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까지만 해도 수백억 달러 빠져나간 美 하이일드 회사채 시장, 이달 164억 달러 순유입

pabii research
월간 단위 유입액으론 2020년 7월 이후 최대치
고수익·고위험 '하이일드 채권' 펀드로 투자금 몰려
다만 연준이 고금리 기조 유지하면 ‘신용 스프레드’ 재차 확대 우려도

미국 회사채 펀드로 투자 자금이 빠르게 투입되고 있다. 견고했던 고용 지표와 인플레이션이 크게 둔화하고,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약해짐에 따라 위험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투기등급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의 미 국채 금리와의 평균 수익률 스프레드(HYS)가 한 달여 만에 3%대로 떨어진 가운데 미국의 양호한 경제 상황이 이어질 경우 스프레드는 더욱 축소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투자적격보단 ‘투기등급’ 회사채 펀드가 더 인기

22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7일까지 미국 회사채 펀드에 순유입된 자금은 164억 달러(약 21조원)에 달했다. 월간 단위 유입액으로는 200억 달러(약 26조원)를 상회하던 2020년 7월 이후 최대치다.

투자적격(BBB- 이상) 회사채 펀드에는 50억 달러(약 6조원)가 흘러 들어간 가운데 채권수익률은 높지만 가격 변동성도 높은 투기등급(BBB- 미만) 회사채 펀드에도 114억 달러(약 15조원)가 조성됐다. 지난달까지 하이일드 채권(High Yield Bonds) 투자 펀드에서 누적 180억 달러(약 23조원) 가까이 자금이 빠져나간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고수익·고위험 채권 펀드로 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고금리 장기화 시나리오가 약화된 영향이 크다. 부채가 많고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일지라도 향후 시장금리 하락과 긍정적인 경기 전망이 예상되는 상황에선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물가나 고용 등의 경제지표마저 향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택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월가에선 이러한 흐름에 따라 자산시장도 변화하고 있다고 봤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미 하이일드 채권 담당자 윌 스미스는 “전반적으로 시장의 투심의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미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에 대한 포지션을 청산하고 빠져나온 자금들이 대거 회사채 시장에 반영되며 대규모 안도 랠리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이일드 채권이란

국제 신용평가 기관이 BBB- 또는 Baa3 미만 등급의 회사채로 정의하는 하이일드 채권은 일반적으로 국채나 우량 회사채보다 더 높은 이자를 제공하는 채권이다. 통상 발행국의 경기나 발행 회사의 실적이 개선될 경우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이러한 조건이 악화되면 채권 가격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기관과 고액자산가 등 일부 개인투자자는 포트폴리오 다각화 측면에서 하이일드 채권에 투자한다. 하이일드 부문은 일반적으로 금리 위험에 대한 민감도가 낮고, 채권 시장의 다른 부문과도 낮은 상관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으로 하이일드 채권 투자는 주식 시장과 유사한 수익을 제공해 왔지만 변동성은 더 낮았다.

하이일드 자산군 가운데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꼽는 투자처는 바로 하이일드 ETF다. 대표적인 하이일드 ETF로는 뉴욕 증시에 상장된 ‘iShares iBoxx USD High Yield Corporate Bond ETF(HYG)’가 있다. 1,188개의 채권에 투자하는 HYG의 유효 듀레이션은 3.62년, 신용등급은 BB 등급 49%, B등급 38%로 구성돼 있다. 구글 파이낸스에 따르면 22일 기준 HYG의 운용자산 규모는 약 160억 달러며, 1년 수익률은 -0.11%다.

투자 가치 높아진 하이일드 투자, 우려의 시선도 존재

고금리 장기화 시나리오가 힘을 잃으면서 회사채 투자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실제로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발표에 따르면 22일 미국 투기등급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의 미 국채 금리와의 평균 수익률 스프레드는 3.9%p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27일 4.5%대로 올라섰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한 달여 만에 60bp 가까이 하락한 셈이다. 국채와의 수익률 격차가 좁혀졌다는 건 그만큼 회사채에 대한 투자 위험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금리 상방 가능성이 작고, 미국의 양호한 경제 상황이 이어진다면 하이일드 채권의 가격은 지속 상승할 수 있다. 만일 예상보다 수요가 둔화한다면 신용위험 상승 등에 따른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금리인하 기대로 인한 가격 상승이 이를 일부 상쇄하게 된다. 크레딧 리스크(신용위험) 우려도 예전만큼 크지 않다. 금융시장이 지난 2008년과 2020년 두 차례나 크레딧 리스크를 겪으며 중앙은행의 대규모 통화정책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우려할 만한 위기가 찾아올 경우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풀어 금리가 곧장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투자자들이 알고 있기에 과거와 같이 신용 스프레드가 급격히 확대될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다만 지금 시장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브랜디와인 글로벌인베스트먼트의 존 매클레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몇 가지 지표만 보고 금리가 고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채권 시장으로 달려드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지만, 솔직히 우려스럽다”며 “현재 시장은 2019년, 2021년과 매우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당시 나타났던 단기 과열과 마찬가지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준이 고금리 장기화를 고집할 경우 일부 기업들의 부실 위험을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가 잇따르는 상황에서도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늦춘다면 신용 스프레드가 다시 확대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부채비율은 높고 지급 여력은 낮은 투기등급 기업들은 악화된 현금 흐름으로 인해 부도율이 큰 폭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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