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서정가제, 반복되는 공허한 논란과 탐욕

안상수 상임이사 “할인, 마일리지 때문에 책값에 거품이 끼었다” 거품 없애기 위해 할인 금지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 정가제 폐지 목소리 높고 실질적 평가도 좋지 않은데 반영 이뤄지지 않고 있어 결국 도서정가제만으로 도서 시장 문제 해결 불가능, 실질적 해결 위해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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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는 수년간 한국에서 논란이 되어온 문제다. 2019년 10월, 20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은 국민 청원이 이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23년 일몰법 시한이 다가오는 도서정가제의 미래는 헌법재판소의 손에 달려 있다. 일몰법이란 법률이나 규제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효력이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다.

이에 지난 14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 8월부터 시작된 ‘도서정가제 영향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7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연구는 제도의 현황과 성과, 한계를 분석하고 향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3년 도서정가제 현황

도서정가제가 갑자기 도서 할인을 제한했다는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도서정가제는 출판 및 인쇄산업 진흥법(현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라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법 시행 초기에는 온라인 서점에만 10% 할인과 중고 도서 할인이 적용되었으나 이후 오프라인 서점까지 확대됐고, 2012년부터는 전자책에도 중고 도서 할인이 적용되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적용 범위가 확대됐지만, 그간 법안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애당초 규제를 오프라인 서점에만 적용해야 하는지, 전자책까지 포함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논란과 이견에 직면했다. 그러나 헌책에 대한 할인이 허용되고 신간 도서에 대한 가격 규제가 일정 기간 동안 제한되는 등 합리적인 수준이라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크지 않았다. 원래 법안은 5년간만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2007년에 해당 조항이 삭제되고 도서정가제가 영구적으로 정착됐다. 이전 법안에는 여러 가지 논란과 문제점이 있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고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국가적 이슈도 없었다.

구 도서정가제에서는 출판사가 도서의 가격을 정하고 3개월 동안 고정 가격이 적용됐다. 하지만 출판사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첫 두 달 동안 할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정가제가 한 달 동안만 시행되어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할 수 없다는 소규모 서점의 불만이 제기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도서정가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도서정가법은 출판사가 최소 6개월 이상 도서에 대한 고정 가격을 책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출판사는 이 기간 동안 할인이나 기타 판촉 행사를 제공할 수 없다.

할인율과 도서정가제, 누가 책을 사서 보는가

도서정가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도서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OTT 서비스나 게임 등 다른 형태의 미디어에 비해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은 탓에 소비자가 책을 구매할 유인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도서 업계가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도서정가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할인율 자체가 아니라 도서의 높은 가격이 핵심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지 않으려는 도서정가제 옹호론자들의 발언이 여전히 많다.

지난 14일 공개 토론회에서 이정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부회장은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며, 현재 적용 중인 10% 할인과 5% 내외의 포인트도 금지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 부회장은 “완전 도서정가제만이 지역 서점의 생존을 버틸 수 있으며, 독자에게 다가갈 문화의 선봉장이 될 것”이라며 모든 할인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도서의 무료배송 또한 금지해 택배비를 의무화하고, 학교 도서관이 책을 구매할 때 할인 혹은 마일리지 제공을 금지하는 것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지역 서점의 건강한 영업 환경을 보장하고, 동일한 책은 어디에서나 같은 가격에 판매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주장하며 “현재 도서정가제에서는 10% 할인과 5% 마일리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책 가격이 부풀려져 비싸지고 있다”며 “따라서 완전도서정가제로 책 가격의 거품을 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책 축제에서도 책 할인이 불가능해져야 한다”며 “이에 따라 책 축제가 성공할 수 있도록 특별할인 없이도 충분한 독자들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운 주장들이다. 서점에 들러 괜찮은 책 3권을 구입하려면 5만원은 넘는다. 어지간한 인문학 책을 구입하려면 10만원은 훌쩍 넘어간다. 도대체 어떤 시민이 10만원을 써 가면서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 현재의 가격 책정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가격을 인하해 콘텐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 오히려 비교적 가격을 싸게 공급할 수 있는 대형 인터넷 업체를 압박해 당장의 이윤만 챙기려고 하는 속셈일 게 뻔하다. 그 이윤을 포장하고자 내세우는 대표적인 명분이 바로 동네 지역 서점과 지역 독서 문화의 활성화다.

지역 서점 보호라는 정당화

이정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부회장은 도서 무료 배송을 포함한 모든 할인을 금지해야 한다며 완전 도서정가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정원 부회장은 도서정가제를 통해 지역 서점의 건전한 영업 환경이 조성되고 모든 플랫폼에서 도서 가격이 통일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부회장의 말대로 완전 도서정가제가 도입된다면 모든 플랫폼에서 도서 가격이 통일될 수는 있겠지만, 과연 지역 서점의 건전한 영업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그냥 책을 안 사지는 않을까?

