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GDP 대비 기업부채 ‘세계 3위’, 부채·부도 증가 속도는 2위,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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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협회, 올해 3분기 주요 34개국 ‘세계 부채 보고서’ 발표
주력 산업 ‘반도체’ 분야의 지속된 수출 부진이 관련 기업 재정건정성 악화시켜
자잿값 및 인건비 상승으로 부동산 및 건설 업계도 ‘휘청’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빨리 증가하고 있단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대대적인 통화 긴축과 고금리 기조 속 주요국 기업들의 부채는 줄어든 반면, 우리 기업들의 부채 규모는 외환위기 때보다 불어났다. 그 원인으론 지난해 8월부터 역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반도체 분야의 수출 부진에 관련 기업의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와 인건비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건설경기 침체에 빠진 부동산업계의 대외채무 관리 실패 등이 꼽힌다.

고금리에 오히려 빚 늘어난 국내 기업들

1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세계 34개 나라(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의 GDP 대비 비(非)금융 기업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홍콩(267.9%)과 중국(166.9%)에 이어 126.1%로 세 번째로 높았다. GDP 대비 기업 부채 비율도 2분기(120.9%)보다 5.2%p 상승하며 3개월 만에 싱가포르를 제치고 세계 3위가 됐다.

기업부채 규모는 1년 전 대비 5.7%p 높아지며 러시아(13.4%p)와 중국(8.6%p)에 이어 세 번째로 증가 속도가 빠른 국가로 집계됐다. IIF 집계 대상인 34국의 기업부채 규모는 인플레이션 안정화를 위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서 지난 1년간 경제 규모 대비 평균 1.9%p 낮아졌으나, 우리나라 기업부채 규모는 오히려 더 늘어 1998년 외환위기 때(108.6%)보다도 커졌다. 여기에 올해 1~10월까지 집계된 주요 17개국의 기업 부도 증가율도 약 40%를 기록하며 네덜란드(약 60%)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가계부채도 심각하다. 3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2%로 34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후 부동의 1위이자,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가계 부채가 전체 경제 규모를 웃도는 유일한 국가로 나타났다. 실제 16일 각 은행 집계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총 689조5,581억원으로, 지난달 말(686조119억원)보다 약 보름 만에 3조5,462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대기업과 소상공인을 포함한 중소기업 등 기업 대출 잔액도 같은 기간 766조3,856억원으로, 지난달 말보다 2조696억원 더 늘었다.

IIF는 보고서를 통해 “유럽 등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은행이 민간 부문 대출을 줄이면서, 신용 등급이 낮은 회사들 사이에서 취약성 증가의 징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며 “이런 경향은 기업 부도 건수 증가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 재정 갉아먹는 ‘수출 부진’

우리나라 기업부채 규모와 그 증가 속도가 주요국 최상위권에 속한 주요 원인으로 국가 주요 성장 산업인 반도체 분야의 수출 부진이 꼽힌다. 반도체 수출은 올해 2분기부터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양상이지만, 올해 1분기까지 부진이 계속되며 관련 기업들의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됐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월 ICT(정보통신산업)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반도체 수출액은 89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7% 줄었다. 지난해 8월부터 역성장이 계속되는 추세로,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주력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부진이 전체 수출 실적 저하를 이끌었다.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요 제품인 D램이나 낸드플래시 등의 가격이 2021년 3분기부터 약 9분기 동안 하락을 이어가며 폭락했다. 일례로, 지난해 1분기 평균 3.41달러였던 8기가 D램 고정가는 올해 1분기 1.81달러, 3분기에는 1.31달러까지 떨어졌다.

한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총 780조원으로 이 중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23.88%를 차지한다. 여기서 다시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70%가 넘는 반면, 세계 반도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점유율 3.3%로 약 20조원에 그치는 수준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년 동안 급격한 긴축에 따른 글로벌 고금리 기조와 미중 패권 경쟁으로 촉발된 반도체 전쟁 시대에 따라 국내 반도체 기업이 주력하는 메모리 분야의 부진이 두드러졌다”면서 국내 기업들의 존재감이 미미한 세계 비메모리 시장의 점유율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복합적인 다양성과 메모리 반도체와의 차별점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함께 국내 역량 실태 파악에 기반한 국가적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사진=IMEC

부동산 및 숙박업 관련 기업·자영업자 빚 크게 늘어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도 우리나라 기업부채 증가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다양한 산업군 가운데 부동산과 숙박 등의 산업에서 기업대출이 크게 늘었다. 두 산업군 모두 상대적으로 자잿값과 인건비에 따라 영업실적 변동폭이 큰 분야로 꼽힌다. 실제 2021년 말 기준 업종별 대출 집중도를 살펴보면 주요 제조업이 0.3~1.5 수준에 위치한 반면, 부동산과 숙박업은 각각 2.6과 2.4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진 부동산 경기 둔화 및 조정에 건설 업계 부진은 심각하다. 지난 9월 24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9월 종합건설업체의 폐업 신고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모두 405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211건)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수준으로, 동기 기준 2006년 이후 최대치다. 이는 급격한 금리인상에 더해 철을 비롯한 주요 원자재 가격이 미중 분쟁 등으로 크게 오르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건설업체의 폐업이 줄을 잇는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인건비에 큰 영향을 받는 개인사업자들(자영업자)의 업황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크게 악화됐다. 2021년 말 기준 전체 기업대출 중 36%를 차지하는 개인사업자 대출에서 식당·카페·숙박업소 등 주요 개인사업자의 평균 사업소득은 전년보다 2.7% 가까이 감소했다. 이와 더불어 실제 자영업자들의 재정건전성도 크게 악화됐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43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 같은 기간 연체액(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도 역대 최고치인 7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부채 관리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구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삼일PwC경영연구원 관계자는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금리가 이어지고 앞으로도 고금리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017년 이후 급증한 기업대출의 경우 이자비용 부담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면서 “개별 기업 입장에선 안정적인 현금 보유 및 부채 수준을 줄이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 차원에선 채무상환능력이 크게 떨어졌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에 대한 채무재조정 등의 출구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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