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뽑] ㊼개발자 시장은 앞으로 몇 년 남았을까?

pabii research
정부 지원금이 빠진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려면 해외 진출 했었어야
한국 IT업계는 해외 코딩 부트캠프 수준도 안 되는 인력들로 움직이는 경우 많아 더욱 절망적
정부 지원 축소, 글로벌화 실패 이후에는 처치 곤란 인력들만 다수 생길 것

지난 2010년, 뒤도 안 돌아보고 유학 길에 나서던 무렵, 주변 사람들 중에 날 잘 모르는 분들은 내가 다니던 모 외국계 증권사에서 해고된 줄 알고 ‘쪽팔리니까’ 나가는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 유명 MBA를 가지 않는다고 날 무시하던 몇몇 국내 증권사 고위직 관계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건 난 더 이상 뱅킹 다닌다고 거들먹거리고 싶지도 않았고, 음주가무로 접대나 하며 내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머리 좋은 걸로 먹고 살려던 내 입장에서 ‘EBITDA가 뭐야?’라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질문이나 하는 대기업 전략기획실장들 앞에서 광대처럼 술 마시고 춤이나 추는 인생을 굳이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15년 남짓이 지난 그 시절과 지금, IBD 혹은 유사 직종으로 분류되는 전략 컨설팅의 사회적 지위, 대학 졸업생들의 수요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때와는 상당히 다른 평판을 갖고 있다는 점에는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할 것이다. 아마 더 이상 초A급 인력들이 이쪽 시장에 진입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내 눈에 더 크게 들어오는 것은, 그 업계에서 10년 이상 경력이 쌓였던 선배들이 40대에 접어들면서 ‘학벌이 안 된다’는 이유로 Ivy League 출신들에게 승진에서 밀렸다가, 지금은 국내·외 PE들에서 법적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지 않으면 자신들의 고급 역량을 써 먹을 수도 없는 산업이 됐다는 부분이다. 가끔 어느 기업의 재무 총괄이 구속됐다는 기사와 그 기사에 언급된 PE 담당자를 찾아보면 선배님들 이름이 슬쩍 보인다. 그런 고급 인재들이 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 도대체 왜 못 만들어졌을까?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거꾸로 후퇴만 했나?

개발자-안-뽑음_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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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시장은 앞으로 몇 년 남았을까?

몇 년 동안 한국인 개발자들을 뽑아보고, 제대로 안 돌아가는 시스템에 온갖 불평을 하다 결국엔 해외 솔루션과 해외 개발 인력들을 동원해서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요즘, 내 첫 직장이었던 IBD 업무가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개발자 시장도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 시절, 나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터지고 이른바 ‘막차’를 타서 업계에 진입한 인원들이 아니면, 선배들은 대부분 매년 이직하며 급여를 높였었고, 한 회사에 길게 다니는 것을 순진한 바보로 취급했었다. 그 업계에 진입해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수준의 A급 인재가 많지 않았던 탓에 선배들이 겁 없이 사직서를 던졌었고, 어느 선배가 해외 어느 회사에 스카웃되어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IT업계도 어제까지와 오늘 이후의 모습이 2008~2010년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오늘 당장은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소수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외주 솔루션을 쓰지, 굳이 개발자를 뽑으려고 하질 않을 것이다. 몸 값만 비싸고, 그 IT시스템이 회사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닌 상황이 된데다, 외주 솔루션들의 수준도 크게 올라왔기 때문이다. 최근의 불경기 때문에 IT업계가 일시적으로 개발자 인원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굳이 대규모 시스템 운영을 위해 많은 개발자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분들이 늘어날수록 이런 경향성은 강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별 흥망성쇠를 보면, 대부분은 정부가 얼마나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지,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가져갈만한 시장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을 따라잡겠다고 나섰던 조선업이 1990년대 들어 실제로 수주 물량 측면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2000년대 들어서는 FPSO 등의 주요 전문 선박들을 수주할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시절의 호황을 두번 다시는 못 누리고 있고, 주요 조선업체들의 시가 총액은 1/5에서 1/1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정부가 조선업체들에 지원해주는 것은 대출 자금 지원과 해외 저가 노동력 비자 지원 밖에 남지 않았다. 그 마저도 중국에 다 뺏기고 나면 정부도 지원을 끊을 것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100만호 건설을 기치로 건설업이 한창 붐을 일으켰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때마다 부동산PF가 터지면서 건설업이 스스로 붕괴했고, 최근 주요 건설사들 상황과 향후 국내 시장을 봤을 때, 해외에 진출해서 안착한 건설사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국내에서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된다.