이처럼 도서정가제에 대한 주요 주장 중 하나는 소규모 서점이나 독립 서점이 대형 소매업체와 경쟁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소매업체가 무료 배송이나 기타 할인 등 소규모 서점이 따라올 수 없는 다른 인센티브를 여전히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 독립 서점들은 정부의 지원과 공공도서관 납품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어 도서정가제의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온라인 쇼핑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이 직면한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는 처사다. 편의성, 독점 상품, 빠른 배송은 저렴한 가격 외에도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중요한 요소다. 많은 소비자들이 이러한 이유로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대신 온라인 쇼핑을 선택한다. 독립 서점을 포함한 출판 업계는 소비자 행동과 선호도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도서정가제를 해결책으로 고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지역 서점 및 독립 서점이 직면한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고사를 가속화시킬 뿐이다.

지역 서점의 수나 매출이 크게 증가했는지 그 실질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지역 서점에 기여했다는 증거가 없다. 조윤미 미래소비자행동 상임대표는 도서정가제가 소비자 후생을 떨어뜨리고 있어 도서정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도서정가제가 출판문화산업 보호 및 육성과 중소 지역 서점 보호라는 두 가지 성과를 어느 정도 거두었는지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아울러 도서정가제가 책 할인을 막는 제도인 것이 아니라 책 공급률이 문제라는 점을 꼬집으며, 지역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책이 배포되는 가격이 달라지면서 지역 서점이 경쟁력을 잃은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도서정가제 폐지 대신 공급률을 동일하게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최종 할인을 막는 것보다는 이러한 방식으로 소비자와 지역 서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정가제가 소비자 후생을 억제한다는 것 자체를 출판계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독서 인구의 감소는 어떤 정책 변화보다 지역 서점의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현행 제도의 지지자들은 장기적으로 혜택이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인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는 불분명하며,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 법이 진정 누구에게 혜택을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하고 저렴하며 다양한 도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함이 있는 도서정가제를 개혁해야 한다. 한국은 △도서의 가격거품 제거와 가격 안정화 △창작 의욕 및 활동 고취 △다양한 출판물 제작 유통 활성화 △중소출판사 및 지역 서점 경쟁력 강화 △소비자의 다양한 양서 접근 기회 확대 등 출판문화 산업 환경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해 2003년에 처음 도서정가제를 도입·시행됐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이러한 취지를 모조리 무시하고 있다. 이해관계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가격 책정 시스템에 집착하는 대신 업계가 직면한 도서 인구 감소라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접근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도서정가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대신 점진적인 가격 인하 전략을 시행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전략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비즈니스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미리 정해진 기간에 걸쳐 도서 가격을 서서히 인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소비자의 높은 진입 장벽을 낮추고 책을 더 저렴하게 만드는 동시에 도서 산업의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도서 구독 서비스나 주문형 인쇄와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을 장려하면 지역 서점이 대형 소매업체 및 온라인 플랫폼과 차별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를 유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책을 접하도록 장려할 수 있다. 나아가 지역 서점을 지원하기 위해 당국은 재정 지원, 세금 인센티브, 교육 프로그램, 마케팅 지원 등 보다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이로써 소규모 비즈니스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성장하는 동시에 독서와 지역 문화의 중요성을 홍보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지역 서점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소비자에게 더 많은 도서 선택권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독서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독서 문화를 장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공 독서 캠페인, 북클럽, 작가 이벤트 등은 이러한 인센티브의 몇 가지 예시에 불과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참여하도록 장려함으로써 업계는 더욱 크고 지속 가능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지역 서점과 전반적인 도서 산업의 번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도서 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관계를 강화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협력적이고 조율된 접근 방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출판사, 작가, 서점이 함께 협력함으로써 업계의 전반적인 건전성을 증진하는 상호 이익이 되는 전략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력은 지역 비즈니스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보다 활기차고 다양한 도서 시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의 도서정가제 논쟁은 업계의 미래, 지역 서점의 역할, 가격 정책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심지어 이 거위는 못 먹고 비루하여 시름시름 앓고 있다. 어차피 죽을 것 내 손으로 끝내겠다는 자세가 아니라면, 모두를 위해 저렴하고 다양한 도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할인율과 도서 가격을 둘러싼 현행 정책을 재평가하고 이러한 정책이 지역 서점, 판매 및 소비자 행동에 미치는 실제 영향을 조사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이고 공평한 해결책을 개발할 수 있다. 점진적인 가격 인하, 경쟁과 혁신 장려, 지역 서점에 대한 지원 확대, 독서 문화 조성, 출판사, 작가, 서점 간의 협력 강화 등은 한국 도서 산업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해결책에 불과하다. 도서정가제만으로는 도서 시장에 내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무익한 논란으로 인한 행정적·사회적 낭비를 줄여야 한다. 이제는 실질적인 해결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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