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질적 전환하겠다”는 정부, R&D 관리 체계 민간 부문 아웃소싱 불가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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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질적 관리 통해 세계 최고 도전하겠다?
공무원 중심 R&D 관리 체계 뜯어고치지 않으면 '제자리 맴돌기' 꼴
과학자 커뮤니티의 자율성에 맡긴 예산 분배 먼저 이뤄져야

정부가 앞으로 3년간 글로벌 연구개발(R&D)에 5조4,000억원 +α를 투입한다.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 대비 5조2,000억원(16.6%) 삭감했으나, 예산은 줄이더라도 R&D 질적 투자에 집중해 세계 최고 연구에 도전하겠다는 복안이다. 다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R&D 투자 예산 집행 인력들은 과학 관련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 조직이 주를 이루는 만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기술·과학 분야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현행의 국가 주도 R&D 투자 방식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일각에선 이같은 한계를 인식한 정부 또한 당초 ‘R&D 질적 관리’ 목표에 맞게, R&D 예산 투입 관련 인력들을 해외 연구전문기관 등에서 아웃소싱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정부 R&D 혁신 방안과 글로벌 R&D 추진 전략’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윤석열 정부, R&D 혁신 방안 및 글로벌 R&D 전략 의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3차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 R&D 혁신 방안과 글로벌 R&D 추진 전략’이 심의·확정됐다고 27일 밝혔다.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혁신적 R&D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거듭나기 위해, 제도·투자·국제협력 등 3대 분야의 혁신 내용을 담은 ‘R&D 혁신 방안’과 ‘글로벌 R&D 전략’을 수립 및 실행함으로써 과학기술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 중 먼저 제도혁신의 측면을 살펴보면, 윤 정부는 도전적 연구에 대해선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성패를 구분 짓는 평가 등급을 폐지하는 등 연구에 실패하더라도 후속 과제 선정에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할 예정이다. 또 연구 성과가 뛰어난 연구자가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도록 기술료 보상 비율을 현행 50%에서 60% 이상으로 올린다. 아울러 도전적 R&D를 위한 고성능 연구 시설·장비 도입 계약에 걸리는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50일로 대폭 단축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연구 시설·장비 구매를 수의계약 대상에 추가해 조달 소요 기간을 단축하도록 하는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개정한다. 이어 정부는 우수 연구과제라면 내년도 예산까지 기다리지 않고 연중 언제든 추진할 수 있게끔 연구 과제비 사용기간과 회계연도를 일부 일치시킬 방침이다. 나아가 ‘종이 없는 연구 행정’ 실현을 목표로 컴퓨터 시스템에 등록된 연구비 사용 증빙자료는 별도 문서화하지 않고, 정산·감사 시에도 등록된 자료를 활용하도록 대통령령으로 법제화할 예정이다.

투자 혁신의 측면에서 정부는 이날 ‘차세대 기술 분야 대형 R&D 투자 확대’를 공언했다. 이로써 양자·우주·바이오·원자력·통신 등 12대 국가전략 기술 분야는 연간 5조원 수준으로 지속 투자될 예정이다. 또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벤치마킹해 실패 가능성이 높지만 성공 시 엄청난 파급효과를 주는 ‘고위험·고수익형 R&D’도 국가 차원 투자를 통해 장려한다. 이어 정부출연연구기관(정출연)과 대학은 세계적 기초·원천 연구의 허브로 육성한다. 특히 정출연은 기존 소모적인 과제 수주에서 벗어나 ‘대형 원천기술 개발’에 몰입하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국가전략 기술 등 국가 임무의 전진기지인 국가 기술연구센터(NTC)에 핵심 연구 인력과 장비를 결집시킨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연구기관 내 최고 수준 연구자 또는 NTC 참여 연구자가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연구를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해당 인력들의 인건비 100% 보장 등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국제협력 혁신 측면을 살펴보면, 글로벌 R&D 투자를 당초 정부 R&D의 1.6%(5,075억원) 수준에서 6~7%(약 1조8,000억원) 수준으로 확대·유지하고, 나아가 향후 3년간 총 5조4,000억원 +α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글로벌 R&D 특성상 상대국 상황에 맞춰 탄력적인 예산 운영이 필요한 만큼, 글로벌 공동연구는 사업 집행의 회계연도 이월도 허용한다. 나아가 한·미·일을 중심으로 글로벌 R&D 협력 프로젝트를 신설하고, 중동, 아세안 등 다양한 국가와도 협력을 늘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해외 연구기관이 우리나라 R&D에 주관·공동기관으로 참여할 수 있게끔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글로벌 R&D에 한정해 연구자 참여 제한 규정도 완화한다.

