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은, 우리나라 교육은 실패인가?

pabii research

필자가 이미 여러 글에서 수십 번은 강조한 내용이지만,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그저 쉽게, 쉽게만 따지다가 완전히 무너졌다. 사실 공교육 실패는 사교육이 존재하는 한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계에 발을 담그면서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결과 위주” 시스템이다. 이는 필자가 계속 언급했던 “이론 모델링 능력”에 대한 철저한 외면, 혹은 “암기식 속도전”에 대한 맹목적인 투자 정도로 요약된다. “철학이 없는 교육”, “보잘것없는 ‘성과’에만 집착하는 교육”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봤다. 의사결정 구조와 연결해서 다시 표현하자면, ‘탁상행정 공무원들의 성과 보고서 중심 문화가 낳은 투자 실패’가 된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는 공무원의 무지를 악용해 세금을 지원받으려는 ‘업자’들이 가득하기에 이들을 걸러낼 능력이 없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투자는 무조건 실패하게 된다.

학교에서의 경험

MBA 과정 초반의 Math & Stat이란 과목에서 상당히 놀라운 성과를 보인 학생들의 스터디 그룹이 하나 있었다. 통계학과 출신이 하나도 없길래 기대를 좀 낮추고 있었는데, 이 친구들의 성적은 그보다 훨씬 훌륭했다. 이유가 뭐였을까?

사실 수업 내용은 어렵지만, 학생들이, 아니 직장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너무 좌절하지 않을까 싶어서 일부러 어려운 문제 6~8개를 풀어주고 그중 2문제 정도를 조금만 바꿔서 출제하는 방식으로 시험은 좀 쉽게 냈었다. 어차피 문제를 다 안다고 하더라도 70점(A-학점) 이상 받기 어려운 논술형 시험이기도 했고, 암기보다는 공부해서 얻어낸 개인의 내공에 따라 점수가 정해지는 것을 필자 역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세 번째 학기부터 단순히 가르쳐 준 스타일, 특히 답안을 사실상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문제 풀이에서 벗어나 굵직한 가이드만을 던져준 상태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문제를 주니, 즉 논문을 쓰는 ‘사고력’을 스스로 발휘해야 하는 부분을 추가하고 나니, 그 스터디 그룹 학생들은

답안지를 안 준다

라는, “입에 떠먹여 주지 않는다”라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성적도 당연히 떨어졌다.

여러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필자는 저 학생들이 초반에 상당한 성과를 낸 건 교육에 “암기식” 접근을 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인 것이다.

기초 수업을 벗어나면 답안지 기반 설명은 끝난다. 이미 수업 시간에 모든 가이드를 다 해 줬으니, 가이드의 틀 안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 때인 것이다. 이걸 못하겠으면 안타깝지만 포기해야 한다….

언젠가 했던 이야기인데, (링크)

박사 1학년 들어갈 때는 자기 지도교수가 신처럼 보이지만, 학위 논문을 발표하는 순간에는 그 논문을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지도교수들이 들어와서 온갖 딴지를 걸어도 웃기지 말라는 여유를 부리면서 그들의 논리를 “벤치 프레싱(Benchpressing)”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연구자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인정해주기도 한다.

꼭 고급 논문 뿐만 아니라, 학부 수준의 지식으로라도 자기만의 논리를 세우고 스토리를 써 나가는 능력은,

“입에 떠 먹여주는” 교육을 잘 복사해서 답안지에 써 내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풀어내야 길러진다.

 

자기 학문으로 제대로 훈련을 높은 레벨로 받은 학생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그 문제들을 보면서

작은 문제 10개로 가이드 해 주신거 없으면 혼자서 하는건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생각의 흐름인데, 아마 가이드 없이 혼자 하는게 논문 쓰는 작업일 것 같아요

꼭 고급 논문만이 아니라, 학부 수준의 지식으로라도 자기만의 논리를 세우고 이야기를 써나가는 능력은 “입에 떠먹여 주는” 교육을 잘 복사해서 답안지에 써내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야 길러진다.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들은 어떤 시점이 되면 이런 문제를 보면서

작은 문제 10개로 가이드해 주신 게 없으면 혼자서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생각의 흐름인데, 아마 가이드 없이 혼자 하는 게 논문 쓰는 작업일 것 같아요

라고, 교육의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하더라.

