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업계 구조조정 칼바람, 희망은 ‘세컨더리 펀드’

자본잠식으로 경영개선 요청받는 사례 늘어나는 VC 스타트업에서 VC로 번져가는 구조조정 바람 정부마저 직접 투자 삼가고 세컨더리 펀드만 지원

pabii research

최근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벤처캐피털(VC) 업계가 구조조정에 나섰다. VC들이 자발적으로 라이선스를 반납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인수합병 시장에도 매물이 나오고 있다. 올해는 정부의 벤처투자 지원도 줄었다. 투자 시장 위축으로 문을 닫는 VC가 늘고 있다. 전자공시(DIVA)에 따르면 2021년 ‘1년간 미투자’로 시정명령을 받은 VC는 2곳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8곳으로 늘었다. 또 자본잠식으로 6개 VC에 경영개선을 요청했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VC들까지도 ‘적자생존’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평이다.

작년부터 진행되던 칼바람…어느새 ‘성큼’

투자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작년부터 그룹 내 벤처캐피탈(VC) 조직 구조조정 및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본사로 흡수, 카카오벤처스는 CVC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카카오벤처스는 카카오 산하 VC지만 운용 펀드에 외부 출자자가 다수 포함돼 있어 일반 VC로 분류됐다. CVC로의 개편이라지만 사실상 규모를 축소한다. KB인베스트먼트도 벤처캐피탈(VC) 투자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4개로 세분돼 있던 투자조직을 2개로 통합하는 형태다. KB인베스트먼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하우스다. 더벨 순위표에 따르면 2022년말 기준 운용자산(AUM)은 2조 1,162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VC 운용자산은 1조 8,072억 원이다. 지난해 국내와 해외 투자금액은 3,528억 원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엄청난 손실 때문에 심사역을 관리직으로 돌리는 사례도 나왔다, 일종의 문책성 인사이동으로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업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투자가 없으니 자연스레 심사역들도 줄이고 있다. 폐업할 VC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팽배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깎이고 깎인 민간 투자, 정부도 반쯤 놨다.

벤처캐피털(VC) 업계의 구조조정은 스타트업 투자 시장 위축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액셀러레이터(AC), 벤처캐피털(VC) 등 스타트업에 대한 기관투자액은 총 7,681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약 25% 감소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성 위기가 벤처투자시장으로 번지면서 주요 투자자인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의 투자보수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또 정부의 정책자금 예산은 19.6%, 모태펀드 예산은 39.7% 줄었다. 자금조달 규모가 2년 연속 감소했고 긴축적 통화정책이 시행되면서 시장 유동성도 위축되고 있다. 은행들의 대출은 더욱 보수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벤처캐피털 시장의 주요 투자자인 금융기관들은 시장금리 상승에 따라 예금, 회사채 등 안전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투자하고 있다. 2022년 3분기 벤처투자는 각종 악재와 고금리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1% 감소했다. 벤처투자시장 악화로 VC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고 벤처펀드의 ‘큰손’인 모태펀드 예산마저 지난해보다 40%나 줄면서 VC 업계의 구조조정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정부마저 모태펀드 축소, 세컨더리 펀드만 늘려

인수합병(M&A) 시장에 VC가 매물로 나오는 사례도 이어진다. 최근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등을 발굴했던 국내 1세대 VC인 다올인베스트먼트가 매물로 나오며 이목을 끌었다. 모회사인 다올투자증권이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고자 매각이 결정됐는데 우리금융지주가 유력 인수후보로 꼽힌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코스닥 상장사 씨티케이가 2018년 설립한 씨티케이인베스트먼트가 미래컴퍼니에 매각된 바 있다.

직접 투자가 감소하는 와중에 세컨더리 펀드의 인기만 높아지고 있다. 유동성이 필요한 기존 투자자와 검증된 투자처를 원하는 신규 투자자 간에 세컨더리 펀드에 관한 관심이 일치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등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도 세컨더리 펀드에 몰리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세계적 흐름으로 보인다. 세컨더리 펀드는 2021년 말 기준 전체 글로벌 대체투자 펀드의 약 6%를 차지한다. 사모펀드(PEF)와 VC로서는 세컨더리 펀드가 악화하는 유동성 위기 현상을 완화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유동성 위기로 국내 인수합병(M&A) 시장과 기업공개(IPO)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2020년 이후 유동성을 바탕으로 몸집을 키운 국내 PEF와 VC들이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PEF와 VC는 일부 지분을 2차 펀드에 매각함으로써 현금을 확보하면서 펀드 운용을 계속할 수 있다. 펀드 만기가 도래하면 창업자들이 지분을 매각하거나 투자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영 리스크를 줄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기업 처지에서도 장점이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세컨더리 펀드에 투자하는 자금 규모를 1조원으로 확대해 세컨더리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중기부는 이를 위해 일반 사모펀드가 세컨더리 벤처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고 세컨더리 벤처펀드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에 대한 정부 모태펀드 투자사업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모를 통한 투자자본 회수가 어려워져 세컨더리 펀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시장 상황에 대응해 세컨더리 펀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대형 VC 한 관계자는 “이제는 모태펀드 출자사업에 선정돼도 민간에서 매칭 출자가 어려워 신규 펀드를 결성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보수적 기조인 교직원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도 운용 실적이 좋거나 딜소싱 능력이 우수한 VC에 몰릴 가능성이 크므로 실탄(자본)이 넉넉지 못한 신생 VC나 독립계 VC들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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