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호황인데, 중소 조선사엔 노 저을 사람이 없다

한국사회 핵심 원동력은 여전히 제조업 조선업계 호황 맞았지만 대기업 얘기일 뿐, 중소는 인력 없어 바닥 무너지면 천장도 떨어져, 중소기업 지원해야

pabii research
사진=유토이미지

중소기업중앙회와 자랑스러운중소기업인협의회(이하 자중회)가 지난 5일 ‘미국 제조업 정책’을 주제로 조찬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위스콘신대학교 기계공학과 민상기 교수의 강연으로 진행됐다. 민 교수는 제조업과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강연에는 자정회 회원사 대표를 비롯해 40여 명이 참석했다.

제조업은 산업의 근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민 교수는 2009년부터 미국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가 주최로 이뤄진 ‘향후 50년간의 미국 제조업 정책 로드맵’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민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원인분석을 통해 제조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이에 따라 2012년부터 제조업 투자를 늘렸지만 첨단 제조업 중심이어서 기초과학 연구에만 집중한 결과, 지난 10년간 가시적 성과가 없었다”고 진단했다.

민 교수는 첨단기술과 고부가가치 산업에 밀려 저평가되는 전통 제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특히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소기업 및 제조업의 중요성이 한국 사회에서 폄하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며, 전통 제조업이 한국 경제 성장에 여전히 핵심적인 원동력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10년 만에 물 들어오는 국내 조선업계

국내 전통 제조업의 핵심 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이 10년간의 불황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하지만 대형 조선사들과는 달리 중소 조선사들은 인력 수급에 허덕이며 ‘곡소리’를 내고 있다. 밑바닥이 무너지면 꼭대기도 떨어지는 법이다. 민 교수의 지적처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3대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해양의 올해 누적 수주량은 지난 10년간의 불황에서 확실히 탈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106척을 수주한 대우조선해양은 연간 목표 157억4천만 달러의 89%, 삼성중공업은 연간 목표 95억 달러의 34%, 한화해양은 연간 목표 69억8천만 달러의 15%를 달성했다.

국내 조선업계의 유례없는 수주 호황은 인력 수요의 급증으로 이어졌지만 업계는 인력 수급에 적잖은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조선소의 기술 인력은 약 14,000명으로 집계됐으나 지난해에는 9,000명으로 35%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조선업 관계자들은 2010년대 조선업 침체기 당시 핵심 인재들이 다른 산업으로 유출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시 호황을 맞았지만 이미 떠난 인력들이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장 근로자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설계 및 연구 인력이 업계를 떠나면서 미래 성장 동력 자체를 잃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게다가 조선업에 신규로 진입하는 인력들마저 줄어들면서 조선 업체들 사이에 인재 쟁탈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인력난은 대형, 중형, 중소형 조선사를 가리지 않지만, 중대형 조선사들이 수주에 박차를 가하면서 생산, 설계, R&D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흡수하고 있는 만큼 근무 환경과 인건비 측면에서 불리한 중소 조선사들의 인력난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저을 사람 없는 중소기업

대형 조선사들은 지속적으로 인재를 유치하는 반면, 외부 인력업체와의 단기 계약에 의존하는 중소 조선사들은 숙련된 인력의 이탈로 인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속적인 인력 이탈로 인해 자칫 중소 조선사들의 연쇄 폐업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문제는 중소 조선업 종사자 중 상당수가 20년 이상 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산업과 함께 고령화됐다는 점이다. 이들이 은퇴할 경우 산업의 명맥도 함께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된 인력 유출로 현재 내국인과 외국인을 포함한 중소 조선업 종사자 수는 100여 개 업체를 기준으로 약 4,000여 명에 불과하다. 이에 정부는 조선업 인력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조선업의 외국인 숙련인력(E-7) 및 저숙련인력(E-9) 비자에 대한 일련의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3년간 매년 5,000명의 인력을 조선업에 투입하는 긴급 대책도 시행하고 있다.

맞춤형 지원 대책 절실

그럼에도 중소 조선업체의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이와 관련해 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정부가 중소 조선업계에 대한 맞춤형 인력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내 중소 조선산업은 전 세계 신조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국가산업이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된 지원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정말 필요한 것은 조선업의 특수한 구조와 수요에 맞는 맞춤형 인력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한기원 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 전무도 조선업의 경쟁력은 조선업 경력을 가진 근로자의 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숙련 신규 근로자를 숙련공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관리 인력’이 막대하게 소요되는 만큼 형편이 어려운 중소 조선사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국내 건조 규모를 고려할 때 2027년까지 생산인력만 3만7,000명을 충원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공정 효율화 작업이나 원가 절감보다도 근본적인 인력난 해소가 화급하다는 의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부나 대형 조선소가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인력을 늘리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며 “급여를 비롯한 근무 환경 전반을 계속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형 조선 산업은 국내 조선시장의 뿌리다. 해상운송선박, 해양경비선, 해양레저선, 어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이 중대형 조선사와 상호 보완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날 강연회에서 민 교수는 “한국의 경쟁력은 한류가 아니라 제조업이며, 전통 제조업을 잃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조선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소-중견 산업 지원의 중요성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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