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고급 인력 양성한다는 ‘민관 공동 연구개발 사업’, 실상은?

“민관 50:50 비율 투자해 공동 연구개발 사업 추진, 고급 인력 양성하겠다” 프로젝트 위주 인재 양성, 오히려 기초 역량 증진·탐구 기회 앗아갈 수도 학문보다 ‘프로젝트’에 중점 두는 국내 이공계 대학원 폐단 개선해야

pabii research
사진=pexels

정부가 실전형 석박사 고급 인력 배출을 위해 반도체 업계와 협력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3일 서울 논현동 보코서울강남호텔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민간 공동투자 반도체 고급인력양성사업 투자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총사업비 2,228억원을 정부와 함께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지난해 7월 21일 발표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의 후속 조치로 반도체 석박사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민관 공동 연구개발(R&D) 사업을 산업계 및 전문 기관과 함께 준비해왔다. 민관 공동 연구개발 사업은 산업계가 발굴한 R&D 과제를 석박사 과정 인력에게 수행하도록 하는 사업으로, 기업이 요구하는 전문 역량을 보유한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 추진되는 R&D 과제는 총 47건이다. 산업부는 해당 산업을 통해 앞으로 10년 동안 2,365명 이상의 석박사 인력을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용필 산업부 첨단산업정책관은 “민관공동투자 유치 체결식은 산업기술 패권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의 기술 경쟁력 확보 및 우수 인력 양성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민간과 정부가 원팀으로 해결해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지속적으로 민간과 협력해 선순환적인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전경/사진=SK하이닉스

R&D 과제 수행으로 고급 인력 양성

산업부는 민관 공동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기업은 대학의 인력을 활용하여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으며 대학은 기업의 연구개발 과제 수행을 통해 기업과의 기술 간극을 해소해 실전 경험을 보유한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반도체 업계와 산업부는 민관 공동 연구개발 사업을 위해 반도체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생태계 조성을 위한 투자 참여 및 협력 지원 등의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정부와 업계는 2023~2032년까지 총사업비 2,228억원을 50 대 50 비율로 투자, 산업계가 필요한 반도체 전체 분야의 핵심 기술 확보 및 실전형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해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업계는 반도체 첨단 기술 확보 및 우수 인력 양성을 위한 과제 발굴부터 기업 엔지니어의 기술멘토링을 통한 대학의 산학 연구개발 지원까지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민관 공동 연구개발 과제 기획 시 반도체 선단 기술 개발 및 애로 해소를 위한 과제 발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를 기반으로 정부는 올해 47건의 연구개발 과제를 추진할 예정이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올해 석·박사급 인재 양성 사업에 2022년 대비 약 19.4% 증가한 1,274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3,300여 명을 포함해 오는 2027년까지 국가 디지털 혁신을 선도할 핵심 인재 약 2만2,000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중점 추진 예정인 신규 사업·과제로는 ▲대학 ICT 연구센터(신규 12개, 60억원) ▲지역 지능화 혁신 인재 양성(신규 2개, 20억원) ▲학-석사 연계 ICT 핵심 인재 양성(신규 6개, 7억5,000만원) 등이 있다.

프로젝트 하다 보면 학위가 나온다?

민관 공동 연구개발 사업은 반도체 석박사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R&D 과제 수행에 중점을 둔다. 다른 말로 하면 기업이 발굴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인력에게 석박사 학위를 주는 사업인 셈이다. 과연 프로젝트 수행이 ‘고급’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될까.

프로젝트 중심으로 움직이는 인재는 오히려 해당 사업이 목표로 내세운 ‘실전형’ 인재에서 멀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프로젝트 진행 시 석박사 과정 인력은 반복 작업과 형식적인 보고 위주로 움직이게 된다. 프로젝트 수행에 시간을 쏟아야 하는 만큼, 혁신적인 연구와 실전 역량을 쌓을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다.

이미 전례도 있다. 바로 AI 분야다. 국내 공대에서 운영하는 AI 대학원은 보통 정부 지원금이 나오는 프로젝트를 따내고 이에 맞춰 대학원생들이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AI 기술자의 가장 기초적인 역량인 기초적인 수학, 통계학 훈련보다도 프로젝트 진행이 중시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학원생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타인의 연구 결과나 논문 등을 참조해 부랴부랴 박사 학위를 따내게 된다. 졸업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약간 바꿔 논문을 써내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인재는 연구 경험이 부족하거나 기초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학원 과정 동안 깊이 있게 탐구하고 기본기를 익힐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실전 응용 능력이 부족한 ‘흉내쟁이’ 인재들이 쏟아져나올 때 시장은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치게 된다. 정부는 이처럼 왜곡된 인재 양성 구조를 형성하는 사업을 반도체 분야에서 정부 주도로 반복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보다 ‘장사’에 힘 쏟는 교육기관

대한민국 이공계 대학원이 ‘프로젝트’ 위주로 돌아간다는 것은 대학이 점점 학문보다 ‘장사’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교수가 프로젝트를 따오면 대학원생은 이를 통해 석박사 학위를 따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들 인력 대부분이 ‘대기업 과장’으로 입사한다는 인식이 있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이 학문 탐구를 위한 시설이 아닌 ‘사기업 경력’의 대체물로 취급되는 것이다.

관련 분야에 대한 충분한 역량과 지식을 쌓은 사람에게 부여되는 것이 학위다. 하지만 국내 이공계 대학원에는 정부 주도하에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결국 공부가 아닌 ‘일’을 하고 학위를 받는 기형적인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기초 수학, 통계학 등 기초적인 역량을 쌓지 못하고 그냥 프로젝트만 하면 학위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반도체 대기업은 이 같은 흐름에 그대로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는커녕 이들의 정책 제안을 그대로 따르며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올바른 인재 양성 구조와 시장 발전을 위한 지원책이 과연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민하고 실전 역량이 충분한 ‘고급’ 인재 양성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