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사라질 MZ 노조? 다음세대 이끌 혁신 노조? ‘새로고침’ 근로자 날에 오세훈 시장과 소통

근로자의 날에 데모하는 노조 아닌 ‘상식’ 지키자는 노조와 만난 오세훈 서울시장 새로고침 노동자 협의체, 지난 2월 발대 이후 MZ사무직노동자들에 대한 관심도↑ 노동 관련 사안만 목소리 낼 거란 새로고침, 단순 MZ로 치부 말고 시대의 목소리로 경청해달라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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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특별시 시장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이해 오전 10시 30분 스타벅스 경동1960점에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임원진을 만나 서울시 노동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도모하기 위해 제안을 듣고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로고침은 지난달 정부에서 노조에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했을 때 “상식이니 당연하다”며 협력해 양대 노총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은 한편, 주 69시간은 시기상조라며 독자성 위해 정부보조금은 안 받겠다고 밝혀 정부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 직장인은 새로고침으로 인해 노조 가입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근로자의 날에 유일하게 오세훈 시장과 소통한 신생 노조협의체 ‘새로고침’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양대산맥으로 군림하며 주름잡았던 한국 노조 문화에 새로운 노조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노동조합’ 협의체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이하 새로고침)’는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등 11개 노조(8천여 명)가 참여해 올 2월 출범한 신생 단체다. 이들은 양대 노총의 정치 투쟁을 거부하며, 특히 목적을 위해 노동자의 권익향상이라는 노동조합의 본질을 흐리는 것을 근절하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새로고침 위원은 1일 오 시장과의 만남에서 “노동운동의 본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해 주고 못한 것이 게 있으면 꾸짖어 달라”고 전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노동자 권익 향상과 전혀 무관한 정치 구호와 이념적 판단 때문에 (노조가) 파업을 하는 양상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판단하실 것이라며 정치적 이념 없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노동운동에 동의하면서 “앞으로 노동운동이 근로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애써달라는 응원의 말을 전했다. 이에 새로고침은 “우리는 신생 노동조합이고 상급단체가 없다 보니 기존 노조가 (노사협상을) 독식하는 상황”이라고 말하며 “민주주의라면 조합원 비율에 맞춰 협상해야 하는데 우리는 아예 참여도 못 하게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우선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는 소수 노조가 노사협상에 참여할 수 없는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오 시장은 “근로자의 날 상반된 두 개의 풍경이 있다. 하나는 서울 시청 근처 태평로 일대를 가득 메운 거대 노조가 집회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시장의 한 카페에 모여 새로운 노동 운동을 모색하는 ‘새로고침 노조’의 모습”이라며 “서울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울 것”이라고 화답했다. 아울러 회동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노조가 정치구호를 외치고, 반미를 주장하는 한 미래는 없다”고 쓰기도 했다.

기성노조에서 새로고침, 상식 중시하는 MZ세대에 변화되는 노조?

새로고침은 LG전자 사람 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동조합 등 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결성된 노동조합 협의체로 지난 2월 21일 발대식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같은 총연합(상급)단체라기보다는 개별 노조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협의기구에 가깝다. 당초 발대식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양대 노총에 비해 영향력도, 가입원도 부족한 탓에 협의체로서 역할이 미미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지난 11일 서울교통공사 영업본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근로자 대표로 양대 노총이 아닌 올바른노조 소속의 허재영 후보가 당선되며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이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MZ세대, 20·30세대들이 직장 내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민주노총, 한국노총에 대한 반발심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사진=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새로고침은 공식 출범 이전부터 ‘상식’이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그동안 양대 노총이 운영하는 노조가 ‘상식’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어 ‘상생’, ‘공정’, ‘연구’, ‘자율성’, ‘합리적’, ‘수평적’이라는 키워드도 내세웠다. 과거 ‘N86’이 주축으로 활동했던 노조들이 군대식 문화와 이기주의에 몰두해 있었던 반면, 소통을 중시하고 사측과 합리적인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노조의 이미지가 국가 지원금을 착복하고, 자식들을 강제로 정규직으로 해달라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 길거리에서 고성방가를 지르고 업무를 방해하는 이미지로 낙인찍혀 있지만, MZ세대의 노조는 사측과 현실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한편 기존에 노동운동을 주도해 왔던 양대 노총은 새로고침과의 연대 가능성을 내세우면서도 이들의 존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특히 구성원 대부분이 정규직·공기업·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점과 회계 관련 문제로 양대 노총을 비판하는 점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새로고침은 정부가 노조에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했던 것에 찬성하며 모든 자료를 상세하게 공개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투쟁 방식에서도 대립각이 세워지고 있다. 양대 노총은 정치 투쟁이란 노동 운동과 따로 갈 수 없다며 필연성을 주장해 왔다. 고용 조건 문제에 대한 것은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문제, 나아가 정치 문제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새로고침은 정치 투쟁이 노동 운동과 엮이는 것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이라고 주장하며 “기존 시위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뀐 만큼 조금은 다른 방식의 시위 방식을 연구해 실질적 효과를 보도록 끌어내겠다”고 반박했다. 또 현재 8개 기업이 갖고 있는 주요 문제점인 교섭대표 노조의 권한 독점, 생산직과 사무직 간 불평등 및 불공정 대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등의 해결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어용노조 비난 있었지만, 尹 뒤통수 때리기도