위에 예시를 들었던 금융권도 한 때 정부 지원으로 글로벌IB를 만들겠다고 말들이 많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시절 당시 산업은행 민유성 총재의 리만 브라더스 인수가 물거품이 되면서 사실상 한국의 금융 산업 굴기는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체급, 시장 개방성, 인력들의 영어 실력, 글로벌 마인드 부재 등등을 따져봤을 때, 한국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지난 20세기 홍콩 수준의 지위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100%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그럼 그 선배님들같은 고급 인재들은 한국에서 더 이상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개발자 시장은?

글로벌화 되는 산업과 성장하지 못하는 산업

위에 예시를 들었던 모든 국내 산업들이 글로벌화에 실패한 산업들이다. ‘실패’라는 단어를 조금 양보한다고 해도, 한 때 해외 진출을 했을지 몰라도 영미권 주요 기업들에게 밀려서 2순위 사업들을 수주하는데 만족해야 하거나, 그마저도 어려운 산업들도 많다.

IT업계는 어떨까?

내가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봤던 개발자들이 한국인 개발자 시장 전체를 다 포괄하지는 않겠지만, 압도적 다수의 개발자들이 글로벌화에 실패한 개발자들이라는 점 만큼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한국 IT기업들 중에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성을 만들어 낸 곳은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과 몇몇 게임회사들 밖에 없다. 나머지 기업들 중에 해외 수익을 안정적으로 뽑아내는 곳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식견이 좁아 언급해드리지 못했다면 사과드리겠지만, 해외 수익을 바탕으로 수 백명 이상의 개발자를 채용할 수 있는 기관이 한국에 몇 없다는 부분에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다음 10년 동안 한국 IT업계는 어떻게 흘러갈까?

정부가 지원금을 끊었는데, 해외 시장에서 수익을 못 내고, 국내 시장은 치열한 경쟁에 휩싸였다가 급여를 맞춰줄 수 없으니 40대 직원들을 차례로 내보내야했던 주요 산업들의 운명과 한국 IT업계는 얼마나 다를까?

한국에서 그 글로벌 장벽을 뛰어넘어 수십년간 수 십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한 산업은 반도체와 자동차 밖에 없다. 기술적으로, 최소한 생산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글로벌 시장의 주요 공급 채널을 뚫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지난 몇 년간 봐왔던 한국IT업계에서 1~2명의 고급 인재가 해외 기업 취직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 만든 IT시스템이 글로벌 시장을 그렇게 뚫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지는 않는다. 부트캠프 6개월 출신 비전공자들이 SKP 컴공 출신 국내 최고 인력들보다 사용자 편의성이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한 줄 평가에 이미 한국 IT업계의 경쟁력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 쿼터제를 내세우며 60년간 싸워왔던 한국 콘텐츠 업계가 넷플릭스의 광폭 지원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 안착했다. 앞으로 몇 년이나 그런 글로벌 시장 지위를 더 누릴 수 있을지, 나아가 국내 콘텐츠 유통 업체들이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콘텐츠 생산 시장에서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유통 채널 덕분에 높은 수익성을 낼 수 있게 됐고, 덕분에 글로벌 시장에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은 선배들보다 10배 이상의 돈을 만질 수 있게 됐다.

한국 IT업계에 그런 글로벌 유통 채널이 들어와줄까? 한국인인 나도 해외 솔루션으로 도망가는 판국인데?

내가 문재인 정권의 핵심 정책 결정자였으면 6개월 코딩 학원, 그런 수준의 대학 교육에 수십, 수백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워드프레스처럼 글로벌 시장에 경쟁력 있는 솔루션, 프로그램 만드는데 고급 개발자들 쏟아붓고, 그 분들로 글로벌 시장이랑 격차 좁혀가며 추격하고, 초급들은 자기들 알아서 공부해서 시장에 진입해라고 내버려뒀을 것이다. 왜 K-영화, K-드라마는 글로벌 시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작가+배우 조합에만 지원금을 주면서, 정작 IT업계는 개발자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지 여부도 확실히 않은 애들 교육에 수십조의 예산을 쏟아부었나? 다시 주워담지도 못하는 그 예산, 다시 확보하려면 몇 년이나 걸릴까?

PE들에서 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며 한국 금융시장의 마지막 먹거리를 잡고 아둥바둥해야하는 전직 외국계IBD 출신 선배들의 모습과, 초A급 개발자지만 Java SpringFramework로 정부 프로젝트에나 투입되어야 하는 인력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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