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인증 후기 – 1.어쩌다보니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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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ii research

스위스의 사립대학 민간인증 기관인 eduQua의 심사를 받고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며 쓴 글이다.


어느덧 담당자를 알게 된 지 1년이 됐다.

온라인 대학인데 왜 On-site 심사한다고 스위스까지 오라는 거냐고 불평한지도 올 7월이면 만 1년이다.

형식상 마지막 절차였던 On-site 심사가 코로나-19로 최초 계획했던 7월부터 무려 9개월이나 지나서야 진행되느라 진통을 겪었지만,

미뤄지며 향후 1-2년간 했어야할 서류 절차들을 당겨서 진행한 덕분에, 내년, 내후년엔 Zoom으로만 미팅하면 충분하고, 굳이 스위스를 안 와도 된다니 고마울 뿐이다.

이제 몇 가지 그 쪽 절차상 작업들이 끝나고나면 공식적으로 Certificate을 받을 수 있겠지.

길고, 괴롭고, 힘든 과정이었다. 거기다 1주일에 2-3개씩의 강의를 계속 준비하느라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됐네.

 

대학을 설립하는건 원래 내 꿈이 아니었다.

어린시절 내 꿈은 천문학자, IMF 구제금융 맞던 고교시절부터는 투자은행가, 투자은행 들어간 다음 내 꿈은 내가 은행을 설립하는거였고,

은행 설립하려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대학원을 갔다가 이상하게 꼬여 Computational 쪽을 만나면서 방향을 바꿨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IT쪽에 속칭 빅데이터를 이용한 Data Science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귀국하고 IT업계 사람들이 Data Science를 통계학 하나도 모르는채로 전문가라고 우기는 꼴이 너무 역겨워 시작했던 교육을

대학으로까지 업그레이드 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대학 교육이라는게 나는 오래전에 발을 뺀 영역이니까, 대학교수하는 누군가가 열심히 논문쓰면서 제대로만 교육시켜라는,

약간 불난 집 구경가는 느낌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근데, 이건 진짜 해도해도 너무 했다 싶을만큼 심각한 교육이 시장을 장악(?)하고,

그런 인력들이 전문가 행세하는 꼴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강의를 키우고 키우다보니,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솔직한 마음을 끄집어 내 놓으면, 정신나간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1년 반 전까지만해도, 대학을 직접 설립하는 건 생각지도 않고, 다른 학교에 얹혀가는 것 정도만 생각했었다.

1달 수업에 왔다가 하나도 못 알아듣고 공황상태로 나가거나, 엄청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나가는 학생들을 보고 참 미안했거든.

처음에는 국내 대학들, 나중에는 해외 대학들에 과 하나 만들어주면 내가 그 전공 운영해주겠다, 수익 나눠먹기하자,

이런 시장이 실제로 국내외 대학들에서 알음알음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면서,

단순 학원 강의 정도로 끝낼게 아니라, 그렇게 학교 산하의 공식 학위 과정으로 교육을 공급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었고,

상당히 많이 진척도 됐었다.

 

우연한 기회로 해외 대학들에 과 하나 만들어서 운영을 직접하는 시장의 존재를 가르쳐주신 분 덕분에 눈이 뜨인이래,

그 분이 주력으로 겪으신 유럽 학교들, 특히 스위스 대학교들 속사정도 좀 알게되고, 협조 연락을 했던 학교만해도 10개가 넘는다.

그 중 몇 개는 미팅만 1-2차례 하고 끝나기도 했고, 또 몇 개는 계약 조건을 상세하게 따지다가 끝나기도 했고,

또 몇 곳은 계약서가 오가기도 했고, 계약을 맺었다가 파기한 곳도 있다.

 

그런 스위스 사립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학위 인증이 eduQua였는데, 어느 한 대학과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오가면서,

eduQua에 “대학 교육 기관 인증” 말고 각개 전공으로 “프로그램 인증”을 받는 절차 이야기가 나왔고, eduQua 인증 담당자를 처음 알게 됐다.

원칙은 졸업생이 나오고 난 다음에 사후 인증인데, 한국에서 그간 교육한 기록을 제출하고, 그 내용이 스위스로 이전된다는 조건아래,

해당 교육에 대한 사후 인증을 계약 조건이 오갔던 학교 이름으로 진행하는 걸로 합의를 봤었다.

 

그랬는데, 계약 상대 학교에서 학생이 너무 적게 온다며 대략 20명 학생의 학위 전체 수업료를 1년 라이센스 비용으로 요구하더라.

30명 남짓 학생이 들어오는 상황에 자기네가 손해를 너무 많이 본다는 생각에 아마 조건을 변경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와중에 학위 필요없으니 스위스에 낼 돈 빼고 수업만 들으면 안 되냐는 학생이 2명이나 있었다….)

나도 1년 남짓 운영을 해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앞으로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들어오는 수업료의 2/3를, 아니 중도 포기자를 감안하면 사실상 수업료 전부를 달라고 했던 그 요구가 사후적으로 납득은 된다.

