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형제의 난’ 재점화, 사모펀드 손잡은 장남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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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장남, 사모펀드 MBK 손잡고 지분 공개 매수
장남·차녀 합쳐 지분 29.54% 확보, 공개매수 성공 시 차남 넘어서
경영권 분쟁에 사모펀드 개입, 한국타이어에 악영향 우려도
한타

한국타이어 ‘형제의 난’이 다시 불거졌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고문과 차녀인 조희원씨가 국내 최대 사모투자펀드(PEF)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한국앤컴퍼니의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면서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을 놓고 조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범 회장과 다른 자녀들 사이 벌어진 분쟁은 3년 전 차남이 회장에 오르면서 일단락된 바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이 지난 3월 회사 자금 200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또다시 구속된 틈을 타 조 고문이 반격에 나서면서 상황은 다시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장남 조현식 고문, MBK와 손잡고 한국앤컴퍼니 27% 매수 나서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MBK파트너스가 설립한 투자회사 벤튜라는 M&A(인수합병)를 목적으로 이날부터 오는 24일까지 한국앤컴퍼니 주식을 공개매수한다. 매수 예정 수량은 최소 1,931만5,214주(20.35%)에서 최대 2,593만4,385주(27.32%), 매수 가격은 2만원이다. 벤튜라는 외국인·국내 기관·소액주주 등 한국앤컴퍼니 일반주주 지분 가운데 최소 20.35%에서 최대 27.32%를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목표로 한 물량을 모두 매수한다고 가정하면 약 5,187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가가 2만원 이상으로 오른 건 조 회장 측이 공개매수 단가를 높여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는 등 경영권 분쟁이 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장남인 조 고문은 한국앤컴퍼니 지분 18.93%를 보유 중으로,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조 고문의 지분율은 39.28~46.25%까지 늘어난다. 조 고문과 MBK는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지분인 0.81%, 차녀 조희원씨 지분 10.61%를 우군으로 확보해 한국앤컴퍼니의 과반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한국앤컴퍼니의 최대주주는 조 회장으로, 지분 42.03%를 보유하고 있다.

1차 ‘형제의 난’ 전말

국내 1위 타이어 제조회사인 한국타이어는 승계를 둘러싸고 가족 간 갈등의 골이 깊다. 1차 형제의 난은 2020년 6월 조 명예회장이 차남이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인 조 회장에게 지분 23.59% 전량을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양도하면서 불거졌다. 차남이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라는 내외부의 평가가 나온 가운데 다른 형제들의 반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장녀인 조 이사장은 조 명예회장의 결정이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이뤄진 것인지 판단해 달라며 성년후견심판을 청구해 남매간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비화했다.

이후 난타전이 벌어졌다. 조 이사장의 후견심판 신청 후 침묵을 지키던 조 고문은 같은 해 8월 “현재 회장님의 건강 상태에 대해 주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그에 따라 그룹의 장래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는 상황”이라며 “회장님의 최근 결정들이 회장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제공된 사실과 다른 정보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과 함께 움직이며 경영권 분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후견심판이 진행된 후에도 대립은 이어졌다. 당시 조 이사장은 후견심판 직후 “아버님(조양래 명예회장)의 신념과 철학이 무너지는 결정과 불합리한 의사소통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비밀리에 차남에게 주식을 매매하는 방식으로 승계가 갑자기 이뤄졌다”며 “차남의 부도덕한 비리와 잘못된 경영판단은 회사에 금전적 손실은 물론 한국타이어가 쌓아온 신뢰와 평판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두 남매의 공세에도 조 회장은 그해 12월 한국앤컴퍼니 회장에 선임됐다. 선임 한달 전인 11월 주주총회에서 조 고문은 조 회장과 대결했지만, 경영권을 가져오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조 명예회장에 대한 후견심판 청구는 기각됐고, 조 고문은 경영권 분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이사장 측의 항고로 가족 간 불화는 여전히 봉합되지 않은 상태지만,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종식된 걸로 여겨졌다.

한국앤컴퍼니_지분

조현범 회장 사법리스크에 형제 경영권 다툼 ‘재발’

이렇듯 표면적으로 ‘형제의 난’이 종식된 지난 3년간 조 회장은 형·누나와 지분 격차를 2배 이상 벌리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올해 3월 조 회장이 200억원대 회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을 기점으로 다시 경영권 분쟁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집행 종료 이후에도 취업이 제한되는 등 오너 리스크가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는 현실이 됐다. 조 회장의 사법리스크는 그간 승산이 없었던 조 고문에게 ‘총수 공백’이라는 반격의 빌미를 줬다. 한국앤컴퍼니 지분 3.8%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만 해도 최근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하는 등 사법리스크 견제에 나선 상태다. 이는 국민연금기금을 운용하는 MBK가 이번 공개매수에 과감하게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다만 이번 주식 공개매수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시장의 의견이 갈린다. 공개매수 기간이 다소 짧은 데다, 주가도 이미 공개매수 가격인 2만원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즉 사실상 프리미엄이 반영되지 않은 가격에 소액주주들이 주식을 넘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번 공개매수에는 응모하는 주식 수가 20.35% 미만일 경우 전량 매수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현재 한국앤컴퍼니 유동주식 비율은 27.32%다. 공개매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체 유동주식의 74.5%가 공개매수에 응해야 하는 셈이다. 또한 조 회장 측이 가격을 올려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 회장이 지분 8%가량만 더 확보해도 지분율은 50%가 넘는다.

한편 조 고문이 공개 지분매수를 위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손잡은 만큼 회사 경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표면상으로는 경영효율화를 바탕으로 한 기업가치 제고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모펀드의 특성상 ‘시세차익’이 주목적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개매수 타진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사법리스크 논란이 있는 조 회장을 흔들기 위함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분이 부족하더라도 내년 주주총회에서 기관투자자들이 조 회장에게 등을 돌리면 의결권 행사에 따른 표 대결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 고문을 비롯한 형제들이 사모펀드를 등에 업고 공개지분 매수에 나서게 된 건 경영권 획득보다는 ‘내가 가지지 못할 거라면 같이 죽자’는 식으로 해석된다”며 “경영권 분쟁은 한국타이어의 경영 정상화와 향후 발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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