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중 유일하게 ‘역성장’하는 독일 정부, 법인세 감면으로 경기 부양 노린다지만 실질적 효과는 ‘미지수’

獨 연정, 재정 적자 감수하고 법인세 감면 주 골자의 경기 부양책 발표 격동하는 글로벌 정세가 獨 경기 침체 원인으로 꼽혀 법인세 감면의 실질적 경기 부양 효과 두고 학계에선 의견 분분

pabii research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사진=Pixabay

독일 정부가 총 320억 유로(약 45조9,000억원) 규모의 법인세 감면 패키지 법안을 내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경기 침체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독일이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경제 ‘역성장’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 당국의 이같은 정책이 실제 경기 부양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대규모 법인세 감면을 경기 부양책으로 내세운 독일

30일 도이치벨레(DW)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 연립정부가 2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연간 70억 유로(약 10조1,235억원)의 법인세 감면을 골자로 한 감세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는 ‘성장기회법(Growth Opportunities Law)’라는 이름이 붙었다. 성장기회법은 독일 경제의 근간에 해당하는 ‘미텔슈탄트’를 대상으로 시행될 방침이다. 미텔슈탄트는 직원 수가 500명에 못 미치고 매출이 5,000만 유로(약 718억원) 이하인 중소기업을 지칭하는데, 독일 기업의 99% 이상을 차지한다.

아울러 이날 독일 정부는 앞서 TSMC와 인텔 등 반도체기업 공장 유치에 일조한 150억 유로(약 21조6,933억원)의 보조금 지원 방안도 이번 대책에 포함했다. 이는 연구개발(R&D) 촉진을 위해 애쓰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게 주 골자다. 또한 신규 주택 투자 활성화를 통한 부동산 시장 촉진을 위해 ‘감가상각충당금’이라는 새로운 계정을 도입하는 등 제도적 지원책도 마련했다. 이와 관련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감세 및 경기 부양 정책을 통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성장을 촉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인 성장기회법을 통해 독일 정부는 에너지 효율 향상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힘쓰는 기업 대상으로 4년간 50종류에 달하는 법인세 감면 혜택을 제공한다. 특히 기후 변화 관련 분야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이익 규모와 관계없이 투자금의 15%를 환급해 줄 예정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손실액 인정 범위를 대폭 넓혀 실질 세 부담을 경감해 줄 계획이다. 성장기회법은 4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되며 해당 기간 동안 총 320억 유로(약 46조2,764억원)의 법인세를 감면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감산으로 독일 연방정부와 주 정부, 지방자치단체에 각각 26억 유로(약 37억5,324억원), 25억 유로(약 36억827억원), 19억 유로(약 27억4,227억원)의 세수가 부족해질 전망이다.

러-우 전쟁으로 급등한 에너지 가격, 흔들리는 중국 경제가 독일 경기 침체의 주원인

독일 당국이 이같은 재정적자를 감수한 것은 전방위 경기 침체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독일 경제는 지난해 4분기는 전 분기 대비 -0.4%, 올해 1분기엔 -0.1%로 두 분기 연속 국내총생산(GDP)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2분기에도 전 분기 대비 0%로 경제적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심지어 IMF에 따르면 독일의 올해 연간 GDP 성장률 전망치는 -0.3%로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독일 경제의 암울한 전망이 점쳐지는 가운데, 독일 당국이 기업의 경쟁력을 되살려 경제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어 보겠다는 의지로 이번 대규모 법인세 감면 방안을 내세웠다는 설명이다.

독일의 경기 침체 원인으로는 높은 에너지 요금이 꼽힌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촉발됐고, 기업 수주 및 가계 지출 또한 크게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3월부터 독일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에너지 요금 상한제의 전기요금은 1kWh당 40센트(약 578.18원)로, 이는 우리나라의 주택용 저압 기준 1kWh당 120원보다 4.818배 높은 수준이다.

독일 에너지 요금이 크게 오른 이유는 독일 정부가 탄소중립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에너지전환 가속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2030년까지는 탈석탄 조기 완료, 2035년까지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100%로 하는 것을 세부 목표로 삼았다. 또한 에너지 공급의 3대 원칙을 안전성, 친환경성, 경제성으로 정하면서 독일은 지난 4월 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을 믿고 원자력발전 가동도 모두 중단한 상태다. 다시 말해 독일 정부는 당초 기저 전력을 저렴한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려는 생각이 깔려 있었으나, 러-우 전쟁으로 국제 LNG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 요금이 크게 오른 것은 물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무역수지 흑자 폭도 크게 깎이는 타격을 입었다는 설명이다.

중국이 최근 부동산발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로 허우적대고 있는 것도 독일 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회사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이 쏘아 올린 디폴트 리스크가 금융권 및 실물경제 침체로 번지면서 중국의 장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중국과 7년째 최대 교역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의 무역 실적도 크게 줄게 돼 자국 경기 침체가 가속화됐다는 지적이다.

사진=prexels

법인세 인하의 경기 부양 효과 두고 ‘설왕설래’

다만 경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독일 정부의 법인세 인하 노력이 실제 경기 부양 효과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학계 해석이 분분하다. 즉 ‘법인세 인하→투자 증대→경제 성장’을 내세우는 독일 정부의 정책에 대한 근거가 명확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감세 추진을 통해 경기 부양을 꾀할 수 있다는 주장을 완벽하게 신뢰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실제 영국은 지난해 9월 연간 450억 파운드(약 75조8,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가 파운드화 급락과 금융시장의 일대 혼란만 초래한 뒤 열흘 만에 감세안을 전격 철회했다. 시중에 과도한 유동성을 뿌리는 감세안이 물가를 자극할 것이란 우려에 세수 부족 등 재정난 관측까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이 파운드화를 대거 투매했기 때문이다.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평균적으로 ‘0’에 수렴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유럽 전역에서 가장 오래된 경제학술지인 유럽경제리뷰에 게재된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보면 법인세 변화가 통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경제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법인세 인하가 성장에 미치는 평균 효과는 0이며 개별 사례에서 법인세 인하가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순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효과가 없다”고도 강조했다. 이러한 결론은 법인세 인하가 고용·투자 등 여러 경로를 통해서 성장에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모두 낸다는 최근 연구 경향과도 일맥상통한다.

한편 법인세 인하 긍정론 측에선 ‘법인세가 싼 나라’인 아일랜드 사례를 내세운다. 아일랜드 정부는 매년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법인세 세율을 유럽 최저 수준으로 낮춰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고 있고, 이를 통해 세금을 다시 거둬들이는 것은 물론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2021년부터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을 추진하면서 각국의 법인세율을 15% 이상으로 맞추고 있는데, 아일랜드는 여전히 12.5%를 유지하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아일랜드로 유럽본부를 옮기고 있다. 그 덕분에 아일랜드 정부는 글로벌 기업들의 법인세로부터 226억 유로(약 32조6,708억원)를 벌어들였고, 이를 다시 인프라 투자에 쓰면서 경제 부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