윤석열 정부는 새로고침에 대해 양대 노총의 대안이라고 언급하며 MZ 노조라고 칭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새로고침 협의회의 출범 이후 ‘노동단체 지원 사업’에서 사업 예산 44억원 중 절반(22억원)을 신규로 참여하는 단체에 지급하도록 개편했다. 또 기존에는 노동조합만 참여하던 사업을 ‘근로자로 구성된 협의회’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새로고침을 위한 제도 개편이 아니냐며 새로고침이 정부의 어용노조로 이용되는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고침 관계자들은 양대 노총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기반으로 출범했으나, 부분적으로는 양대 노총과 연대할 뜻이 있다고 전했다. 또 69시간(주 6일 근무 기준) 집중 노동을 허용하려는 정부의 근로 시간 개편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정부 국고보조금 지원사업에 참여하라는 정부의 손짓에도 협의회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거부한다며 뜻을 명확히 밝혔다. 고용부에서 제도까지 개편해 가며 정부 보조금이 신생 노동자 단체에도 흘러갈 수 있도록 했음에도 보조금 사업을 신청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유준환(32) 협의회 의장(사람중심사무직노조 위원장)은 일각에서 “현 정부의 노동 개혁 방향이 새로고침 원하는 방향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며 새로고침은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MZ 노조 프레임’에 이용당하지 않고 우리 목소리를 오롯이 내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노동부에서 초청해 참석한 청년 노조위원장 간담회에서 포괄임금제와 교섭 창구 단일화 문제 등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지만 이후 언론보도는 엉뚱하게도 ‘MZ 직장인들은 자유로운 근무 방식과 성과급을 좋아한다’로 요약되는 것을 보고 새로고침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송시영(31) 협의회 부의장(올바른노조 위원장) 역시 ‘MZ 노동자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는 목소리에 동원되는 사무직 노동자들을 보호해달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근로자의 날, 노동자의 날이라고 불리는 5월 1일에 오 시장이 다른 노동자 집단이나 노조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새로고침과 만나 간담회를 진행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2030 세대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전략적으로 젊은 집단, 상식적인 노조로 인식된 ‘새로고침’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그동안 대화가 안 되던 강성 노조 단체와는 다르게 상식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고침과는 대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러한 기대감이 반영된 정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왼쪽부터) 김수원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 오세훈 서울시장, 송시영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부의장, 백재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 박재민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 조은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 대리/사진=서울시

이날 유 의장은 “정치와 아예 선을 긋겠다는 것은 아니다. 입법이 필요한 정책도 있기에 완전히 선을 그을 수는 없다”며 “노동과 관련 있는 사안에 국한하겠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새로고침 협의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노조 조직이 안 된 나머지 86%의 인식을 바꾸고 가능성을 보여줘 노사가 상생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노조를 처음 설립하고 가입했을 때의 마음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노조 관계자들은 이미 80년대 초반생들이 40대 부장급 인력이 되어 있는 상황인 만큼,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조’ 집단은 양대 노총보다 새로고침 등의 대안 노조에 더 호감을 표현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막 탄생한 것처럼 보이는 넥타이 부대 노조 집단이 앞으로 주력 집단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상생하는 파트너십을 꿈꾸는 새로고침, MZ 노조라며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미명 하에 활용되는 정부의 도구가 아니라, 시대를 이끌 수 있는 다음 세대 노조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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