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금 개혁 사례로 보는 ‘우리나라 연금 개혁’이 나아갈 길

영국의 2015년 연금 개혁, 노조-정부 대화로 ‘합의’ 도출한 드문 사례 설계 실패로 인해 2022년까지 추가 비용 소모, 국내 개혁 시 참고할 점 많아 우리나라 연금 개혁 필요성 부각, 대화와 합의 기반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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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exels

영국은 2015년 국가공무원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공공 부문 연금 지출을 절감하고, 민간 연금제도와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기존 제도 대비 가입자 비용 부담이 크고 연금 지급개시 연령이 상향된 신규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연금 개혁을 통해 약 50년간 연금 관련 정부의 순 지출이 40%(약 4,000억 파운드)가량 절감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국민연금부터 공무원연금, 사학 연금 등 각종 정부 운영 연금 개혁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에 다가서고 있는 만큼 연금 재정의 고갈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2023년 하반기 중으로 국민연금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2015년 영국 연금 개혁의 배경

영국의 국가공무원연금제도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다층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우선 생존 수준의 정액 급여(flat rate of subsistence benefit)와 급여의 적절성(adequacy of benefit)의 대원칙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1층 소득 보장 체계로 공적 연금제도가 운영된다. 2층 소득 보장 체계로 모든 사업장이 의무적으로 국가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을 마련하도록 하고 이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업장은 고용저축 신탁 회사(NEST)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개인이 임의로 가입할 수 있는 연금・보험이 3층 소득 보장 체계를 구성한다.

현재 영국에는 직역별로 300개 이상의 공무원연금제도가 존재하지만 국가공무원연금, 지방공무원연금, 교직원연금, 군인연금, 경찰공무원연금, 소방공무원연금, 국민의료서비스연금 등 총 7개 유형의 공무원연금에 공무원의 95% 이상이 가입되어 있다. 이 중 국가공무원연금제도(Principal Civil Service Pension Scheme)는 크게 5종으로 분류된다. 확정급여(DB)형으로는 2002년 9월 이전 임용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classic, 2002년 10월 ~ 2007년 7월 임용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premium, 2007년 8월 이후 임용 공무원에게 적용된 nuvos와 2015년 4월 1일에 도입된 alpha 제도가 있으며 확정기여(DC)형으로는 2002년 10월 이후 임용된 공무원이 선택 가능한 partnership 제도가 있다.

2007년 연금개혁 이후 국가공무원연금 신규 가입자는 nuvos 제도에 가입하게 되었으나, 개혁안 적용 대상이 신규 임용자로 한정되며 정부 재정 절감 효과는 크지 않았다. 기대 수명 증가로 공무원연금 수급자가 늘며 재정 부담은 증가한 가운데, 출산율 하락과 신규 공무원연금 가입자 감소의 영향으로 공공부문 연금의 정부 재정지출 수준이 GDP 대비 2%까지 증가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제도(premium 이전)의 연금 급여액 산정 기준이 고소득자・장기근속자에게 유리한 최종보수라는 점도 비판을 받았다. 저소득자가 겪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생애 평균 급여 기준의 연금 개혁이 요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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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 이끌어낸 연금 개혁안

개혁의 필요성을 인지한 영국 공무원연금 정책위원회는 국가공무원연금의 지속가능성과 공정성 확보에 집중했다. 먼저 연금 급여액 산정 기준을 퇴직 시 최종보수(final salary)에서 생애 평균 급여(career average revalued earnings)로 변경했다. 저소득자의 연금 급여율은 최종보수 기준보다 생애 평균 급여 기준에서 증가하며 고소득자의 급여율은 감소하게 된다. 소득 격차로 인한 불평등을 연금의 재분배 효과로 완화한 것이다.

이에 더해 연금개시연령을 높이고 국가 연금과 같도록 조정했다. 기대 수명이 늘며 연금 수급자가 증가한 상황을 고려, 재정 비용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다만 소방・경찰・군인연금제도는 직업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연금개시연령 상향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위원회는 이에 더해 연금 인상 방식을 도매물가지수(RPI)보다 인상률이 낮은 소비자물가지수(CPI)로 바꿀 것을 권고했다.

