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뜨거운’ 징병제 폐지와 모병제 도입 논의…유럽 사례를 살펴보면

모병제 “한반도 긴장 여전” vs 징병제 “인구 줄고 병력 자원도 줄어”…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에서 의견 팽팽 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 유럽 사례 탐구. “1990년 징병제 폐지한 유럽, 2010년부터 부활 움직임” “두 제도 경험한 유럽은 좋은 참고 사례, 한국의 대내외적 현실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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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한국에서도 징병제 폐지와 모병제 전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병역 자원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대규모 병력 유지의 필요성 또한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모병제가 꼭 필요하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반면 한반도와 국제 안보의 갈등 수준이 높아지면서 징병제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입장도 여전하다. 지난달 30일 국회입법조사처는 ‘모병제 도입 및 징병제 재도입 국가 비교 분석 – 유럽의 사례 분석과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병역제도 논의 현황과 유럽의 모병제, 징병제 전환 사례를 분석했다. 유럽은 1990년대 모병제를 도입한 경우가 많았지만, 2010년대 들어 징병제를 재도입하는 국가도 증가하는 추세다.

2000년대부터 활발해진 국내 논의, 징병제 vs 모병제 여전히 반반으로 갈려

한국은 헌법과 징역법에 따라 모든 남성들이 병역 의무를 지는 징병제 국가다. 경제력과 국방예산이 증가하고 첨단무기가 개발되면서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인구가 갈수록 줄면서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기 힘든 현실도 작용한다. 바깥으로는 남북한 관계 개선의 경험이 쌓이고 있고, 소규모 정예 병력의 해외 파병이 늘면서 모병제의 필요성도 점차 대두하고 있다.

모병제 논의는 2000년대부터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활발해졌다. 정치권에선 2002년 16대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처음으로 단계적인 모병제 전환을 제시했고, 2007년 대선에선 주요 정당 후보들도 모병제에 대해 언급했는데 남북한 관계가 개선된다면 모병제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 대다수였다. 2010년대 들어서 대규모 병력 유지가 어려워지고 징병제의 사회적 비용도 증가하고 있으므로 모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2022년 대선 때는 인구 감소 대처와 군 인력 전문성 강화를 위해 병역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공약이 나왔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군 자원 감소에 대비하기 위하여 징모혼합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재명 후보는 스마트 강군과 군 인력 전문성 강화를 위해 선택적 모병제를 제시했다. 심상정 후보 역시 징병제로 인한 젊은이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2030년까지 모병제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정치권에서는 인구 감소로 인한 병역제도의 개편, 군의 전문성 강화,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모병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제기되어 왔으며, 도입 시기나 규모,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학계에서도 모병제에 대한 찬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모병제 찬성파의 주된 근거는 모병제가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자원 감소의 현실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병제 운용 비용이 징병제에 비해 적을 수도 있고, 모병제를 통해 소득 불평등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접근도 있다. 보고서는 “급격한 병역제도 개편을 통해 모병제를 도입하기보다는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점진적으로 전환해나가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반면 모병제를 도입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한반도 긴장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 북핵 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모병제로 병력 규모를 축소하는 건 시기상조란 의견이다. 시민단체와 여론 또한 입장이 팽팽하게 갈린다. 2016년 9월 한국갤럽이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징병제 찬성 48%, 모병제 찬성 35%로 징병제 유지에 대한 지지율이 더 높았지만, 같은 기관에서 2021년 5월 성인 1,003명에 대해 같은 질문을 한 결과 징병제 유지는 42%, 모병제 도입 찬성이 43%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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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으로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징병제 폐지

1990년 들어 유럽 국가들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1995년 벨기에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2000년대엔 스페인, 슬로베니아, 포르투갈,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라트비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2010년대 스웨덴, 독일 등 여러 국가들이 모병제로 전환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이 모병제로 전환한 것은 냉전 종식 때문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1년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되면서 소련이 사라졌다. 2000년대 해외 파병이 빈번해지고 동유럽 국가들이 NATO와 EU에 가입하면서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은 군비 경쟁과 대규모 병력 유지가 불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됐다. 1995년부터 서유럽 국가들이 모병제를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엔 동유럽 국가들도 차례로 모병제로 전환했다.

주요국인 프랑스의 경우 2001년 유럽 국가 가운데 벨기에, 네덜란드에 이어 3번째로 모병제를 도입했다. 프랑스는 사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전 국민을 징집 대상으로 하는 현대적 징병제를 세계 최초로 실행했던 국가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함께 정치권에서도 대규모 병력 유지에 대한 회의론과 모병제 도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는 1995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병력 감축과 모병제 전환을 목표로 하는 법을 채택, 야당의 동의를 얻어 모병제를 도입했다. 1997년 프랑스 정부는 국방개혁 예산으로 GDP의 약 2.3%에 달하는 1,850억 프랑(약 308억 달러)을 책정했는데, 이 가운데 46%를 첨단무기 등 방위력 개선에 투입했다. 병력 규모 감축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전투력 공백을 미리 보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로 2001년 모병제로 전환할 당시 병력이 대폭 감축된 상태였기 때문에 모병제 전환에 큰 비용이 소요되지 않았다. 프랑스 경제가 호황기였기 때문에 비용 부담에도 문제가 없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였으나 통일 후 모병제를 도입한 국가로 독일 사례를 참고할만하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10년 늦은 2011년 7월 1일에 모병제를 도입했다. 동서독 간의 갈등을 제거하기 위한 대규모 병력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했고, 1990년 통일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동의를 도출하기 위해 병력 감축을 선제적으로 결정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서독은 동독의 사실상 붕괴로 대규모 병력을 감축하고자 했다. 1990년 9월 독일은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해 1990년 10월 통일에 대한 주요국들의 합의를 도출했다. 주요 골자는 당시 60만여 명이었던 병력을 1994년 말까지 37만 명으로, 2019년에는 18만5,000명으로 감축하는 것으로 사실상 소규모 정예 부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질적인 모병제는 다른 EU 회원국보다 늦은 2011년에야 도입됐다.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 안보 위협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고, 막대한 통일 비용을 부담한 서독이 모병제 전환으로 인한 비용까지 추가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국제 질서 변화와 징병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등으로 모병제 도입을 미룰 수 없게 되었고, 2000년대 들어 탈냉전에 따른 긴장 완화와 비EU 회원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 해외 군사 작전 등이 중요해지면서 최첨단 장비 기술을 보유한 소수 정예 병력의 중요성이 커졌다. 병역 기피 현상도 징병제 폐지를 앞당겼다. 현재 독일은 2022년 기준 18만4,000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예비군은 1만5,000명이다.

