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뽑] ⑱프로젝트 참여자 모두가 책임을 지는 서비스 vs 대표만 책임을 지는 서비스

pabii research

예전에 앱 서비스를 하나 출시했을 때 파비클래스 게시판에 누가 서비스에 대한 불평을 하나 늘어놨던데, 그게 안드로이드 개발자가 잘못한 내용이라, 말은 해 놨는데 제대로 진행이 안 된다는 불만 섞인 답변을 해 준 적이 있다.

며칠 지나서 그 안드로이드 개발자가 그 코멘트를 봤는지 말을 꺼내던데, 상식적으로 내 생각엔 자기가 일을 잘못해서 대표가 어디가서 욕을 먹었으니 미안한 감정을 표현해야 될 것 같았는데, 자기가 알고 있는 조직의 대표와는 매우 다른 태도라며, 대표가 모든 욕을 다 먹고 감수해야지, 그런 식으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태도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라며 인간적으로 실망했단다.

그 친구의 잘못 탓에 회사가 수억 원의 피해를 보면서 경영 상에 굉장히 큰 문제를 겪게 됐던 상황이 불과 몇 달 전에 있었는데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갔었는데, 그런 적반하장을 겪고나니 어이가 없더라. 총칼을 휘두르는게 불법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한 번은 휘둘렀을 것 같은 직원인데, 거기서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니 참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내가 참아야지 싶어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더니 더 기고만장해지는 꼴을 봤는데, 나중에는 자기가 뭐 잘못했냐고 주변 직원들한테 이야기하고 있는걸 흘려 들으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샘솟았던 기억이 있다.

개발자-안-뽑음_202312
개발자-안-뽑음_202312

PM이 독박을 쓰는 문화 vs. 프로젝트 참여자 모두가 재취직이 어려운 문화

사회 초년병 시절, 주변 친구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i-Banking 들어갔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무능력으로 회사가 하는 일을 돕질 못한다는 생각에 한껏 쫄아서 회사를 다녔다. 그 중 모 은행의 금융지주사 전환 프로젝트 관련해서 RFP(Request for Proposal)가 날아왔는데, 24시간 이내에 서류를 제출해야 된다는걸 듣고 좀 날벼락이 떨어졌다 싶더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프로젝트를 내가 아니라 옆에 앉아 있던 다른 Analyst, 내가 ‘수드라’ 취급하고 인생에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하는 그 Analyst에게 배정하시고, 본인도 준비를 했다며 의지를 보이던데, 누가 배정이건 상관없이 24시간 이내에 이걸 던져줘야 되는 상황이라 한국 팀 모두와 홍콩에서 한국어 쓸 수 있는 팀원들 전원이 그 프로젝트에 에너지를 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문제가 터지면서 약속했던 익일 오전 10시에 서류 제출을 못했고, 문서 안에는 오타가 널려있고, 내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대표님이 옆에 애는 여자애라고 욕 안 하고 나 한테만 욕을 퍼부으시니까 억울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정말 너무 미안하더라.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내 담당 아니라고 적당히(?) 하지만 않았다면, 사실 1주일 전부터 낌새가 있었으니 내가 미리 준비만 했었더라면, 그런 참사는 방지할 수 있었을텐데.

늦게 오후 4시쯤에 마감 시간을 어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출한다고 말씀 드리고 찾아갔는데, 그 국내 은행 본사의 후줄근한 사무실보다 나 자신이 더 후줄근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오면서 고생했으니까 뭐라도 사먹고 들어가자고 하던데, 그렇게 먹성이 좋은 인간이 미안하니까 뭘 먹지도 못하겠더라.

그 무렵 홍콩 팀에 와 있던 미국 본토 출신 형님이 미국에서 이런 사건 터졌으면 그 담당인 여자애는 그 날로 바로 짤렸고, 팀 전체 보너스 날라가고, 소문나서 팀 전체가 아무도 재취직 안 되거나 Tier를 엄청 낮춘 직장으로 가야된다는 이야기를 전해줬었다. 대표님 한 명만 책임을 지는게 아니라, 참사를 일으킨 팀 전체가 모두 어떤 방식으로건 책임을 지는 구조인 것이다.

부하의 공은 상사에게, 부하의 실수는 부하에게

일본의 초히트 드라마 중 하나인 ‘한자와 나오키’에 나오는 대사 중에, ‘부하의 공은 상사에게, 부하의 실수는 부하에게’라는 표현이 있다. 일본 기업 문화와 한국 기업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에 거의 그대로 갖고와도 될 것 같은데, 한국도 많은 대기업들이 팀장, 부장들이 그렇게 공을 독점해가고 부하직원에게는 회식비 몇 십만원만 주는 경우를 은근히 자주 듣는다. 반면 부하가 실수하면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그렇게 쫓겨난다.