2011년 영국 정부는 각 분야 공무원 노동조합과 협의를 시작했다. 이에 개혁 당사자인 영국 공무원 노동조합과 영국 최대 규모 노조인 영국노총(Trades Union Congress)은 정부의 국가공무원연금 기여금 인상 결정에 반발, ‘행동의 날’(Day of action)에 총파업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 재무부는 공무원 노동조합에 높은 연금 적립률, 과도기적 보호 등 절충안을 제시했고 이에 공무원 노동조합이 화답하며 같은 해 12월 20일 개혁안이 최종 합의됐다.

2015년 국가공무원연금개혁은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로 이뤄진 개혁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연금 개혁은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인 만큼 정부 공무원-국민 사이의 합의를 도출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영국은 온건한 방법으로 개혁에 성공했으며 정부의 재정 부담을 다소 완화할 수 있었다. 2012년 9월 영국 재무부가 발간한 국가공무원연금개혁법안의 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개혁 추진을 통해 2061-62 회계연도까지 연금 관련 정부의 순 지출이 40% 절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혁안 비판에 대한 정부 차원의 피드백

2015년 영국 정부는 새로운 연금 급여액 산정 기준을 도입하는 한편 퇴직 연령까지 13.5년 이내 남은 재직 공무원이 구제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과도기적 예외 제도’를 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과도기적 예외 제도는 신입 공무원들에게 불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2018년 12월 영국 항소법원(Court of Appeal)은 과도기적 예외 제도가 불법적인 연령 차별을 초래하였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에 2019년 7월 영국 정부는 국가공무원연금제도의 과도기적 예외 제도로 인한 불법적 차별 요소를 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0년 영국 재무부 중심의 차별 해소를 위한 협의가 시작됐고 2021년 2월 영국 정부가 「2022년 영국 국가공무원연금 및 사법부 정년 연장법」 법안을 영국 의회에 제출했다.

영국 정부는 국가공무원연금 가입자 모두에게 2015년 4월 1일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일종의 ‘구제 기간’(remedy period)을 두고, 각자에게 더 유리한 연금 산정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구제 기간이 종료된 2022년 4월 1일부터는 국가공무원연금 가입자 모두가 나이 및 가입일과 관계없이 2015년에 개혁된 국가공무원연금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사진=국민연금공단

우리나라 연금 개혁이 가야 할 방향은?

최근 우리나라 정부와 국회에서도 공적 연금 개혁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금 개혁의 관건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는 개혁을 이뤄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대화와 협의를 통해 개혁을 이끌어낸 영국의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15년 영국 국가공무원연금 개혁을 설계한 허튼 경은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의 지속적인 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인 만큼 충분한 대화와 조정을 거치지 않으면 ‘일방적인 개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와 공무원 노동조합은 파업이 발생한 첨예한 대치 상황에서도 대화와 협의를 이어갔다. 그 결과 정부와 노동조합 사이 절충안을 마련에 성공했으며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영국의 연금 개혁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이 하나 더 있다. 정교한 개혁안 설계를 통해 예상치 못한 비용 발생을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2015년 개혁에서 발생한 연령 차별 논란을 위해 영국 정부가 사용한 구제 비용은 170억 파운드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2015년 개혁으로 인한 예상 절감 비용 4,000억 파운드의 4% 수준에 해당한다. 설계 단계에서의 오류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소모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연금 등 정부 운영 연금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 연금 개혁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주장은 집단 이기주의로 번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연금 개혁이 일본의 우체국 연금 개혁 사례처럼 단순히 ‘정치적인 아젠다’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당시 공무원연금 개혁은 수많은 비판과 방해에 부딪힌 바 있다. 이처럼 연금 개혁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복잡한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다. 미래 후손들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대화와 합의를 거쳐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한 개혁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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