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닮은 한국과 독일, 미중 패권 경쟁 속 안보 해결 위한 양국의 선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독일과 한국, 독일은 통일했지만 한국은 ‘분단’ 상태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국제정세 속 안보와 생존 위해 선택해야 독일 비해 나쁜 한국 상황, 세력균형 위해 독일과 동맹 강화는 물론 대안 모색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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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 모두 중국과 긴밀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당연한 수순으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독일은 유럽에서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독일은 중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은 본격적으로 미국,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독일과 다르게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어 변수 발생률과 위험도는 여전히 높다. 미묘하게 굴러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8,000km 떨어진 한국과 독일, 비슷한 역사 공유

독일은 제 2차 세계대전 승전국에 의해 1949년 미국, 프랑스, 영국군이 주둔하던 지역은 서독으로, 소련군이 주둔하던 지역은 동독으로 분단됐다. 냉전이 시작된 이후 동독과 서독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로 진영 갈등을 겪으며 1961년에는 베를린 장벽마저 세워졌다. 서독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가속화되며 촉발된 베트남 전쟁 반전 운동의 영향으로 나치 시대의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후 1969년 서독은 동구권 국가들과 동독과의 관계 개선을 이뤄냈으며 경제적인 교역도 진행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동독과 서독 간에 급격한 통일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이 개방되자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통해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망명했다. 결국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서독과 동독은 1990년 10월 3일 하나의 독일로 통일됐다.

한국은 1950년에 발발한 6.25 한국 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됐다. 38선을 기준으로 북에는 중국과 소련군이, 남에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자리했으며, 각각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로 정치적 진영이 분리됐다. 양국은 1948년 각각 정부를 수립했고, 주석과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급격한 경제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독일과 다르게 그 어떠한 교류도 없었고, 서로 간의 이동과 망명은 자유롭지 않았다. 분단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북한 정부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위협할 수 있는 핵 개발에 성공하면서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김홍균 주독일한국대사는 “한국과 독일이 비슷한 역사를 경험했고,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기에 정치, 경제, 문화, 인적교류 분야에서 더 많은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국은 올해 수교 140주년을 맞았다. 또 독일에서 수천 명의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에게 임시 고용을 제공한 양측 간의 채용 계약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독일 역시 “한국은 독일의 중요한 파트너이자 국제사회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중요한 목소리”라고 강조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강대국 눈치 보기는 여전, 중국과 미국 사이 낀 독일과 한국, 파트너쉽 강화하잔 목소리도↑

시대가 흐르고, 무역과 투자에 의해 지배되던 국가 간의 관계는 안보 고려 사항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과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두고 경쟁에 돌입했다. 세계 각국은 일대일로를 이루려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는 미국 사이에서 외교를 해야만 했다. 중국에 너무 잘해주어도, 미국에 너무 협조해도 곤란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한국과 독일에 더욱 치명적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두 국가는 안보 문제로 인해 미국과 동맹을 맺었음에도 대(對)중국 무역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출 규모로 인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독일 수출의 약 8%가 중국 시장으로 향하며, 한국은 전체 수출액의 1/4에 해당하는 규모가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즉 중국이 한국과 독일 모두에 대해 상당한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한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산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사드(THAAD)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중국은 사드가 중국의 군사 활동을 염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으로 반격했다. 이는 많은 한국 기업들, 특히 10년에 걸친 중국에 대한 전략적 추진을 감행한 롯데그룹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한한령을 통해 문화적인 교류도 차단되어 K-드라마, K-문화 열풍을 꺼트려 버리기도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거세지는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는 세계의 양극화를 야기함과 동시에 한국과 독일이 취했던 수출 의존 경제에도 큰 공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SWP)의 아시아 전문가 에릭 볼바흐는 “양국은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따라서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강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볼바흐는 한국과 독일이 파트너십을 깊게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0년 당시 독일 총리였던 메르켈 총리가 G20 정상회의 참석을 목적으로 한국에 방문했지만, 양자 간 협력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일은 30년 전”이라고 지적하며 “정치적으로도 독일과 한국의 파트너쉽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만일 독일 총리가 한국에 방문한다면 대단히 환영할 것이라며 “한국과 독일은 중국에 대한 전략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양자 간 관계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추가적인 협력을 비롯하여 지역 및 글로벌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중국과 관계 조정에 나선 한국과 독일, 독일 비해 한국 상황 안 좋아 대안 필요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현지 시각)부터 12일까지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인 친강이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친 부장은 이번 방문 기간 동안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 등과 만나 미국 주도의 대중국 디커플링(공급망에서의 배제)에 동참하지 말 것과 유럽의 독자적인 대중국 접근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17일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대만에 대해 무력 통일을 불사하겠다고 밝힌 중국을 비판하며, ‘니혼게이자이 신문’을 통해 일본·한국·인도 등을 언급하고 “특정 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을 피하고 새로운 판매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중국 이외의 아시아 국가들과 교류해 독일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또 완전한 디커플링은 감행하지 않고, 경제적 협력을 지속하겠지만 새로운 중국 정책은 조만한 발표 하겠다고 전했다.

한국은 최근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 정상회담을 치러내며 한미일 공조를 굳건히 했다. 북한의 위협과 북한에 연대한 중국, 러시아 등과 맞서기 위해 미국, 일본과 손을 잡은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서울에서 아날레나 배어복 독일 외교장관과의 만남을 통해 독일이 유럽 내 한국의 최대 교역대상국이자 글로벌 중추 국가 외교 정책의 핵심 협력 대상국임을 강조했다. 또 한반도 정세, 우크라이나 전쟁,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적 협력 방안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를 가졌으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독 단합을 통해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로써 한국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 쪽으로 한발 다가간 상태다.

사진=외교부

그럼에도 동아시아 세력균형은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무언가 불안하다. 실상 한국 상황은 독일보다 좋지 않다. 독일에 비해 한국의 외교적 도구는 현저히 적은 반면 중국 의존도는 배로 높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은 중국에 협력하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중국과의 물리적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이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 북한과 강력히 연대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이 우크라이나 측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한-러 관계는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 시장은 독일과 다르게 여전히 분단 상태에 있어 북한이라는 변수로 인해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한미일 공조를 통해 어느 정도 반격할 힘을 비축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동아시아의 시한폭탄인 것이다. 국내외적 외교·안보 안정과 패권 경쟁 속 생존, 북한과의 통일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세밀한 외교 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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