필자가 운영하는 학교의 최종 시험, 학기 논문, 그룹 발표 등 A에서 F까지의 성적을 부여하는 평가 자료들은 모두 이러한 목적에서 만들어진다.

꼰대 발언인가 싶어서 조금 찜찜하지만, 필자가 저런 논술형 시험을 치는 교육을 받았을 땐, 어려운 문제는 물론이고 기본 수업에서 푸는 문제들의 답안지도 주어지지 않았다. 시험에 나오는 문제라든지 기출문제를 상세하게 풀어주는 수업도 없었다. 가끔 어떤 천재 동기가 공부하다 만든 답안지를 하나 공유받으면, 친구들과 함께

미쳤다… 이렇게 써야 70점을 겨우 넘긴다고???

같은 이야기를 우울한 얼굴로 했던 기억이 난다.

경험상 답안지가 있다면 공부하기는 참 쉬워지지만, 그만큼 생각의 흐름도 막히게 된다. 심하게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논문을 쓰고, “이론 모델링”을 하는 능력의 개발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는 교육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암기식, 갖다 붙이기, 빨리 갖다 붙이면 칭찬받는 업무밖에 하지 못하는 ‘인재’로 전락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닌가?

한국 공교육은 망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그룹의 학생들은 경영학과나 공대를 나왔다. 이 두 전공의 대학 교육은, 필자가 정말 싫어하는 교육 시스템의 전형이다. 암기식, 그리고 속도전. 공대에서는 1학년 과목인 공학수학 때부터 계산기를 들고 암기한 공식에 맞춰 굉장히 빠르게 문제를 풀어야 하고, 경영학과에서는 4년 내내 답안지에 암기한 내용을 붙여넣기만 해도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공학에도 이론 모델링을 하는 세부 전공이 있고, 경영학에도 재무나 회계처럼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분야가 있지만, 경영학과 출신, 심지어 CPA 합격자도 감가상각이 10 빠지면 재무제표 항목들이 어떻게 바뀌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공대를 나와 변리사에 합격한 사람도 선형대수의 고유벡터(Eigenvector)와 고유값(Eigenvalue)을 몰라 필자 회사의 특허 신청 서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봤다. 둘 다 그 자격증 시험의 과목에 포함되는 내용인데도, 아니 학부 때 배우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물론 필자가 만나지 못한 뛰어난 전문가도 많이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회에서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들, 특히 경영학과나 공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자격증을 딴 전문가조차 경제학을 전공하고 수학을 맛보기만 한 필자 같은 사람이 하는 기초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들이 그 자격증을 받았다는 것, 이것부터가 문제 아닌가?

사실 그 자격증을 따는 교육 자체가 지나치게 시험 위주로 되어 있어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교육이 안 된 것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나라 ‘공교육’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자체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망했다

정확하게는, “우리나라 교육은 (이대로 가면) 영원히 일류가 되지 못한다.

교육은 엉망이면서 선진국 시스템은 갖춰야 하니, 선진국처럼 CPA니 변리사니 하는 자격증은 만들어 뒀다. 그런데 그 시험을 통과한 “전문가”조차 지식만 갖췄지, 그 지식을 실제로 활용하는 훈련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결하냐고? 위에서 언급한 사례가 정답이다. 암기식과 속도전은 구글링 10분, 기껏해야 한두 시간 안에 따라잡힌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

뭐, 심지어는 거의 같은 문제를 풀어줘도 여전히 답답한 답안지를 내는, 암기식 교육조차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인재풀을 갖춘 나라가 이런 교육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 학교에서 쓰는 “암기식” 교육의 이면에는 엄청난 사고력 훈련이 숨어있기에 처음에는 한국식 “단순 암기식” 훈련으로 명문대에 갔던 학생들도 “사고력 기반 암기식”에 적응하기 쉽지 않아 처음에만 이런 답안지를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고력 훈련이 빠르게 완료되는 순서대로 답안지의 질은 현격히 올라가고, 답안지를 안 준다고 불평하는 학생들도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경영학과 출신인데도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학생을 보며 정말 자랑스러웠다.

