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를 행세하는 비전문가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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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ii research

우연히 아래의 한국섬유신문이라는 곳의 신문기사를 보게됐다. 무려 1999년 3월 기고 글이다. 링크


전문가를 행세하는 비전문가들

「다 해 봤는데, 소용 없어요.」 전시회 몇번, 컬렉션 몇 번 한 베테랑 디자이너들에게 해외진출에 대한 가능성과 의욕에 대해서 물어보면, 거의 90%는 이런 체념 섞인 말을 한다. 『나가면 깨지는거 분명한데, 투자는 무슨…. 』 역시 해외시장 진출에 있어 재정적인 부담을 할 수 있는 스폰서들의 불만이다.

직접 길을 뚫어보려는 당사자들이나, 후원업체 모두가 그동안의 노력과 결과에 얼마나 대책없는 상처를 받고 있는가를 가장 극명하게 말해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회의론적인 이야기의 배경에는 너도 나도 해외로 나가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기본적 인 그 루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갑갑한 현실을 강력히 반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이태리와 파리쪽의 조직은 보다 치밀하다. 예를들어 「에인젤 사업자」의 존재가 바로 그것으로, 이들의 임무는 몇 년동안이고 담당한 디자이너들을 지 켜보고 지원해주면서, 기술과 마케팅 홍보방법을 연구 하고 국제적인 유통망을 연결해주는 소위 전문가의 집단들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기껏해야 국내 홍보작업이 전부로, 그것도 관리와 심부름 차원을 벗어나지 못해 국제성이 전혀 없다는 평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소재, 봉제, 유통업자, 거 기에 사진과 인쇄업, 기획회사등등 각종 전문가가 긴밀 한 관계로 얽혀있는 이 산업에 있어 비전문가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들어, 한 프로젝트를 위해 5명이 모였다 하면, 거기 에는 일을 진행시키기 어려운 비전문가들이 2명이상 섞여 있다고 한다.

명분을 위해, 혹은 형식에 맞추기 위해 끼워 넣어진 거품이거나, 아무런 철학없이 한탕주의만을 노리는 이들 때문에 나머지 3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모든 것 이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진국 등지에서는 한 프로젝트에서 스텝 오디션을 하면, 정말로 의욕과 재능이 뛰어난 프로들만이 모인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지 않아도, 그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추어 눈깜박할 사이에 일이 진척이 되어 원래의 재능을 훨씬 뛰어 넘는 작품들이 쏟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비전문가들이 전문가의 행세를 함으로써 형성된 거품이 빠지면서 바닥과 실체가 드러나는 과도기임이 틀림없다.

디자이너라는 직종만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고, 나머지 직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 때문 에 비전문가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시대가 막을 내 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돈만 있으면, 비전문가의 논리가 아무런 검증없이 통용될 수 있었던 악순환의 시대에서 눈을 떠,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국제무대에서 영원히 뒤떨어질 수 밖에 없음을 강력히 지적되는 시점이다.


오래된 글이라 html코드가 깨져있고, 뭔가 전문 기자 분이 쓰신 글은 아닌 것 같긴한데, 내용이 너무 와 닿더라.

저 기사 글의 ‘에인젤(Angel) 사업자’는 아마 지금 시대의 ‘벤처투자사’ 정도로 번역될 것 같은데, 과연 한국에 위에서 언급하는 역량을 갖춘 곳이 있을까 싶다.

내가 언제 꼭 자본과 인력이 생기면 저걸 하고 싶었는데…

 

문득, 2016년 1월 방학 중 어느 날, 우연히 스탠포드 대학 앞 University Road에 있던 어느 까페에서의 대화가 기억난다.

당시 난 한국에서 교수하는게 불가능한 ‘이상한’ 박사 전공을 잘못 들어가서 인생 꼬였다, 그냥 욕심버리고 중위권 경제학 박사->국책연구소 트랙이나 탈껄…근데 내 성격에 그럼 바로 그만둘텐데… 같은 생각을 하며,

전공 살릴 수 있는 헤지펀드나 우연히 알게 된 Data Science 관련 포지션으로 구직 카드들을 만지작 거리던 시절이었는데,

이런저런 인연으로 나랑 비슷하게 수리통계, 계산통계 훈련이 된 인도, 중국 애들과 어울려 의기투합을 하곤,

Palo Alto 일대에서 1인당 수십만불씩 Private Tutor 비용을 들여가며 자식들 수학 교육을 하고 있던 그 일대 고액 연봉자들 집단을 이용해먹을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학 문제 수십만개를 스캔한다음 DB에서 비슷한 문제 찾아서 보여주고, 풀이법은 우리가 좀 고생해서 만들고.. 이런 스토리를 만들고는,

그 동네 널려있는 VC들 중 한 사람을 만나서 허접한 앱과 함께 피치를 날리니까 바로 우리더러 백인 forehead 한 명을 골라오라더라.

앞에 내세울 백인이 하나 있어야, 너네같은 ‘동양인 Nerd 남자’애들이 만든 걸 미국 학부모들한테 팔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전화번호 몇 개를 넘겨받고 그 중 한 분을 뵈었는데, 자기한테 지분 30%와 투자금 받고나면 연봉을 빵빵하게 챙겨달라고 그랬다.

