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화된 부동산 시장 옥석 가리기, ‘생활형 숙박시설’도 직격탄

거주용 생숙 이행강제금 부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수분양자들 “내 집에서 쫓겨날 판인데, 가격 낮춰도 안 팔려” 부동산 규제 완화로 넘치는 매물, 옥석 가리기에 부채질

pabii research

숙박 시설과 주거 시설이 결합한 형태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 주목받던 생활형 숙박시설(생숙)이 소유자들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정부가 2년의 유예기간 끝에 다음 달 15일부터 숙박시설로 사용하지 않는 생숙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불과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웃돈을 얹어 거래되던 매물들은 이른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라 불리는 금액 인하에도 거래가 되지 않고 있으며, 분양자와 소유주들은 관련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정부는 2년의 유예기간을 둔 만큼 예고한 대로 이행강제금 부과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준주택 인정해 달라 vs 형평성 어긋나

서울 중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인근의 공인중개사무소들은 최근 한산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사업시행 인가 후 재정비촉진계획이 수정을 거듭하며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공사가 활발한 세운푸르지오지팰리스도 거래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해당 물건은 2021년 분양을 시작한 생숙으로, 내년 9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 관계자는 “재작년에 프리미엄 3,000만원을 주고 계약한 분도 있었는데, 지금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포기하고 나가려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정부가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며 수요가 아파트로 몰린 데다가, 당장 10월부터는 생숙을 주거 용도로 사용할 경우 해마다 상당한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부담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분양가보다 최저 5,000만원에서 2억원대까지 낮춘 생숙 매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아예 분양 가격을 낮추는 단지도 나왔다. 내년 8월 준공 예정인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롯데캐슬르웨스트(84㎡)는 16억1,000만원에 분양을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이보다 5,000만원 내린 15억6,000만원에 수분양자를 모집 중이다.

하지만 이같은 파격적인 조건에도 매수하려는 이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분양자와 소유주들은 지난 5일 국토교통부 세종청사 앞에서 생숙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5,000여 명의 집회 참가자는 “내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생숙을 주거시설로 이용할 수 있는 준주택으로 인정해달라고 촉구했다.

국토부는 이행강제금 부과를 예정대로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국 10만 호에 달하는 생숙 소유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숙박업 신고를 마쳤으며, 이제 와서 주거용으로 인정해 주면 형평성에 어긋나게 된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실제 이행강제금 부과 역시 각 지자체의 현장 확인 등이 필요한 만큼 당장 수만 명이 거액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구단위계획 변경 비롯, ‘불가능’에 가까운 오피스텔 변경

생숙은 숙박용 호텔과 주거형 오피스텔이 합쳐진 개념으로 숙박업을 할 수 있는 영업용 건축물을 의미한다. 호텔과 비슷해 보이지만, 취사 시설 등을 설치할 수 있고 개별등기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주거와 숙박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생숙은 소규모 투자로도 수익형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강조하며 2010년대 후반 크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생숙이 각종 주거용 부동산 규제를 피하며 부동산 시장 과열을 부추기는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또 수분양자 중에는 “실제 거주가 가능하다”는 분양사 측의 말만 믿고 분양을 받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시장이 과열되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투기 세력까지 생기자, 2021년 정부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생숙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규제를 강화했다. 해당 개정안은 생숙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오피스텔이나 주택으로 용도 변경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2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오는 10월 14일까지 용도 변경을 마치지 않은 주거용 생숙에 대해서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또 생숙을 숙박용도로 사용할 경우에는 숙박업 등록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소급적용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에 따라 미신고 시에는 공중위생관리법 위반으로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분양공고에서도 ‘주거시설로 사용할 수 있다’는 허위 또는 과장 광고를 할 경우 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히는 등 엄중히 경고했다.

문제는 생숙의 용도 변경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가장 먼저 생숙과 오피스텔 등 주거용 건축물은 건축되는 조건 자체가 다르다. 생숙이 들어선 부지는 대부분 상업지역에 집중돼 있는데, 주택 용도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들 지역을 주거지역 또는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지구단위계획의 변경은 도시관리계획 결정 5년 이내에는 변경이 불가하고, 만약 변경할 시에도 처음 지정과 똑같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매우 오랜 시간에 걸린다.

만약 오피스텔로 용도를 변경한다고 가정하면 발코니 설치 제한, 전용면적 85㎡ 초과 바닥난방 불가, 세대당 1대 이상 주차장 확보 등의 건축기준을 따라야 하며, 학령인구 유발에 따른 학교 추가 확보, 공공서비스 등 기반시설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유예기간의 장단과 상관없이 실제 전환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셈이다. 현재 전국에 분양된 10만3,000실의 생숙 중 오피스텔로 전환에 성공한 사례는 약 1%에 불과한 1,200실이다.

서울 아파트 전경/사진=freepik

“부동산 시장 진짜 옥석 가리기는 지금부터”

전문가들은 한때 주목받던 생숙의 애물단지 전락을 부동산 시장이 회복세에 들어서며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는 신호로 풀이했다. 법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물건들의 가치가 저마다의 위험 수준에 맞게 조정되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지리적 위치를 기준으로 가치가 책정되는 분양시장에서도 이미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속출하는 등 지역마다 극과 극의 청약 경쟁률을 보이면서다. 부동산 거래정보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7월 기준 지역별 평균 청약경쟁률은 서울이 101.1대 1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전북(85.4대 1), 경기(22.2대 1), 강원(9.9대 1), 경남(2.3대 1) 등 순을 보였다. 반면 경쟁률이 1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역도 있었다. 대전(0.8대 1), 인천(0.6대 1), 부산(0.3대 1), 제주(0.1대 1) 등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공급대책을 비롯해 2년 넘게 거래를 미뤘던 매물들이 쏟아지며 부동산 시장의 옥석 가리기는 한층 심화할 전망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현재로서는 서울과 지방 간 양극화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으며,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시장이 하락세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거나 매물이 많을 때는 수요자들이 신중하고 보수적인 전략으로 투자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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