법과목 1책형 22번(3책형 16번) 문제가 모 학원 기출문제와 거의 동일하게 출제돼 출제위원 선발·점검 과정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바 있다.

대학가에서도 족보 문제가 만연해 있다. 족보 인식 실태 설문조사 결과 130명의 응답자 중 89%(116명)의 학생들이 학내 족보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그중 87.9%(102명)의 학생들이 족보를 취득해 사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62.1%(72명)가 족보를 공유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족보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학생들은 공통으로 시험 문제의 유형을 파악하고 공부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족보를 이용했다. 특히 개인 간 족보 공유에서도 금전이 오가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 현장에 만연한 족보 문제는 사실상 교육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인원 중 78.3%가 족보가 성적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답했다. 족보가 성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족보를 돈으로 구매해 성적을 올리는 건 사실상 무전유죄유전무죄의 현실이 교육현장에까지 뻗친 결과 아니냐는 비판도 쏟아진다. 대학생 C씨는 “돈으로 족보를 구매해 성적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에 회의감이 들었고 공부를 위해 쏟은 노력에 허무함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족보를 통한 정보와 자료 접근의 불균형이 시험의 성적 검증 능력 자체에 불투명한 안개를 형성했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사진=UTOIMAGE

족보 문제 만연에, 일각선 ‘일제고사 부활’ 목소리도

한편 이 같은 족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일제고사’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일제고사란 대한민국에서 전국의 학교 도는 특정 지역 내의 모든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일제히) 치르는 형태의 시험을 뜻한다. 일제고사는 지난 1998년 폐지된 뒤 현재는 전국 단위의 진단평가와 학업성취도평가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전체 시험으로 다시금 확대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비슷한 문제 인식이 형성돼 있는 만큼, 일제고사 부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대상을 확대하며 사실상 일제고사 부활의 초석을 닦은 바 있다. 자율평가는 학교·학급 단위로 신청해 참여하게 돼 있다. 다만 기초학력보장법 시행령에 따라 모든 학교가 학년 시작일로부터 2개월 안에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학습지원대상학생’으로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가 이를 실시했다.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수평가로 공식 전환된 건 아니지만 자율평가란 형식으로 사실상 일제고사가 된 셈이다.

물론 일제고사 부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예전처럼 교사와 학교, 교육청에 돌아가는 경제적 보상을 일제고사 성적에 따라 결정된다면 학교들은 학습부진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올린다는 본래 목적보다 ‘성적 낮은 학생 없애기’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학교의 ‘서열화’ 또한 비판 소재 중 하나다.

그러나 ‘실력이 곧 성적’이 되기 위해선 문제 유출이 불가능한 일제고사로 전환돼야만 한다는 의견도 쏟아진다. 현재 일부 학생들 사이에선 ‘족보를 구하는 인맥을 형성하는 것 또한 실력’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족보로 인한 폐단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족보를 통한 성적 올리기를 ‘실력’으로 인정해 줄 학교와 기업이 어디 있을까. 면접 현장에서 스스로 족보 활용 사실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꼭 일제고사가 답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에 준하는 강력한 대책을 정부는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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