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양강 구조’ 심화로 분열되는 세계, 외교 역량 확보 없이는 미래도 없다

美-中 갈등 중심으로 변해가는 국제 질서, 차후 경제·안보 부담 커질 것 글로벌 ‘보편 가치’의 힘 약화, 분열과 진영화 사이 속수무책인 ‘국제기구’ 불확실한 미래 전망, 국익 보전 위해 선제적으로 외무 역량 강화해야

pabii research
사진=pexels

국제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30년이 지난 최근, 세계는 강대국 경쟁의 부활과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빠르게 분열되기 시작했다. 기술, 재원, 인재 등의 자유로운 교류가 멈추고 모든 결정에 강대국 경쟁 중심의 국가 안보적 고려가 우선시되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중심의 강대국 경쟁 심화는 차후 세계 각국에 무역 및 투자 위축, 식량과 에너지 안보 문제 등 다양한 위기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이 계속해서 불투명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나라가 외교 역량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불확실한 ‘힘’의 이동, 깊어지는 분쟁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정치의 화두는 서구에서 아시아로,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는 ‘힘’이었다. 이 같은 ‘힘의 역전’ 이론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적 논의의 중심축이었으나, 최근 강대국 경쟁 체제의 부활,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점차 힘을 잃어가는 추세다. 특히 최근에는 차후 미래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양극질서’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중 양국의 GDP 변화 추세와 전망(2015~2035)/출처=국회미래연구원

미중 경쟁 심화는 글로벌 경제와 국제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나머지 국가들에 경제·안보적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의 전문가는 미중 양국이 미래 국제 사회에서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선택의 압박’을 받는 미래가 올 것이라 분석한다. 양국 관계가 2050년까지 지속적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으나 경제적 상호 의존, 중견국들의 관여, 지역 강대국 경쟁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갈등이 일정 수준에서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강대국 경쟁’이 세계 질서의 핵심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영과 이념을 떠나 자유롭게 교류되던 기술과 자원은 전략적인 경쟁 수단으로 변했으며, 기업 경영과 R&D 협력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국제 정치와 안보 환경은 핵심적인 고려 요소로 자리 잡았다. 수출 중심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움직여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강대국 경쟁 심화, 분열되는 세계

글로벌 경제 정치 질서의 균열이 가속화되고, 경제 통합이 중단되며 세계의 ‘단결’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최근에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위기와 함께 UN, WTO, World Bank,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에 힘을 얻는 추세다. 완전히 다른 체제와 가치를 지닌 강대국 경쟁이 심화하며 국제기구 내에서 글로벌 이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 2022년 9월 유엔안보리에서 추진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합병 규탄 결의안은 러시아의 반대와 중국, 인도, 브라질, 가봉 등 4개국의 기권으로 부결되었으며, 2022년 5월 대북 추가제재안도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글로벌 보편 가치와 규범의 힘이 점차 약화하자, 세계 각국은 ‘통합’이 아닌 각자의 이익을 목표로 뭉치기 시작했다. 가치관 갈등, 진영화로 인해 국제기구의 힘이 약해지면서 유사입장국 사이의 소다자주의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은 물론 중견국들도 쿼드(QUAD), 오커스(AUKUS), I2U2(India, Israel, UAE, US), IFA(India-France-Australia) 등 소규모 이익 기반 협의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추세다.

이에 따라 가치 이념 경쟁 역시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EIU의 민주주의 인덱스에 따르면, 세계 167개국 중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는 24개국에 그친다. ‘취약한 민주주의 국가’까지 포함해도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는 43%에 불과하다. ‘다수’의 입장에서 밀려난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회복 및 발전의 문제를 고민하고, 다수와 연대할 수 있는 전략적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혼란스러운 세계, 외교 역량 강화 절실해

강대국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협력을 주도할 국제기구의 리더십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 국제 사회의 미래 전망이 계속해서 불투명해지고 있는 이유다. 이에 세계 각국은 외교적 리스크를 피하고, 국제 질서의 중심축이 된 ‘경쟁’을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는 등 각자의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단순히 모두가 힘을 합치길 기다리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역시 강대국들 사이에서 어떤 외교 전략을 펼칠지 결정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혼란스러운 국제 질서 속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외교 역량’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한국 외교부 예산은 2조6,171억원, 외교 인력은 2,045명으로 확인됐다. 일본 외무성과 비교했을 때 예산(7,120억 엔)과 인력(6,358명) 모두 3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 국가의 외교 역량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예산과 인력이 외교 역량을 판가름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는 없지만, 최근의 외교 환경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가 주변국 대비 외교 역량 강화에 안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국내 외무 인재의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2013년까지 ‘외무고시’를 통해 관련 인재를 선발해 왔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인재에게 유리한 단순 암기형 지식 측정 시험은 역량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고, 결국 정부는 2013년을 마지막으로 1968년부터 이어져 온 외무고시 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일반외교, 지역외교 등 분야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별한 뒤, 1년간 국립외교원 연수 교육을 거쳐 외교관으로 임용하는 제도가 신설됐다. 하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과목은 예전 외무고시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학벌 편중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외교부에 따르면 2017부터 2020년까지 임용된 외교관 168명 중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은 116명(69.1%)에 달하며, 72명(42.9%)이 특목고 출신이었다. 외무고시 시절에도 ‘SKY 출신’은 통상 전체 채용 인원의 70% 이상 비중을 차지해 왔다.

현재 정부의 외무 인재 채용 구조는 국제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역량 있는 인재를 선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불확실한 국제 질서 속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전문성 있는 인재 선별 방식을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외교 역량을 확보해야 할 때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