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美의 ‘점진적 디커플링’ 전략, 올해도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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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플레이션 완화 위한 금리 인상 등 긴축재정 영향 커
산업 분야에선 신보호주의 등 '점진적인 디커플링' 전략 추진
올해 총선 앞두고 트럼프 재집권시 '미국우선주의' 확대 우려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미국은 기준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연착륙, 글로벌 공급망을 두고 벌인 중국과의 패권 경쟁, 신보호주의 산업정책, 무역 이니셔티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활 등 여러 변수들의 영향을 받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해 추진했는데, 올해도 여전히 해당 변수들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미국의 변화와 대응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은 미시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 거시적으로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국가 안보의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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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ast Asia Forum

2%대 물가상승률 목표로 긴축재정 기조로 전환

최근 몇 년간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상·하원의 과반 의석을 절묘하게 나눠 가지면서 정치적인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간의 갈등은 경제 현안에 대한 중대성과 시급성을 가리고 있으며 중요한 법안의 합의를 어렵게 만들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현재 GDP(국내총생산)의 6~7%에 달하는 재정 적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지출 구조조정이나 증세에도 무관심하다. 그러는 사이 국가 재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살펴보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물가가 급등했고 같은 해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9.1%로 정점을 찍었다. 여기에 지난해까지 4% 미만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면서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세를 넘어섰다. 또한 지난해 6월 민간 부문의 시간당 임금은 전년 대비 4% 넘게 상승한 데 반해 CPI는 전년 대비 3%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 시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가상승률을 2%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긴축재정 기조를 유지했지만, 이같은 임금 상승은 연준의 기대와는 상충되는 현상을 불러왔다. 임금이 상승하면 가계 지출이 늘어나 경기 진작에는 도움이 되지만 수요도 함께 증가하면서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2021년 11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더 이상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면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통화정책의 전환을 예고했다. 이같은 발언 후 4개월이 지난 2022년 3월, 연준은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2018년 12월 이후 이어진 제로 금리를 끝냈고 2023년 7월까지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렸다. 연준의 긴축재정 정책은 실업률이 오르더라도 물가상승률을 2%대로 안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 기간 기준금리를 5%p 이상 인상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미국의 경기는 둔화되지 않았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올해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것이란 전망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2%대를 웃도는 상황에서 고금리가 장기화된 데다,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지난해 10월 5%에 도달한 후 다시 하락세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고금리를 고수하는 연준의 긴축재정 조치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던 전문가들도 올해는 완만하고 경기 침체로 연착륙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美 통화 정책, 韓·日 등 아시아 주요국에도 영향

하지만 지난해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한 금리 인상 등 긴축재정 정책은 지역 은행을 비롯한 금융시장에 위기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초 일부 지역 은행들은 금리 상승으로 인해 국채 포트폴리오에서 막대한 미실현손실이 발생하면서 결국 파산했다. 당시 연준은 최후의 수단으로 재정 위기에 처한 은행들에게 국채의 액면 가치에 맞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더 큰 혼란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도 지역 은행을 둘러싼 위기 요인은 여전하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증가하면서 공실 사태가 일어났고, 상당수의 지역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한 부실 대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변화는 미국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3년 한해 동안 미국 금융시장의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달러 가치가 상승했는데, 이로 인해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대미 수출 시 더 큰 수익을 올리면서 결과적으로 막대한 이득을 봤다. 여기에 미국의 GDP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도 늘어났다. 또한 아시아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금리 수준과 보조를 맞춰 금리를 인상했지만 주식시장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아시아 국가들의 증시를 살펴보면 한국 10%, 일본 18%, 대만은 16% 상승했으며 중국, 싱가포르, 호주 증시는 보합세로 마감했다. 다만 지난해 말에는 미국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달러 환율이 소폭 하락했다.

‘점진적 디커플링’ 기조에 ‘바이 아메리카’ 확대

지난해 2월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주요 공급망이 미국에서 시작될 수 있도록 모든 인프라에 미국산을 사용하겠다”며 핵심정책으로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강조한 바 있다. 바이 아메리카는 6,000억 달러(약 756조원) 규모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구매·조달 시장에서 미국산의 비율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11월 고속도로, 다리, 철도, 고속 인터넷, 전기자동차 충전소 등 연방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인프라 건설사업에 대해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초당적 인프라투자·일자리 법(Bipartisan 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을 승인했고, 2022년에는 반도체 산업에 지원금 520억 달러(약 62조원)을 포함해 5년간 총 2,800억 달러(약 3조7,000억원)를 투입하는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s Act, CHIPS)’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통해 보조금을 외국 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지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삼성이나 대만의 반도체 제조회사가 미국에 대규모 제조 공장을 건설하도록 유도했다. 특히 IRA는 3,940억 달러(약 4조5,000억원) 규모로 기후 친화적인 이니셔티브에 신보호주의를 더했다. IRA는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파트너 국가에서의 생산한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배터리와 전기차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자 미국은 두 나라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수출 이익을 보전하기 위한 우회 방안을 고안했다. 한편 미국이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자 유럽과 일본도 미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외국 기업에 대한 지원 범위를 조정했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점진적인 디커플링(탈동조화)’이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디리스킹(위험제거)과 디커플링을 구분하려 했지만, 미국과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은 자국의 기술을 사용한 첨단 반도체 장비나 인공지능(AI) 칩 등의 중국 수출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생산한 첨단 반도체에 대한 중국 수출이 금지됐고 수많은 중국 기업이 미국 상무부의 ‘기업 목록’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미·중 정상회담이 있긴 했지만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데 초점을 둔 협의로 상업적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보다는 중국과 더 많은 무역 교류를 하고 있는 만큼 미국과 중국 사이에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1월로 예정된 대선도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수의 민·형사 소송에 얽혀 있음에도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그의 두 번째 임기가 지정학적 정세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파괴적인 영향력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이미 대외 경제정책의 기조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을 선언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대선공약으로 재집권 시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같이 미국 우선주의가 확대될 경우,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라는 재앙의 단초를 제공했던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이 재현될 수도 있다.

원문의 저자는 게리 클라이드 허프바우어(Gary Clyde Hufbauer)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of International Economics, PIIE) 비상임 선임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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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C. 허프바우어/사진=PIIE

영어 원문 기사는 Slow motion decoupling adds to pressure on the US economy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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