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파고든 ‘마약 범죄’에 식약처, “UN 마약범죄사무소 대응 기법 적용할 것”

국내 마약 범죄 ‘급증’,정부 차원서 ‘강경 대응’ 요청했지만 대치동 마약 음료·롤스로이스 사고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약류 범죄들 실질적 대응책 마련 못한 정부, MOU 체결 기점으로 각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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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유경 식약처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한 UNODC를 찾아 UNODC 관계자들과 MOU를 체결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UN산하 마약범죄사무소(UNODC)와 마약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협력사항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 기관은 신종 마약류 정보 공유 체계를 강화하고 UNODC의 마약관리와 중독 재활 등 전문적인 경험과 기법을 국내에 적용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 UNODC는 불법 마약, 국제 범죄 문제 등의 대응을 위해 1997년 설립한 UN사무국 산하 조직이다.

UNODC 본부 방문한 식약처, “국내외 마약 문제 대응 나설 것”

식약처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오유경 처장이 UN산하 UNODC와 국내외 마약 문제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 소재 UNODC 본부를 방문했다. 최근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마약사범이 23% 증가하는 등 마약 문제가 심각해졌다. 특히 우리 정부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국내 마약 문제도 심각 수준을 넘어서면서 국제기관 사이 상호 경험과 역량을 공유해 마약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양 기관은 지난해 11월 마약류 예방·재활 등에 관한 ‘협력의향서(LOI, Letter Of Intent)’를 체결했으며, 이번엔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인 협력사항을 명시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번 양해각서에서 양 기관은 정보 공유체계를 강화해 신종 마약류 국내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기로 했다. 또 UNODC가 보유한 세계 각국의 마약류 안전 관리부터 중독 재활까지 경험과 기법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식약처는 또 국내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방지를 위해 활용 중인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마약류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 확산될 수 있도록 UNODC가 요청함에 따라, 내년부터 이를 신규 사업(해외원조사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내 마약 문제 ‘심각’ 수준, 미성년 마약 사범도 증가세

국내 마약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 이르렀음은 수년 전부터 경고된 바다. 실제 지난해 핼러윈 당시 이태원에 마약이 돌았다는 이야기도 이미 유명하다. 당시 관세청은 음료에 몰래 약을 타는 이른바 ‘퐁당 마약’이나 사탕으로 둔갑한 ‘사탕 마약’ 등을 다수 적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인 사이에서도 남이 주는 사탕이나 술을 먹었다가 마약에 노출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인스타그램 등 SNS상에 ‘핼러윈에 마약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취지의 글이 공유됐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미성년 마약 사건도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4월 서울 동대문구에선 남녀 중학생 3명이 함께 필로폰을 집에서 투약한 혐의로 적발됐다. 학생들의 나이는 14세에 불과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마약을 구매하는 데 텔레그램을 이용했으며, 마약 판매상은 암호화폐를 받고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16세 미성년자가 SNS와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마약을 접한 뒤 동네 친구, 학교 친구 등에게 권유해 중독시킨 사실이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브리핑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이렇듯 미성년 마약 사범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잡힌 마약 사범 1만8,395명 가운데 19세 이하는 481명으로 전체의 2.6%를 차지했다. 5년 전인 2017년 119명의 4배가 넘는 수치다. 아울러 대법원이 이종배 의원실에 제출한 마약류 관리법 위반 등 마약류 사범 통계에 따르면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나이인 ‘촉법소년’ 처리 건수는 지난해 21건이었다. 촉법소년 처리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모두 합해 3건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사실상 마약은 이미 위험 부담 없이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존재가 돼버렸다. 최근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제조법으로 만든 신종 마약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정작 정부는 이를 막을 만한 인프라 구축을 극히 게을리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이른바 ‘마약 음료수 사건’ 등이 아무렇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이유다.

사탕 형태로 재가공된 이른바 ‘사탕 마약’/사진=관세청

하수처리장서도 ‘마약’ 검출, 마약류 범죄도↑

일상을 파고든 마약 유통 실태는 생활 오수를 정화하는 전국 하수처리장에서도 확인됐다. 조사가 이뤄진 모든 하수처리장에서 필로폰이 한 곳도 빠짐없이 검출된 것이다. 지역별 검출량을 보면 인천이 전국 평균 2배를 훌쩍 웃돌았고, 단일 하수처리장으로는 경기도 시화에서 가장 많은 양이 검출됐다. 정부에 따르면 필로폰은 암페타민과 엑스터시, 코카인 등 조사 대상 7종 가운데 사용 추정량이 가장 높다. 이와 관련해 김영주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정책과장은 “항만이나 대도시가 접근성이 높은 측면이 있어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마약류를 투약한 후 교통사고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2차 범죄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마약류를 투약한 후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1,08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중 교통 범죄를 일으킨 마약류 투약 가해자는 282명이었다. 평균적으로 최근 5년간 매주, 소위 ‘롤스로이스 사고’ 같은 환각 질주가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마약류 투약 가해자의 구속 등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사회적 불안이 높다. 경찰청이 제출한 ‘마약류 범죄 구속영장 신청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마약류 범죄로 검거된 5만3,740명 중 구속영장이 신청된 사람은 9,947명뿐이었다. 마약류 범죄자 약 5명 중 1명(18.5%)에게만 구속영장이 신청된 셈이다. 2018년 21.9%였던 구속영장 신청률은 2022년 15.1%까지 낮아졌다.

실제로 롤스로이스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사고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음에도 불구하고 유치장에 구금된 지 약 17시간 만에 석방된 바 있다. 경찰은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8월 9일에서야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마약류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마약 범죄가 갈수록 심화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수사 사법당국과 정부의 총체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선제적 대응을 요구했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마약류관리 종합대책 추진성과 및 향후 계획’ 브리핑을 열고 “검찰, 경찰, 관세청 등 마약수사 전담 인력 840명으로 이뤄진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수사역량을 모으겠다”며 강경한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에 대해선 여전히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실제 마약류 범죄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마약사범 수준은 이제 단기간 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이번 MOU 체결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도 마약 공급조직을 전문적으로 추적 수사하는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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