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 물가 상승률 3%대 예상에도 “물가 안정책 시급” 주장 공감 못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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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내년 물가 상승률 2.6% 제시
하반기 물가 안정 본격화 전망
무리한 경기 부양책 부작용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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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월 30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응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한국은행이 내년 상반기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로 3%대를 제시한 가운데 물가 안정을 위한 조처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생과 직결된 이슈인 만큼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금융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는 우리 경제가 안정적인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무리한 정책 확대보다 시장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물가 안정책 서둘러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국내 경제 성장률을 1.4%로 유지한 가운데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로 2.1%를 제시했다. 이는 당초 발표된 기존 전망치보다 0.1%p 하향 조정한 것으로, 금리 및 고물가의 영향으로 내수 회복이 더딜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내년 상반기 물가 상승률로는 올해(3.6%)보다 0.6%p 낮아진 3.0%가 추산된 가운데 가격 변동성이 큰 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로는 2.6%를 제시했다.

이날 한은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는 기준금리(연 3.50%) 동결이 결정됐다. 금통위는 경기 침체 속에서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이 제품 및 서비스 가격에 전가되며 물가의 상방 압력이 높다고 관측하면서도 금리 인상으로 물가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국내 기준금리는 지난 2월 이후 7회 연속 동결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대에 충분히 수렴한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긴축 기조를 지속할 것”이라며 “지금으로 봐서는 최소 6개월을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통위의 발표 이후 일각에서는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생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식품류 원자재 할당관세를 확대하는 정책과 동시에 현행 10%인 부가가치세율을 7~8% 수준으로 조정해 소비자 가격을 낮춰야 한다”며 “세금 인하 효과로 소비가 늘면 전체 세수에 큰 변화가 없는 수준으로 내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고물가로 인한 충격이 더 크게 전해진다는 점에서 그들의 금융 활동을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청년들은 물가가 올라도 소득이 그대로인 탓에 물가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필수지출에 속하는 주거비와 교통비 지원을 확대하거나 신용도가 낮아 고금리에 내몰리는 청년들을 위해 채무조정 등을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느리지만 회복’ 가리키는 각종 지표

하지만 우리 경제가 소폭이나마 성장세로 돌아서며 회복력을 보이는 만큼 외부 개입이 아닌 시장의 힘으로 물가 안정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 또한 거세다. 섣부른 정책이 도리어 시장의 혼란을 키워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은의 경제전망에서 내년 하반기 물가상승률은 상반기 3.0%에서 0.8%p 내린 2.2%로 관측됐다. 근원물가 상승률 역시 2.6%에서 2.0%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 2024년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물가 상승률은 2.6%, 근원물가 상승률은 2.3%로 한은의 목표치인 2%대에 안착하는 것이다.

한동안 주춤했던 수출이 개선의 기미를 보이며 경제 회복의 신호탄을 쏜 가운데 지난 10월까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던 국제유가가 안정을 되찾고 있는 만큼 물가 안정이 가시화한 모습이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1월을 기점으로 상당 폭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유가가 다시 급등하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순조로운 안정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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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경제 부양책으로 디플레이션 목전에 둔 미국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다소 느리지만 안정적인 회복의 조짐을 보이는 배경으로 한은의 중립금리 정책이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정 국가의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금리 수준을 의미하는 중립금리는 상향 조정할 경우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과 노동시장 활성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그 배경에는 정부의 부채 확대 등 각종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어 우리 금융당국은 의도적으로 중립금리 상향을 유보해 왔다.

무리한 중립금리 상향 정책의 실패를 목전에 둔 국가로는 미국을 꼽을 수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 9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가 5.25%~5.50% 수준으로 매우 높은데도 미국 경제가 견조하고 노동시장이 탄탄한 것은 중립금리가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발표에서 미국은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 5.2%를 기록하며 가파른 경제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은 가파른 경제 성장에 따른 대가를 지불할 위기에 놓였다. 일각에서 주장되던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대한 우려가 시장 전반으로 번지며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장 내 고평가된 자산의 가치가 재조정되며 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은 자산 가치의 추가 하락을 우려하는 소비자들의 수요 심리 위축으로 인한 재고 증가 및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낳는다. 미국이 중국에 이어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미국의 경제 둔화와 소비 위축은 우리 경제에도 작지 않은 여파를 몰고 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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