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물 ETF’ 국내 투자 불허 입장 고수한 금융위, 업계 “시대착오적 판단”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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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물 ETF 국내 거래 및 운용사 발행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
기존 해외 상장된 비트코인 선물 ETF의 거래는 가능
“가파른 가상자산 성장세에 성장 동력 빼앗기게 생겼다”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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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와 국내 자산운용사의 발행을 모두 금지했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의 거래가 시작됐지만, 당국은 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거래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새롭게 도입된 가상자산 상품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국내 소비자들의 투자 기회 제한과 관련 상품 시장의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처음엔 위법이라더니” 입장 바꾼 금융당국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아크인베스트와 블랙록, 피델리티 등 11곳의 운용사가 제출한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 신청을 승인한 가운데, 11일 오후 우리 금융당국은 현물 ETF 국내 거래의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가상자산이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법률 적합성을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증권 등 해외 시장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신규 매수 서비스를 진행하려던 일부 증권사들은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러나 당국은 주말 사이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금융위는 14일 오후 “기존 해외에 상장된 비트코인 선물 ETF의 거래는 가능하지만, 현물 ETF는 국내 운용사의 발행과 해외 상품의 중개 모두 위법 소지가 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당국의 입장이 확대 해석되는 것을 우려해 추가 보도 참고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당국은 “비트코인 현물 ETF의 발행이나 해외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기존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단 점과 앞으로 면밀히 검토하겠단 점을 일관되게 밝혀 왔다”고 전했다.

이같은 당국의 입장 번복과 완고한 규제를 두고 업계에서는 비판과 목소리가 나온다. 당국이 며칠 새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볼 때 미국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 신청을 승인한 뒤에야 서둘러 국내 투자 방침을 정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내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짧게는 미국 SEC가 아크인베스트먼트 등 해외 운용사들로부터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 신청서를 받은 지 8개월, 길게는 SEC와 그레이스케일의 소송전이 시작된 2021년부터 2년여 간의 시간이 있었다”며 “그러나 당국은 해당 제도에 대한 별도의 검토나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오히려 입장을 바꿔가며 혼란만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새롭게 가상자산 상품이 도입된 가운데 국내 소비자들의 투자 기회가 막히고, 나아가 가상자산 시장의 주도권마저 내주게 됐다는 우려 섞인 평가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통해 정부가 가상자산을 여전히 투기성 자산으로 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특히 세계적으로 개인은 물론, 기관투자자들의 가상자산 상품 투자 수요가 늘어난 추세인 가운데 이번 현물 ETF 거래 금지로 인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자금들이 모두 해외로 빠져나가게 됐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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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업권 서민 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식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 모습/사진=금융위원회

해묵은 규제에 새로운 시장 주도권 뺏길 수도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 첫날 거래액을 고려할 때 국내 금융투자 업계의 우려는 단순한 기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11일(현지 시간) 총 11개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의 하루 거래액은 총 46억 달러(약 6조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그레이스케일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는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트러스트(티커 GBTC)’의 거래량은 5,489만7,000여 건으로, 이날 종가를 적용할 경우 전체 ETF 거래액의 절반에 이른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금 현물 ETF 거래액보다도 많다.

향후 더 많은 신규 투자금이 유입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영국의 금융기관 스탠다드차타드(SC)는 지난 8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에 올해만 최대 1,000억 달러(약 132조원)가 유입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이처럼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되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국내 운용사들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진다. 이미 일부 국내 운용사들은 비트코인 ETF 발행과 중개가 허용되는 국가로 진출한 상태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지난해 8월 미국 자회사인 ‘글로벌X’를 통해 미 SEC에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삼성자산운용은 이미 지난해 1월 홍콩 주식시장에 ‘삼성 비트코인선물액티브’를 상장했다. 250만 달러(약 33억원)로 상장했던 이 상품은 현재 1,040만 달러(약 137억원) 규모로 순자산이 4배 이상 증가했다.

정치권에서도 금융당국의 판단이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위 디지털자산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의 자문위원이었던 주현철 변호사는 “한국은 비트코인 거래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가상자산 시장을 주도해 왔는데, 당국의 해묵은 규제로 금융이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놓치게 됐다”며 “세계에서 투자자 보호나 금융 범죄 예방에 가장 엄격한 미국이 승인한 상품을 한국이 가로막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며, 이는 금융의 선진화, 세계화와 가상자산 규제 완화 등을 표방한 현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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