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어짜는 OTT와 ‘속수무책’ 美 작가들 ① ‘기회’만 많아진 오늘날

AI 시대 도래, 일거리 늘어도 수입은 준 작가들 대규모 파업 돌입한 WGA, 하지만 영향력 적을 듯 작가들 운명, AI와 플랫폼에 달렸다

pabii research
미국작가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배우들/사진=WGA 유튜브 갈무리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며 근로 여건 악화를 우려한 미국 작가들이 대규모 파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만큼 파업의 영향력이 강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OTT 커뮤니케이션 작가들의 작업 수행 능력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기 때문이다.

WGA, OTT 대상 대규모 파업 돌입

지난 2일(현지 시각) 미국작가조합(WGA)은 1만1,500여 명 규모의 조합원들과 함께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파라마운트, 넷플릭스 등 미디어 기업 본사 앞에서 OTT스트리밍 시대의 종사자 처우 개선 및 AI 최종 시나리오 작성 불가 등 규제안을 요구하고 나섰다.

업계의 스트리밍 경쟁을 촉발시켜 노동 환경을 악화시킨 가장 큰 원흉으로는 ‘넷플릭스’가 지목됐다. WGA는 넷플릭스 건물을 ‘범죄 현장'(the scene of the crime)이라고 묘사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에 앞서 기획 단계에서 작가들을 고용하는 방식부터 악명이 자자하다고 말한다. 작가들은 “이렇게 고용된 그룹을 ‘미니룸'(mini-room, 기획안 제작 시 소수 인원으로 꾸린 집필실)이라는 은어로 칭하는데, 이는 공식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들어가기 전 내용을 기획하는 역할을 한다”며 “공식적인 제작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보수가 적고 제작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일이 중단된다”고 설명했다.

작가들은 OTT 도입 이후 업무 강도는 강해진 반면 임금은 줄었다고 주장했다. 한 시즌당 20편 이상 에피소드를 만들던 이전과 달리 넷플릭스는 시즌당 10편 안팎으로 드라마를 압축한 뒤 한 번에 공개해 제작 일정이 더 타이트하다는 것이다. WGA에 따르면 1년 가까이 보장되던 고용 기간은 10~15주로 줄었고, 최근 10년간 TV 작가 및 프로듀서의 주당 임금 중간값은 약 23% 떨어졌다. 일거리는 늘었으나 근로 여건은 악화한 것이다.

WGA에 따르면 시즌당 참여하는 작가 수 자체가 줄어 일거리가 사라지는 일도 왕왕 있다고 한다. <그레이스 앤드 프랭키> 등 넷플릭스 시리즈 대본을 집필한 작가 앨릭스 레비는 “10주짜리 일을 구하면 일을 시작하자마자 새로운 일을 또 구하기 시작해야 한다”며 “나는 몇 달 동안 일을 구할 수 없어 집 임대료를 내기 위해 가족들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최대 쟁점은 ‘재상영분배금’

기존의 ‘로열티’에 해당하는 재상영분배금도 쟁점이다. 재상영분배금이란 방송국 측이 작품을 ‘재방송’할 때마다 작가·출연자에게 저작인접권료(저작물을 일반 대중이 향유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이에게 지불하는 비용)를 지불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넷플릭스 등 OTT는 재방송의 개념은 없으나 플랫폼에서 작품을 계속 서비스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추가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WGA의 주장이다.

다만 TV 이 같은 재상영분배금은 OTT 산업에선 이전만큼 존재하기 힘들다. OTT 산업은 구독 모델로 이뤄져 있는 탓에 건별 금액 산정이 어려운 데다, 제작사들이 재생 횟수 등 상세한 데이터를 따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WGA 측은 정확한 기준과 더 많은 분배금을 요구했으나, 사업자단체에 해당하는 영화‧TV제작자동맹(AMPTP)은 WGA 등 작가 단체가 주장하는 주요 쟁점을 일절 거부했다.

거부 뜻 밝힌 AMPTP “우리도 힘들다”

AMPTP가 거부의 뜻을 밝히면서 파업은 장기화 양상을 띠게 됐다.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등이 소속된 AMPTP는 코로나19 이후 구독자가 줄면서 산업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냈다. 실제 스트리밍 시장은 철저한 승자독식의 세계다.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많은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다. 앞으로도 극적 타결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챗GPT의 등장도 작가들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챗GPT 등 AI를 악용한 불공정거래 및 착취가 늘고 있는 추세기 때문이다. WGA 측은 “초기 기획부터 대본 완성까지 모든 과정에 작가가 참여하는 것이 아닌 일부에만 참여할 우려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컨대 여러 작품을 학습한 생성형 AI를 이용해 기본적인 초안을 만든 후 작가진을 참여시켜 스크립트를 작성하도록 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전체 작업에서 작가들의 참여 비중이 줄어드는 만큼 할당되는 비용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다.

OTT 시대가 도래하면서 작가들에게 ‘기회’는 많아졌다. 시장이 더 넓어졌으니 확장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다수 표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종사자 입장에선 그 확장의 이면에 플랫폼이 끼어들어 사실상 2중, 3중의 착취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WGA가 전면적 파업이라는 강수를 둔 건, 이 같은 구조를 깨버리기 위함이다. 다만 챗GPT의 등장 및 OTT 생태계 변화 등으로 인해 역학 관계가 바뀐 지금, 이전만큼 파업의 영향력이 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버티지 않으면 장기적인 고용이 보장되지 않으니 억지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작가들의 운명은 사실상 AI의 발전, 그리고 OTT·제작사의 입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