정책 방향은 옳지만, R&D가 ‘도전적’인지는 어떻게 판단?

다만 정부의 이번 R&D 방안 및 전략 내용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적잖은 실정이다. 윤 정부가 이번 R&D 질적 전환 정책에 따라 기존 R&D 예산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해 비효율을 줄이면서 세계 최고 연구에 도전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현재 연구 인프라 실상을 고려하면 이번 발표의 일부 세부적 내용에 대한 제도적 실효성에 대해선 쉽사리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 발표된 내용 중 윤 정부는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인 도전적 R&D에 한해 연구가 사실상 실패하더라도 후속과제 선정에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겠다고 했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해당 연구 성과가 실제 과감성, 접근 방법의 기술적 참신성 등의 도전적 성격을 지녔는지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 인력을 애초에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시 말해 특정 연구가 실제로 국내 기술 산업 역량을 끌어 올려줄 가능성이 있는 도전적 R&D인지, 혹은 정부 예산금을 노린 소모적인 명목상 연구에 불과한지를 판별할 역량을 갖춘 예산 관리 인력이 없는 만큼 정부의 이번 R&D 개혁안 역시 정책의 겉보기만 바뀌었을 뿐 근본적 형태는 결국 기존과 동일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일각에선 이미 이같은 한계를 인식한 정부가 당초 수립한 ‘R&D 질적 관리’라는 예산 집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R&D 관리 체계를 민간에서 아웃소싱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오직 기업 내부의 원천기술 개발에만 매몰되는 게 아니라 다른 기업, 또는 대학교·공공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도전적 R&D 관리 전문 인력을 정부 부문이 아닌 해외 전문 연구 기관 등 민간 부문에서 끌어옴으로써 이번 개혁안의 취지를 살리고, 도전적 R&D 투자에 대한 위험 부담 또한 줄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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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는 미비한 실정

또한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R&D 예산 투입 개혁안이 실제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기술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낸다. 당장 이번에 내놓은 안들만 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R&D의 생산 지속성을 보장하는 기초 과학에 대한 내용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고, 근미래에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기술 분야에만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초 과학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는 중국 정부의 R&D 투자 양상과는 사뭇 상반된 모습이다. 2021년 중국의 기초 과학 투자 비용은 1,817억 위안(약 33조1,086억원)으로, 증가율은 전년 대비 무려 14.1%포인트 상승한 23.9%에 달하며 근 10년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중국은 R&D 투자액으로 3조 위안(약 547조원)을 돌파했고, 기초연구 투자액으로도 2,000억 위안(약 36조4,564억원)을 쏟아부으면서 전 세계 기초 과학 분야 투자 순위 2위로 올라섰다.

이렇다 보니 과학계에선 정부 주도의 우리나라 기초과학 R&D 지원 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R&D 예산 분배과정 자체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정부가 가지고 있는 데다, 전문가가 아니면 기초 과학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현재 R&D 투자 관련 모든 판단을 공무원 조직이 진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과학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의 경우 국가가 과학 분야의 예산을 분배할 때 정부가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대신 이를 과학자 커뮤니티의 자율성에 맡기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또한 현재의 국가 중심 소규모 정출연 체제에서 탈피하고, UC 버클리 로런스 버클리 연구소와 같이 대학을 중심으로 거대한 연구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과학자들이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예산을 끌어오고 독자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끔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과학계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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