필자 역시 학창 시절에 문제를 빨리 풀어버리고, 시험장에서 빨리 나가는데도 점수는 잘 받는, 소위 말하는 “재수 없는 놈”이라는 평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암기식과 속도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공교육으로 해결될까?

미국에도 수많은 Education President, Education Governor가 있었지만 성공하거나 사후에라도 인정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공감이 어렵다고? 지금 미국 공교육이 어떤지를 봐라. 오히려 교육 개혁이란 말을 잘못 꺼내기라도 했다간 교사 노조 같은 곳의 맹폭격을 맞는 나라가 됐다.

그런 상황인데 대학이 어떻게 뛰어난 학생을 뽑을 수 있냐고? 예를 들자면, 프린스턴 대학교는 학부 지원서에 출신 초, 중, 고등학교 이름을 다 쓰도록 한다. 이걸 본 한국인 유학생들은 명문 사립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만 뽑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빈정대기도 하더라. 아무튼 아예 부잣집 자식이고, 어렸을 때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스타일로 교육받은 학생 위주로 뽑겠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학교나, 어떤 기업이나 똑똑하고 잘 준비됐고 사고력 훈련을 쭉쭉 흡수할 수 있는 학생을 찾는다. 그런 똑똑한, 잘 훈련된 인재 사이에서도 살아남은 인재, 백미(白眉) 같은 인재를 뽑고 싶지, 삼별초가 초등학교 이름인 줄 아는 학생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을 뽑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전자는 이미 고급 교육에서 검증받은 학생이고, 후자는 고급 교육으로 검증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너무 큰 학생이기 때문이다. 프린스턴 정도 되는 학교라면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도 전 세계의 최고급 인재들이 얼마든지 몰려드니까.

지난 몇십 년 동안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적어도 양적으로는 꽤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성공의 기억 때문에 우리가 조금 잘못하고 있더라도 고치면 잘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는 듯한데, 사실 그 시대의 성공은 두 번 다시 없을 ‘기적’ 아닌가?

질문을 하나 하겠다. 성공적인 공교육을 운영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몇 군데나 있나? 자연 자원 없이 인재로 국부가 증가하는 나라가 과연 몇 군데나 있나?

당시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유교 사회의 전통 덕에 교사라는 직군에 엄청난 사회적 프리미엄이 부여됐고, 교육을 통한 사회적 성공의 사다리 위에는 꽤 그럴듯한 결과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진국,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지식 자체가 많지 않아 암기식, 속도전 교육으로도 충분히 큰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반짝 프리미엄” 시대는 갔다. 실력 없는 선생이 아무리 그럴싸한 증명서를 내준다 해도 성과물로 말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무의미하다. 집안이 잘 살고, 본인의 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야 좋은 교육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보는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굳이 유명 정치인이나 엘리트의 자식이 로스쿨이나 의전원 같은 곳을 쉽게 들어가는 사례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당장 효율성이 최우선인 공무원 시험 리그에서는 1타 강사들의 인강 묶음만이 팔린다.

학교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로스쿨이나 의전원 같은 자격증 장사를 제외하면 다른 교육은 1타 강사들 묶음으로 처리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미국처럼 공무원과 교사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공교육을 사실상 포기하는 길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면 스위스처럼 사교육에 문호를 풀어버려서 공교육이 개혁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도록 경쟁을 붙이는 길로 가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공교육을 구제하기 위해 아주 고통스러울 게 확실한, 미국의 그 어떤 Education President도 하지 못했던 대개혁의 길을 개척해야 할까?

대개혁, 할 수는 있을까?

경제성장론에서는 70~80년대 우리나라에 있었던 정부 주도 경제성장의 ‘기적’을 “1 Korea out of 200 failures”라고 부른다. 엄청난 인재와 자원과 효율성이 결합되는 기적은 이윤추구가 목적인 사기업에서도 쉽지 않은데, 그걸 국가 단위에서 해냈으니까.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그 성장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시험까지 쳐서 공무원을 뽑는 시대이니 인력 수준은 70~80년대보다 훨씬 나아졌겠지만, 어떤 전직 도지사는 집무실에서 아랫사람들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그렇게 욕을 했다고 한다.

정부 주도로 무언가 혁신적인 개선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정부 주도여야만 가능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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