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美 환율 관찰대상국서 제외된 한국, 배경은 ‘불황형 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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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위스’ 환율 관찰대상국서 제외, 베트남은 신규 편입
올 상반기 국내 경상수지 흑자, 전년 대비 ‘1/10 토막’으로 줄어든 영향
환율 수준 시장 결정에 맡기되 미세 조정했던 ‘외환당국 대응’에도 주목
7일(현지 시간) 미 재무부가 발표한 ‘2023년 하반기 환율보고서’/사진=미 재무부

미 재무부가 매해 2번 발표하는 환율 관찰대상국 리스트에서 한국과 스위스를 제외하고 베트남을 새로 포함했다. 2016년 4월부터 줄곧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던 우리나라는 올해 상반기 지속된 불황에 환율 관찰대상국 관련 3가지 기준 중 무역흑자 기준만 충족했다. 이에 일각에선 지난 정부와 달리 외환시장의 개입을 최소화했던 외환당국의 대응이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베트남 등 6개국 美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

7일(현지 시간) 미 재무부가 발표한 ‘2023년 하반기 환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스위스가 환율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된 가운데 베트남이 새롭게 대상국에 포함됐다. 현재 환율 관찰대상국은 중국, 독일,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등 6개국이다.

환율 관찰대상국은 환율조작국의 전 단계로, 인위적으로 환율 시장에 개입해 교역 조건을 유리하게 만드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 국가를 의미한다. 미 재무부는 2015년 제정된 무역촉진법에 따라 미국과 교역 규모가 큰 상위 20개국의 거시정책 및 환율정책을 평가하고 일정 기준에 따라 관찰대상국을 지정한다. 환율보고서는 매해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다.

현재 기준은 △상품과 서비스 등 150억 달러 이상의 대미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 △12개월 중 8개월간 GDP의 2%를 초과하는 달러 순매수 등이다. 이 세 기준 중 2가지를 충족하면 관찰대상국, 3가지 모두에 해당하면 환율조작국에 준하는 것으로 알려진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한다. 재무부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국가는 없었다. 재무부 관계자는 “베트남이 지난 평가 기간 글로벌 경상수지 흑자가 임계치를 초과했다”며 관찰대상국에 포함한 배경을 밝혔다.

7년 만의 관찰대상국 제외가 아쉬운 이유

우리나라는 2016년 4월부터 계속 관찰대상국 명단에 이름을 올려 왔다. 2019년 상반기엔 1가지 기준에만 해당했지만, 이후 2가지 기준을 다시 충족하며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 우리나라가 환율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된 건 7년 만인데,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1.8%)가 기준 이하로 하락했을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내년 들어 환율 관찰대상국에서 벗어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미 재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가지 기준 중 무역흑자 380억 달러(약 50조원)만 충족했으며, 그간 발목을 잡았던 경상수지 흑자 관련 기준에선 벗어났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여전히 흑자를 기록했으나 그 규모( 24억4,000만 달러)가 1년 전의 10분 1수준으로 토막 났기 때문이다. 1년 전 상반기 흑자 규모는 248억7,000만 달러(약 32조6,245억원)에 달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경제는 올해 내내 불황형 흑자 구조에서 허덕이고 있다. 결정적인 원인은 반도체 업황 부진이 이어진 탓이다. 주요 수출처인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수출액이 전년 대비 큰 폭 줄어든 것과 더불어, 핵심 수출 시장으로 떠오르는 동남아, 미국으로의 수출 실적마저도 모두 감소한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IMF 고위급 패널 토론에서 토론자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IMF

“한은의 외환시장 개입 적절했다” 평가

우리나라가 환율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됨에 따라 이번 정부 들어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이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은 지난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75bp씩 올렸던 시기를 제외하고 외환시장 개입을 최소화해 왔다. 무질서한 시장 상황 등 예외적 경우에만 중앙은행의 간섭이 있어야 한다는 미 재무부의 권고에 부합했던 셈이다.

실제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외환당국의 개입이 원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면서도 특정 수준 이상으론 외환당국의 개입이 있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는 지난 4월 미 워싱턴에서 열린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대응’이라는 주제의 국제통화기금(IMF) 고위급 패널 토론에 토론자로 참석해 “지난해 9~10월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원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했기 때문에 외환 개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이 같은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의 쏠림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특정 레벨에 대해선 개입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과거보다 특정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해 9월 22일 엔·달러 환율이 145.9엔까지 치솟자, 일본 외환당국은 엔화 약세에 대응해 사상 최대인 2조8,382억 엔(약 24조6,739억원)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당시 우리나라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는 등 원화 가치가 급락하자 외환당국의 대규모 시장 개입이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미 재무부는 이를 두고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이나 일본의 시장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 변동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컨센서스의 영향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IMF와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자본유출이 발생할 경우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정책 수단으로 공식 인정하자는 논의가 나온다”면서 “이미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환율 조작 관련 이슈를 쟁점화하지 않고 있다. 이에 맞춰 외환당국도 환율 수준을 시장 결정에 맡기되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경우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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