저 위의 RFP 사건이 미국식으로 진행됐다면 그 미국 본토 출신 형님의 말씀대로 팀이 풍비박산이 났을 것이고, 일본식으로 진행됐다면 최소한 그 Analyst가 해고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그 금융기관에서 다시 프로젝트를 받는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 최소한 그 기관 이름이 회사 내에 한동안은 언급되질 않았었다.

글 상단의 안드로이드 개발자 사건을 겪으면서, 그 시절 옆 자리에 앉아있던 Analyst가 계속 생각났다. 둘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이건 무리한 요구를 한 대표의 책임’이지, ‘일을 열심히 했던 자기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때 대표님과 상무님도 그 금융기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했고, 나는 그 안드로이드 개발자의 문제를 어디에 갖고 가봐야 ‘네가 무능해서 직원 관리를 못한거 아니냐’는 구박이나 들어야 했다. 이렇게 글을 쓰는게 누워서 침뱉기라는 평가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 둘은 어떤 처벌을 받았나? 미국식으로 사건이 진행되어서 업계에서 완전히 퇴출됐나?

효율적인 인사관리는 회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기업 문화가 하는 것

일본식 기업문화는 직원의 단물만 쪽 빨아먹는, 아주 잘못된 문화다. 한국식이라며 주워들은, 대표가 독박을 쓰는 문화도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저 한국인 직원 2명의 사고 방식이 저렇게 돌아가는 이유가 저 분들이 이기적이어서 그렇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떨치지 못했는데, 무조건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한다는 사고 방식, 자기들끼리 대화해서 공유한다는 사고가 없는 한국식 업무 흐름, 보고서 올리고나면 모든 것은 결정권자의 책임으로 넘어간다는 한국식 보고서 문화를 보면서 내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분들은 그냥 한국 구조 안에서 자기들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한 게 맞는 것이다. 한국 구조는 위에서 일을 시키는 사람의 명령이 맞건 틀리건 복종해야하고,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부하 직원이 아니라 상사가 독점적으로 지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그 상관의 명령대로 일사분란하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제대로만 명령이 떨어진다면 업무 속도는 매우 빠르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좋을 수밖에 없다.

반면, 명령이 이상하게 떨어지면 부하 직원들은 자기는 열심히 했다고 변명하고, 업무는 이상하게 돌아가고, 결국 책임도 상관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짊어지게 된다. 은행 지점 하나가 대출 관리를 부실하게 해서 엉망이 됐으면,

  • 일본식: 융자 과장이 해고 당한다
  • 한국식: 지점장이 해고 당한다
  • 미국식: 아예 지점이 없어진다

(좀 과장법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구조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이 후 대응책도

  • 일본식: 다른 지점 융자 과장이 자리를 대체한다
  • 한국식: 부지점장이 지점장으로 승진한다
  • 미국식: 인근 지점이 그 사업을 인수인계한다

는 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기서 내 질문은, 한국식일 때 부지점장 그 사람도 같은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아니냐는 것이다. 부지점장도 원래 같이 해고 당했어야 되는거 아닌가? 최소한 지점장, 부지점장, 융자과장, 그 외 관계자 1~2명 정도는 같이 짐을 싸야 되는거 아닌가?

이렇게 사건이 진행되면 부하 직원들이 그저 겉으로만 맹목적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구조로 조직이 돌아가고, 지점장이 해고 당해도 부지점장이 승진하는 구조라면 지점 안에서 줄타기를 하는 방식으로 회사 생활을 하게 된다.

근데 미국식으로 지점 전체가 사라지고, 인근 지점이 그 사업을 인수인계하고, 자기가 그 지점 출신이라는게 영원히 기록에 남는다면? 그럼 그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제보하고, 최소한 다른 지점으로 발령 내달라고 인사과에 요청하지 않을까? 그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거리는 갖고 있으려고 하지 않을까?

15년 전, 뱅킹 시절, 경영학과 학부 2-3학년 수준의 재무관리 M-M 이론도 모르는 이사님의 어이없는 요구를 잔뜩 불만 섞인 표정으로 따르다가, 글로벌 팀에 공유된 그 PT 자료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던 날, 이게 한국의 ‘Convention’이라고 나는 여러번 불만을 표현했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한 적이 있는데, 최소한 그런 저항이라도 했다고 하니 날 불쌍하게 생각해줬지, 더 이상 날 놀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 요구는 모든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갖고, 시야를 넓게 가지고, 회사 전체 업무 안에서 자기 업무를 바라봐달라는 요청이다. 이런 책임감이 상식인 사회에서 6개월 부트캠프 출신 비전공자 개발자들이 만든 시스템과, PM이 모든 책임을 독박으로 지는 나라에서 SKP 출신 한국 최고 학벌의 개발자들이 밤을 새어가며 만든 시스템의 결과물이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내 요청이 무리한 부탁인지, 합리적인 요청인지 독자들 스스로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개(발자)안뽑”이 아니라 ‘아(무도)안뽑’으로 마음이 굳게 닫혀버린 이유가, 단순히 개발자라는 직군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 바로 위의 기업 문화에 대한 문제 인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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