그리고, 당시 그 학교가 시도하고 있던 또 다른 인증에 들어갈 직, 간접적 비용을 생각하면, 지금와서는 충분히 공감되고,

계약파기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나중에 협조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데, 매번 미안하다고 그런다.

다만, 그 시점에는, 나도 최소 20명 학생 수업료를 교수 급여, 직원 급여, 학생들 장학금, 기타 사무실 운영비로 써야할 판국이라,

내 강의료를 0원으로 처리해도 최소한 5억 이상 적자를 보는게 뻔한 시도를 해야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교육 집어치우고 거꾸로 5억을 벌어와도 시원찮을 작은 스타트업 운영하는 주제에 미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고민에 머리를 쥐어뜯던 작년 6월 하순 쯤에 학생들한테 정말 미안한데 그냥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꺼낼까 진심으로 고민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최소한 금전적 이득만 놓고보면, 그 때 그냥 포기하고 아예 국내 사업을 접고 한국을 떠났어야 한다.

나는 심하게 어리석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담당 스위스 변호사가 소개시켜준 변호사의 고객이 이미 학교 설립을 해 봤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도와줄 수 있다,

대신에 자기네에게 필요한 걸 내가 채워줄 수 있을테니 서로 윈윈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스위스의 대학 시스템이라는게 영미권이나 한국/일본 같은 국가 중심 시스템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

민간에서 대학을 만들고 운영하는게 (몇몇 주를 제외하면) 완전히 자율 규제로 돌아가는 나라라는 것,

불평등 계약(?)을 들이민 그 학교가 가진 학위 인증이 그렇게 대단한 인증이 아니라는걸 보여주더라.

실제로 경영학과 인증 시장을 보면,

  • 상위 Tier: AACSB (미국), AMBA (영국), EQUIS (유럽)
  • 하위 Tier: ACBSP (미국), IACBE (미국), BAC (영국)

인데, 하위 Tier인 이유가 학문 연구보다 직업 교육 쪽에 좀 더 방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으로,

논문 열심히 쓰는 학위 과정이 있어야 and/or 연구 중심으로 학교가 돌아가야 상위 Tier 인가를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된다.

동업자가 된 분이 내게 해줬던 조언이,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 덕분에 그 교육기관이 상위 Tier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길거라는거였다.

차라리 내가 단독으로 만들면 처음에는 좀 고생해도 결국엔 내 힘으로 상위 Tier 인가를 받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한방은, 너한테 그 교육 받은 학생들이 하위 Tier 인가 받은 학교 학위를 들고 있으면 네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겠냐는 폭탄을 맞고,

나도 미친척한다고 생각하고 이 무모한 도전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래도 학위 인가 없이 학교가 돌아가면 그건 사기 아니냐는 생각에, 아무리 내가 용감하고 도전적인 인간이어도, 그건 도저히 못 하겠다고 물러섰었는데,

스위스라는 나라가 민간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는 것 자체가 자율규제를 따르기 때문에 특별히 국내처럼 교육부 승인이 필요한 것도 없고,

실제로 타 교육 기관을 통한 대학 교육 경험을 활용해서 설립 3개월만에 eduQua인가를 받은 학교가 현 동업자의 사업 포트폴리오 중에 하나더라.

나도 한국에서 교육한 기록이 있으니까 eduQua 인증은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날 설득했다.

타 스위스 대학 산하로 프로그램 인가 작업 중 만났던 eduQua 담당자를 연락하니,

아니나다를까, COVID-19이후론 해외 교육과정과 온라인 교육과정에 대한 인가도 하고 있기 때문에,

내 교육은 이미 다른 학교에서 프로그램 인증 심사를 통해 (돈 벌이 별로 안 될 “어려운” thus “제대로 된” 교육이라는걸) 확인했기 때문에,

스위스 및 한국 법 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스위스 뿐만 아니라 한국 교육 기관도 인증 절차를 진행해 줄 수 있다고 그러더라.

(당시 스위스 변호사랑 eduQua 담당자 둘이서 한국 관광간다고 엄청 좋아했던 것 같다 ㅋㅋ)

굳이 한국은 필요없고, 스위스에서만 진행하면 된다고 그랬더니, 이미 어지간한 확인은 다 된 상태니까,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Pre-approval은 해 줄 수 있다,

마지막 절차인 On-site 인터뷰 할 수 있도록 스위스 방문 일정을 잡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왜 스위스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위의 진행 상황이 내 첫번째 답이다.

 

처음에는 7월말 or 8월초에 바로 출국하는 계획이었는데, COVID-19의 Delta, Omicron variant가 창궐하면서 일정이 몇 차례 연기가 됐고,

모든 학위 인증은 졸업 후 사후 인증이기 때문에, 스위스 학교로 받은 학생들한테만 학위주는거면 어차피 급하게 서두를 필요없고,

이번에 새로 만든 MBA/MSc 프로그램은 이번에 검증 안 하면 어차피 1년 후에 또 검증 받아야된다며, 괜히 2번 일하지 말자는 말투였다.

그냥 COVID-19으로 인한 여행제한이 풀리면 천천히 진행하자고 좀 뭔가 태무심(?)한 느낌이더라.