유럽선 21세기 들어 러시아발 전쟁 위기와 테러 사태로 징병제 부활 움직임

2010년대 들어 유럽에서는 징병제를 재도입해 일정 규모의 병력을 확보함으로써 안보 위기에 적극 대응하고자 하는 국가가 증가했다. 러시아가 조지아, 우크라이나와 충돌하자 주변 국가들의 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조지아 외에도 인구와 국방력 면에서 규모가 작고 반러 경향이 강한 발트 3국의 경우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먼저 징병제를 재도입한 곳은 우크라이나로 2014년 러시아의 침공 직후 병역제도를 전환했다. 이어 2008년 모병제를 도입했던 리투아니아는 2015년에,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던 조지아는 모병제로 전환한 지 7개월만인 2017년에, 2010년 모병제로 전환했던 스웨덴은 2018년에 징병제를 재도입했다. 라트비아는 내년에 징병제를 다시 운용할 계획이다.

징병제를 재도입한 국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거나 거리가 가까운 인접국이고,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위협을 심각하게 보는 여론이 고조되면서 징병제 재도입을 찬성하는 시민이 많아졌다. 스웨덴이나 리투아니아에선 모병제 도입 후 목표로 하는 병력 충원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모병제에 대한 회의론도 등장했다.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경우 2013년 10월 모병제 전환을 결정했다가, 2014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크림반도를 강제로 할양당한 직후 징병제를 재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인구수 5,200만 명 정도인 우크라이나는 모병제 전환에 앞서 선제적으로 병력 규모를 축소해 왔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78만 명이었던 병력은 2001년 4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2012년에는 18만4,000명으로 줄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2018년까지 병력 규모를 7만 명으로 더 축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4년 초에 있었던 러시아 침공으로 인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해졌다. 2014년 다시 징병제로 전환해 2022년 2월 기준 우크라이나는 6만 명의 직업군인을 포함해 총 25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게 됐다.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모병제를 도입했지만, 2010년대 들어 러시아의 위협이 커지면서 러시아 인접국들을 중심으로 징병제를 재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이후 독일과 크로아티아, 2017년부터 불가리아, 프랑스에서 징병제를 재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에선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독일 정치권을 중심으로 징병제 재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군비 증강을 우려하는 주변국들의 반발과 세계대전 전범국이란 꼬리표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프랑스는 테러 예방 목적으로 징병제의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5년 11월 파리와 근교 7군데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의 테러가 발생해 13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2016년 7월 프랑스혁명기념일에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한 트럭 테러가 발생해 86명이 사망했다. 테러리스트들이 외국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 이민자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민자들이 경제적 박탈감과 정체성 혼란을 예방하고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징병제가 호출되고 있다. 2017년 4월 대선 후보로 나왔던 엠마누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징병제 재도입을 주장하며 젊은이들이 1개월 군사 훈련을 받는 단기 군 복무를 제안했다. 이 제도는 2019년부터 15세에서 17세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범 운용한 뒤 2021년에 정식 시행했다. 원안은 의무 단기 징병제였으나 일부의 반대로 인해 자발적으로 이에 응하는 젊은이들만을 대상으로 2주간 운영하게 됐다. 보고서는 “이런 제도가 단기 징병제로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며 “독일과 프랑스의 징병제 재도입 논의가 상호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독일이나 프랑스 중 한 국가가 징병제를 재도입할 경우 서유럽에 징병제 재도입이 확산될 확률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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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와 징병제 장단점 뚜렷, 한반도 넘어선 국제 정세와 비용을 입체적으로 살피며 논의해야”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20여 개 국가가 모병제를 도입했으며, 2010년대에는 다시 5개 국가가 징병제를 재도입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도 징병제 재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사례를 국내 징병제 폐지와 모병제 채택 논의에 참고할만하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먼저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보 상황을 국제적·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안보 상황을 남북한 관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경향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한반도 상황 외에도 미중 전략경쟁, 일본의 대외전략 변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의 영향력 변화 등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제 질서의 변화를 보다 광범위하고 입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병력 유지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보고서는 제시했다. 유럽의 사례처럼 한국도 해외 파병 증가나 국제 안보 협력 등으로 소규모 정예 부대의 육성이 필요해졌고 첨단무기 개발로 대규모 병력 유지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국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대규모 병력 유지가 영토 수호에 더 유리할 수 있다. 보고서는 “한국의 경우 대내외 안보 상황 및 군사 작전 전략을 살펴보고 어떠한 병역제도가 더 적절할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예산과 비용도 중요하다. 국회예산정책처와 학계에 따르면 모병제를 도입하면 수조원에서 수십조원까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해외 사례와 우리나라 상황 등을 고려하여 과도한 예산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병력 규모와 구조 등을 개편하는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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