그 돈으로 사업키워야지 무슨 네 연봉이냐고 우리가 받아치니까, 그럼 지분 50%를 달라더라.

우리가 전부 다 만들어야 되는데, 우리끼리도 25%씩 나눠갖는게 빠듯하구만, 이런 쌩양아치를 봤나 싶어서 욕을 할 뻔했다.

나도 그랬고, 그 친구들도 그랬고, 그냥 그렇게 사업 포기하고, 방학 끝나면서 다들 학교 돌아갔다가 이래저래 취직이나하며 연락이 끊겼네.

 

그 때의 우울한 기억을 갖고, 한국에서 사람모아서 뭐 좀 빵빵하게 키워서 들고가면 그렇게 다 털리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귀국 후 창업한지 얼마 안 된 무렵에,

어느 VC 하나가 찾아와서 자기가 10억 투자금 마련해올테니까 지분을 25% 챙겨달라더라.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저 사람은 내 사업모델이 뭔지 이해 하나도 못하는 폭탄인데….찜찜…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받은 투자 계약서를 읽어보니, 이건 무슨, 노예계약서가 이런 버전도 있구나 싶은게, 너무 충격이었다.

그냥 천천히 키워서 내 사업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났다.

 

‘혼자 스위스까지가서 학교 만들 능력 있으면 돈 버는데다가 그 능력 투자해라고 이 X신아’라는 친구의 놀림을 들으며,

도대체 뭘 해야, 어떻게 인력을 모아야, AI사기, 코인사기 안 치고 내 마음에 드는 상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다가가 팔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고 사는 중인지라,

저 위의 ‘해외 전문가는 진짜 전문가’, ‘국내 전문가는 2/5가 코스프레’라는 기고 기사가 가볍게 읽히질 않는다.

 

한국와서 ‘우와, 이 사람 진짜 실력자다. 믿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별로 만난 적이 없다.

나 하나 믿고 우리 회사 와 준 직원들한테 좀 미안한데, 한국와서 이렇게 인력수준이 심각할 줄 몰랐다고 화내는 나 스스로가 항상 Stupidest person in the building이었다고 변명하면 될까?

보통 전문가 위촉 어쩌고 자리에 가면, 무슨 바람의 검심 빙의해서 방 전체를 단 칼에 싹 쓸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생길만큼 멍청한 소리들만 한다.

답답해서 목소리를 높이면, 자기네들끼리 카르텔이 있는지 허허 웃으며 날 외면하거나, 니까짓게 뭔데 날 무시하냐고 욕을 하기도 하더라.

저 위 기고글의 ‘2/5가 코스프레’ 부분이, 아예 그냥 ‘5/5가 코스프레’라고 이야길 하고 싶다.

 

지난 몇 년간 뭘 하나 하고 싶어도 마음에 드는 팀 구성하기가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그 때 그 50% 달라던 그 백인 양아치가 사실 양아치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도 그 지분으로 몇 명 더 데리고 와야 된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키워서 어떻게 팔고 나가야겠다는 계산이 섰겠지.

우리 사업 모델을 제대로 이해하는 백인 고스펙 존잘남이 흔치 않으니 콧대가 높았을수도 있고.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걸 꼼꼼하게 따져가며 백인 존잘남이 50% 받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간 온갖 좌충우돌을 겪으며 알게 된 건, 뻥치는 사기말고 정말 고급 상품을 만드는 건 ‘극소수의 능력자들 w/ tons of 경험’이 필요하다는 거다.

뭔가 좀 잘 해놨다 싶어서 뿌듯해다가 몇 달 간 더 열심히 익히고 난 다음, 전에 해 놨던 걸 보면 조잡하기 그지 없어 보인다. 겨우 몇 달 훈련에.

경력직 직원 하나가 해 놓은 수준이 너무 낮길래 ‘이건 인턴 수준’이라고 꾸중 한 번 하니, 찔찔 울며 짐 싸서 그대로 퇴사하는 걸 겪으며,

그 ‘인턴 수준’들이 해 놓은 뻘짓 때문에 내 일만 계속 쌓이고 회사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가는 상황을 계속 겪으니, 더더욱 그 50% 아저씨가 생각난다.

‘인턴 수준’들의 뒷수습을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내가 할 생각이 없었던 업무들마저 몇 달사이 실력이 훅 늘어서 사람보는 눈만 더 까탈스러워지게 돼버렸다.

그렇게 눈이 쪼끔씩 개안(?)되면서, 20년차 디자인 경력자 분이 3,5,7년차들 포트폴리오를 보시더니 “이건 3년? 3년 어렵나?, 요건 5년쯤 됐겠네요. 이건 더 좋네요. 7년?” 이렇게 딱딱 맞추시는걸 보고,

한 길을 험하게 파 들어가신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고개를 숙여가며 배우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극소수의 능력자들이 세상에 별로 없더라.

이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그렇게 전화번호 받았던 백인 존잘남들을 열심히 만나가면서 깨져보며 세상과 사업을 배웠을텐데…

꿈을 이루고 싶은 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이태리와 파리의 에인젤 사업자’ N명을 내가 다 해야한다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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