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붙은 ‘K-라이스벨트 사업’, 상생의 좋은 예

농식품부 ‘아프리카 케이(K)-라이스벨트 사업’ 추진단 구성 전 세계 곡물 가격 급등, 아프리카 밀 가격 45% ‘껑충’ 생산량·열량에서 밀 압도하는 쌀, ‘관건은 기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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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열린 ‘K-라이스벨트 농업장관회의’에 참석한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아프리카 케이(K)-라이스벨트 사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해 추진단을 구성했다고 1일 밝혔다. 한국의 대표적인 농업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인 K-라이스벨트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음에 따라 한국의 기술 수출과 아프리카의 식량난 해결이라는 상생의 선례를 남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제사회 ‘이목 집중’ K-라이스벨트

K-라이스벨트 사업 추진단은 농식품부 국제협력관 소속으로 농식품부와 농촌진흥청,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국립종자원 및 한국농어촌공사의 업무 관계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이번 사업의 △총괄기획 △생산기반조성 △종자생산 △농가보급 및 유통 △국제기구 및 대외협력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지난 7월 10일 공식 출범한 아프리카 K-라이스벨트 사업은 쌀을 주식으로 소비하면서도 부족한 생산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의 식량안보 개선을 위해 추진됐다. 대상 국가는 가나,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세네갈, 우간다, 카메룬, 케냐 등 8개국으로, 한국은 과거 우리의 쌀 자급률 달성 경험을 적극 공유하고 필요에 따라 쌀 직접 원조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그동안 한국의 농업 ODA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으며, 특히 이번 K-라이스벨트 사업은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처음 K-라이스벨트 사업 의사를 밝혔고, 적극적인 추진 결과 7월에는 대상 국가들의 장관급 대표를 서울에 초청해 농업장관회의 및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시 행사에는 신디 매케인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 케빈 우라마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부총재 등 해외 주요 인사들이 다수 참석해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WFP와 AfDB는 참석에 그치지 않고 K-라이스벨트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매우 짧은 시간에 쌀 자급을 달성한 한국의 경험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고 강조하며 “아프리카에서는 우리 농업 기술을 배우기 위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추진단 발족을 통해 아프리카 현지의 여건과 수요를 면밀히 파악하고, 쌀 생산 및 유통 가치사슬 전반을 고도화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추진단장을 맡은 윤종철 농촌진흥청 차장 역시 “선진국들의 원조 손길이 큰 실표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만큼 한국의 녹색혁명 경험 공유가 아프리카에서 ‘제2의 녹색혁명’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K-라이스벨트 사업 대상 8개국 개황/출처=농림축산식품부

식량안보 적신호 불러온 우크라이나 전쟁

지난해 2월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 곡물 가격의 폭등을 불러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약 21.5% 수준에 이르는 만큼 글로벌 식량안보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식량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더 큰 타격을 입었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서 밀 선물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해 3월 역대 가장 높은 가격인 부셸당 12.94달러(약 1만6,822원)까지 치솟았고, 유엔(UN)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주요 식량 가격은 전쟁 전과 비교해 약 30% 급증했다.

아프리카의 식량난이 심각해짐에 따라 국제사회가 나섰다. UN과 튀르키예의 적극적인 중재 끝에 러시아는 흑해 해상운송을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선박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흑해 곡물 이니셔티브’에 서명했고, 국제사회는 이를 통해 아프리카 식량난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같은 곡물 협정은 러시아의 간섭으로 수시로 위협받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가 협정에 따라 안전을 약속한 곡물 수송 통로에 있는 선박에서 크림반도에 있는 자국 함대를 향한 대규모 무인기 공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하며 곡물 협정을 철회하는 등 더 큰 불안을 불러왔다.

세계 5위 수준의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이 급감했다는 점도 식량 가격의 상승을 부추긴다. 우크라이나는 비옥하기로 이름난 흑색토를 보유한 세계적 곡창지대로 꼽힌다. 경작지 비중은 57%(2019년 기준)로, 세계 최대 농업국가인 미국(17%)의 세 배가 넘는다. 러시아의 침공은 이같은 세계의 식량 창고인 우크라이나 농업 기반을 파괴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러시아 군대는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토를 초토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농장에 설치된 발전기와 각종 농기구를 약탈하거나 파괴했다. 전쟁이 끝나고 농부들이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도 정상적인 식량 생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은 전년 대비 35% 이상 감소한 2,150만t(톤)으로 집계됐으며, 세계은행은 밀 가격이 40% 이상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식량난

세계은행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5월 AfDB는 아프리카 전역의 가정들이 밀가루를 구입하는 데 45%를 더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 겸 아프리카연합(AU) 의장은 “아프리카는 생산이나 물류 체인에 대한 통제가 없는 만큼 전적으로 상황에 의존한다”고 말하며 식량 가격 상승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푸는 것이 먼저”라며 서방측으로 책임 소재를 떠넘겼다.

그러는 사이 식량 위기는 계속해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곡물과 함께 발이 묶인 비료 가격까지 폭등했기 때문이다. AfDB는 300%가량 치솟은 수입 비료 가격이 아프리카 식량 생산의 급감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15억 달러(약 1조9,500억원)를 투입해 종자·비료 구입을 지원하고 수입 비료 의존도를 낮춰갈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동북부와 10년 전 수준의 농업 생산을 기록한 사하라 이남 지역의 현재 상황을 떠올리면 당장의 식량난을 해소할 방안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WFP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세계 전체 기아 인구는 약 3억4,500만 명으로, 이 가운데 5,000만 명 정도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조차 구하지 못해 죽음의 문턱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아프리카 저소득 국가의 국민인 이들은 턱없이 낮은 자국의 식량 생산과 수입 곡물 가격 급등, 달러화 환율 상승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곡물 가격의 급등을 목격한 전 세계의 국가들은 자국의 곡물 자급률 안정을 위해 빗장을 걸어잠그고 ‘식량 보호주의’에 나섰다. 전쟁이 끝나도 아프리카의 식량난은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뛰어난 생산량 자랑하는 쌀, 한국은 자원도 인력도 ‘과잉’

쌀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에서 밀을 압도한다. 약 3,305㎡(1,000평)의 땅에서 연평균 1.1t을 수확할 수 있는 밀과 달리 쌀은 1.5t가량을 거둘 수 있다. 섭취 후 발생하는 열량 역시 쌀이 밀보다 15%가량 높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매년 5만t 상당의 쌀을 식량 사정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에 ODA로 지원해 왔다. 그 결과 과거 옥수수, 밀, 사탕수수 등을 주식으로 삼던 아프리카에서도 쌀을 주식으로 삼는 가정이 가파르게 늘었다. 하지만 밀 농사와 달리 쌀농사는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다량의 물이 필요한 만큼 관개시설의 정비가 필수이며, 농토의 환경에 적합한 종자 개발도 꾸준히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빠른 속도의 농업 기술 발달을 이뤘지만,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연간 56.9㎏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매년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정부 비축 양곡을 늘리고 있지만, 갈수록 쌓여가는 쌀과 농업 기술 인력들은 갈 곳을 잃은 지 오래다. 이번 K-라이스벨트 사업은 식량의 직접 지원에 그치지 않고 기술 전파를 병행한다는 점에서 우리 자원과 인력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다. 나아가 아프리카 역시 단기간의 식량난 해소를 비롯해 중장기적으로는 수입선 다변화, 종국에는 선진 기술 습득으로 자립을 이루는 등 ‘상생’의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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