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카이스트 나왔어” 막말 학부모, 신상 털어보니 카이스트 졸업생 아냐

갑질 학부모가 출간한 책도 밝혀져, 네티즌 별점 테러 학부는 지방 사립대 졸, 대학원은 MBA, 그마저도 중퇴 우리 사회 만연한 ‘신상털기’는 명백한 위법, 사적 제제 지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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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부모가 자신이 명문대를 나왔다며 임신 중인 공립유치원 교사에게 막말을 퍼부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분노한 네티즌들에 의해 해당 학부모의 신상이 공개됐고, 일부 네티즌들은 학부모가 과거 출간한 것으로 알려진 책 서평에 최하점을 주는 ‘별점 테러’를 이어가고 있다.

카이스트 나오면 뭐 하나

학부모 A씨의 발언이 공개된 건 지난 1일이다. 갑질 피해자인 공립유치원 교사 B씨는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통화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4년 전 지도했던 유치원생의 어머니 A씨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는 증거였다. 이에 따르면 A씨는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어디까지 배웠어요? (내가) 카이스트 경영대학 나와서 MBA까지 했다. 카이스트 나온 학부모들이 문제냐?”고 말했다. 이 밖에도 A씨는 자신의 무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하루에만 28건의 문자를 보내거나, 아이가 교사에게 맞았다는 식의 발언을 일삼았다.

이에 대해 B씨는 “제가 아이를 때렸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그런 일이 없다. 제가 아이를 왜 때리냐’, ‘정 그러시면은 신고를 하셔라 고소를 하셔라’고 말했지만, 고소를 안 하더라. 그냥 저를 몰아세우다가 안 되겠으니까 이제 또 다른 걸로 트집을 잡는 거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B씨는 나쁜 생각까지 했었다고 밝히며 혹시나 수년 뒤에라도 아동학대로 고소당할 것에 대비해 그동안 녹취록과 문자 메시지를 보관해 왔다고 밝혔다.

A씨의 언행이 알려진 후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카이스트 나오면 뭐 하나. 인성을 갖추는 게 먼저”, “좋은 학벌은 자기만족을 위한 거지 남을 타박하는 수단이 아니다” 등 A씨를 비판하는 의견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저런 사람들은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15일 온라인에서는 A씨가 과거 책 한 권을 출판한 작가라는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졌다. 이후 작가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고, 이에 A씨는 “죄송하다. 4년 전 제 언행이 경솔했다”고 사과했다. 사실상 자신이 보도된 사건의 당사자라고 인정한 것이다.

사실 카이스트 출신도 아냐

A씨가 B씨에게 했던 “카이스트를 나왔다”는 말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네티즌이 A씨가 출간한 책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책에는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SEMBA(Social Entrepreneurship MBA) 과정에 입학했으나 출산으로 1년 만에 자퇴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네티즌의 “진짜 카이스트 출신들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화가 나 있다”는 댓글에 A씨는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와는 무관하다. 죄송하다”고 답했다. 또 “대학원 말고 대학교 어디 나왔느냐”는 질문에는 지방에 위치한 사립대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의 “당신(A씨) 이름을 전국 교사들이 다 기억할 것”이라는 댓글에 A씨는 “공립유치원 교사 ○○○ 이름도 전국 교사들이 다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피해자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이의 실명이 거론되는 것은 법적 조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해당 댓글 내용들은 캡처돼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현재 해당 블로그는 계정이 삭제된 상태다.

A씨가 출판한 책의 인터넷 서평에도 A씨의 언행을 비판하는 글이 이어졌다. 평점 최하점을 준 네티즌들은 “글과 행동이 다른 분”, “덕분에 위선을 배웠다”, “작가의 삶과 글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니 그 부분이 재밌다” 등의 리뷰를 남겼다. 주요 서점 온라인 사이트에서 A씨의 책 평점은 16일 오전 기준 10점 만점에 2~3점대를 기록하는 상황이다.

출처=MBC뉴스 캡처

신상(身上)’과 ‘털기’의 합성어

‘학부모 갑질’도 문제지만 무분별한 신상털기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특정인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유포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행위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소위 ‘온라인 신상털기’가 ‘사이버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만큼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이버명예훼손은 전파성이 높아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거해 일반 명예훼손보다 가중처벌 받을 수 있다. 현행법상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일반적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사이버명예훼손은 ‘7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신상털기란 신조어로 ‘신상(身上)’과 ‘털기’의 합성어다. 네티즌들의 이목을 끈 특정인의 신상 관련 자료를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찾아내 다시 인터넷에 무차별 공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이버 폭력을 넘어선 개인에 대한 사이버 테러로 정의하기도 한다.

신상털기는 정신분석학에서 정의하는 관음적 심리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터넷상에서 공개되지만 현실과 인터넷의 경계가 희미한 현시대를 감안하면 신상정보 유출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대부분의 경우 신상정보가 유출되는 경로는 과거에 올린 SNS 등이 검색을 통해서 유출되고,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전파되는 형식이다.

신상털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놀이문화’로 치부하지만, 정보통신망법에 위배되는 명백한 범죄다. 이같은 신상털기의 배경에는 네티즌들의 왜곡된 공명심,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 기능과 SNS의 발전, 사이버공간에서 쌍방향 의사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는 댓글 문화, 언론의 범죄 사건 보도 등이 있다.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신상털기로 인한 여러 가지 피해 사례들을 보면, 피해자든 가해자든 상관없이 신상털기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겪게 되거나, 동명이인들이 피해를 받는 등 2차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신상털기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여겨지고 있어, 사건이 발생할 경우 무차별적인 신상털기가 당연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터넷에 타인의 신상을 언급하며 관련 의견을 표출한다고 해서 모두 범죄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 법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사이버명예훼손에 ‘비방할 목적’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자행되는 온라인 신상털기는 비방의 목적이 다분하다. 경기남부법률사무소의 김정훈 변호사는 “단순히 누군가의 신상을 유포하는 것을 넘어 그를 형사사건의 가해자로 특정하고 비난하는 등의 행동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이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다만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공익’을 위한 행위일 경우 실질적으로는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 즉 위법성 조각사유가 발생한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온라인 신상털기에 나선 많은 이들은 공익 또는 정의 구현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이 주장하는 사적 정의로 타인의 개인정보, 명예 등 기본적인 권리가 보호 받지 못한다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판례가 많은 만큼, 어설픈 지식으로 무장한 네티즌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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