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금리 인하해도 소용 없다” 고금리·산업계 외면 속 가라앉는 내수 시장

pabii research
KDI "수출·금리 상황 고려해 섣부른 내수 부양 지양해야"
수출 성장해도 내수는 그대로? 낙수 효과 부족해
수출 대기업, 해외에서 번 돈 고스란히 해외에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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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기조 장기화로 시장 전반이 얼어붙은 가운데, 올해 내로 내수가 회복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금리 조정 효과 발생까지의 시차, 수출에서 내수로 이어지는 낙수 효과 부족 등이 내수 회복의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같은 전망에 근거, 물가 안정세를 흩뜨리는 대규모 내수 부양책은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기준금리 내리면 오히려 내수 악영향”

2일 한국개발연구원은 현안 분석 보고서인 ‘최근 내수 부진의 요인 분석: 금리와 수출을 중심으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책금리 인상은 소비와 투자를 모두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금리 인상의 본격적인 효과(이하 금리 인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4분기, 파급 효과가 유지되는 기간은 8~9분기 수준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민간 소비의 경우 정책금리가 1%p 높아질 때 3분기가 지나 최대 0.7%p 감소하고, 그 영향은 약 9분기에 걸쳐 유의미하게 지속된다고 봤다. 설비투자의 경우 금리 인상 3분기 이후 최대 2.9%p 감소하고, 그 영향은 8분기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KDI는 누적된 금리 인상 효과가 지난해 하반기에 시차를 두고 발생, 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국내 경제가 깜짝 경제 성장을 달성한 올해 1분기의 경우, 금리 인상 효과가 유지되는 가운데 수출이 회복되며 내수 위축 정도가 일부 완화됐다는 평가다.

KDI는 통화 정책 효과가 내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대규모 내수 부양 등 인플레이션 안정 추세를 교란할 수 있는 정책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제언했다. 섣불리 내수를 부양해 물가가 뛰어오를 경우, 금리 완화 시점이 미뤄져 오히려 내수 회복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출 회복돼도 내수는 ‘침울’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점진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내수 회복세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민간 주도로 수출이 호조를 보일 경우 투자와 고용이 확대되고, 이를 통해 소비가 성장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호실적을 기록한 수출 대기업으로부터 이 같은 ‘트리클 다운 효과(Trickle-down Effect, 낙수 효과)’가 좀처럼 발생하지 않고 있다.

KDI는 이 같은 괴리의 원인으로 고금리를 지목했다. 이전부터 누적된 고금리의 부정적 파급 효과가 수출 회복에 따른 긍정적 파급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되는 고금리는 기업 투자의 기회비용을 확대해 투자 수요를 위축시키고, 가계의 저축 유인을 증대해 소비 감소를 유발한다. 이는 1분기 GDP(국내총생산)가 ‘깜짝 성장세’를 보였음에도 불구, 시장의 체감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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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장 일각에서는 수출 대기업들의 ‘투자 방향’이 내수 부진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고스란히 해외에 재투자하며 내수 시장이 회복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수출로 인해 발생한 기업 수익이 해외로 흘러 들어갈 경우, ‘수출 호조-기업 성장-고용·투자 확대-소비 성장’으로 대표되는 트리클 다운 효과 역시 내수가 아닌 해외에서 발생하게 된다.

북미 지역에 집중되는 대기업 투자

실제 국내 수출 대기업들의 시설 투자는 한국이 아닌 미국 등 보조금 혜택이 제공되는 국가에 집중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자국 내 공급망 구축’ 정책에 힘을 싣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의 반도체·배터리 투자 수요가 줄줄이 미국으로 이동한 것이다. 국내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 업계 등이 내수 시장 투자를 ‘후순위’로 미룬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53억 달러(약 7조2,000억원)를 들여 애리조나주에 원통형 및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 공장의 착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북미 지역에만 8개의 생산 공장을 운영·건설 중이다. 이밖에 SK온, 삼성SDI 등 국내 유수의 배터리 기업들이 북미 지역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생산 공장 건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38억7,000만 달러를 투입해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공장을 건설한다.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핵심 부품인 HBM 공급망을 북미 지역에서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추후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과 협력을 강화, 본격적으로 미국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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