 

밖에서 날 공격 못해서 안달난 인간들에게 엉뚱한 소리를 듣기도 싫었고, 서둘러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한번 나가면 양국 자가격리기간 합계 1개월 이상을 호텔에서 시간 때워야하는 상황이라 괴로움을 꾹 참고 있었다.

괜히 외국에서 온 손님 만났다가 코로나 걸리면 그쪽 담당자들한테는 얼마나 큰 민폐냐…

그 와중에 1주일 강의 2개, 가끔 교수들이 펑크내서 3개씩 할려니, 무리해서 스위스 출국하면 강의 일정을 엄청나게 뒤로 미뤄야겠구나 싶어 조바심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그러다 2022년이 되니까 10년만에 규정이 새로 바뀌었다며 추가로 내라는 서류들이 더 생겼는데,

그걸 1월부터 준비하면서 계속 더 보완해라는 요구를 받으니… 이걸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다하며 밤 잠을 못자고 있으니까,

솔직히 괜히 학교 만들었다는 후회 많이^2 했었다.

 

On-site 심사 미팅 당일에 내가 느낀건, 타 학교 산하의 프로그램 인증에서 단독 교육 기관 인증으로 인증 레벨이 업그레이드 된 탓에,

담당자가 좀 시간을 끌면서 스위스 학교 이름으로 졸업생이 생기기를 바랬던게 아닌가 싶었다.

공식적으로는 무조건 졸업생이 없으면 학위 인가 자체가 안 되는데, 난 자기네 입장에서 해외에서 교육한 걸 인정해줘야하니 좀 떨떠름했다는 느낌이다.

아마 처음에 스위스 대학을 통해서 프로그램 인증 절차를 진행했던 경험이 공유되어 있지 않았으면, 졸업생이 나오는 연말까지 기다렸어야 할 것이다.

거기다 서로 쌓인 기억이 얕으니 지금보다 훨씬 더 까탈스러웠겠지.

반대로 스위스에 이런 교육이 공급되어서 시장이 좀 더 활성화 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수 많은 질문들을 하는 걸 보면서,

여긴 정말 자유주의 끝판왕 나라, 외국인이라고 차별은 해도 비지니스는 철저한 경쟁에 몰아붙이는 국민성을 갖고 있구나 싶어서 참 신기했다.

 

미팅을 끝내면서, 보통 이런 Research school 스타일로 인증받고나면 eduQua 다음 레벨로 상위 인증들 도전하던데, 뭐 준비하냐고 묻더라.

스위스 연방 정부 인가랑 미국의 온라인 대학 인가, 미국 Regional accreditation 같은 고민한다고 그랬더니,

자기네도 sub standard 기관에 인증 안 해주는데, 여러 요건이 더 빡빡한걸로 안다며 쉽지 않을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소 1기 졸업생, 보통은 2기 졸업생 이상, 3년이상 재무제표 및 운영 기록을 요구하고 심사기간도 2년씩 걸린다.

 

미팅 끝나고 가만 생각해보니, 1년 전에 연락을 나눈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이 eduQua 보다 더 상위 인증을 안 갖고 있었다.

아니면 하위 Tier의 경영학 인증 (직업학교…?) 만 몇 개 받아서 미국에서도 인증 받았다고 장사한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무시하는거 같지만, 그런 하위 Tier 인증은 되려 학교 랭킹 깎아먹을 수도 있다.)

몇몇 학교들은 나와 조건 협상 중에 다른 인증을 시도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원래 인증 기간 중에는 외부에 공개 안 하니까 비밀로 해달라고 이야길 하기도 했고,

겪어보니 인증에 1-2년씩 걸린다는게 진짜라는 걸 알게되어서, 그 분들도 얼마나 고생하면서 학교를 키우고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밖에서 우리학교 공격하는거에 쾌감 느끼는 악마들같은 진상 경험을 겪은지 오래된 학교들이라 그런지,

이런 민감한 심사 기간에는 어지간하면 외부에 학위 인증 심사 중이라는 이야기를 절대로 안 하는게 관례라는걸 알게 됐다.

학교가 조금만 유명해져도 온갖 공격을 받는건 꼭 우리만 당하는건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어쨌건 저 인증 게임에 어쩌다 뛰어들게 됐는데,

국내 대학들, 특히 공대들의 Data Science 교육 무시하다가 졸지에 해외 인증 게임을 해야되다니…

이게 내가 꿈꾸던 사업이 아닌데….

 

또 다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솔직한 마음을 끄집어 내 놓으면, 계약조건 때문에 욕 먹던 그 때로 돌아가면, 그냥 접는게 맞았던 것 같다.

나는 바보였다.

이왕에 바보 같은 짓을 했으니 물타기하며 반전을 노려야하나, 아님 늦게라도 손절하고 나와야하나?

문제는 손절하기엔 책임져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버렸다는거다……


 

학위 인증 후기 – 1.어쩌다보니 스위스ㅠㅠ

학위 인증 후기 – 2.(좀 이상하지만) 괜찮은데 스위스?

학위 인증 후기 – 3.글로벌 Accreditation 시장

학위 인증 후기 – 4.학생들과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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