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푸르밀 사태로 본 원유가격연동제, 기업 의욕 떨어뜨리는 제도

원유(原乳)가격연동제 폐지 협상 난항 원유가격연동제,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혀 국내 우유 소비량은 매년 줄고 있으나 폴란드 우유 수입 물량은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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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밀’ 관련 키워드 클라우드/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지난 2021년 11월, 정부가 8년 만에 원유(原乳)가격연동제 폐지를 추진했다. 유업계의 숙원이었던 사안이나 한국낙농육우협회는 낙농가 탄압책이라며 머리띠를 둘렀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뾰족한 타협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굴지의 우유업계 회사인 푸르밀은 폐업을 선언했다.

우유의 원료인 원유 가격이 수급 구조와 상관없이 생산비와 물가에만 연동돼 자동 인상되면서 한국산 우유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판단이 유업계와 정부에 공유됐다. 낙농업계에서는 가격 보장이 안 될 경우 농장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고 반발한다. 정부가 지난해에 내놓은 타협안은 공급량을 보장해주는 쿼터제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수요를 반영해 공급량을 정하는 것이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통해 음용유인 흰 우유, 치즈 등을 만드는 가공우유의 가격을 차등할 경우 낙농가와 유업계 양쪽에게 모두 이득이 될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었다.

예상되는 농가 소득 하락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는 가공유 수요량을 현재보다 많게 정하는 방안을 제안했었다. 농가가 보유한 우유 쿼터는 204만9,000t이고, 이 물량 내에서는 리터랑 1,100원에 팔 수 있는 현재의 조건에서 음용유 186만8,000t과 가공유 30만7,000t으로 시장을 나누는 것이다. 합계 수요는 증가하지만, 가공유 가격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낙농가 소득이 합계 7,799억원에서 7,881억원으로 1.1%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낙농가는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푸르밀이 폐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업계 전문가들은 푸르밀의 오너 일가가 경영 개선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현재의 ‘원유가격연동제’가 더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지적에 입을 모은다. 원유가격연동제는 물가와 낙농가의 생산비에 따라 원유가격을 정하는 것으로 2013년 도입됐다. 이후 수요 측면을 고려하지 않아 시장 원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업계에서는 출생아 숫자 감소 등의 이유로 우유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우유 가격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싸게 구매해와 가격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도록 압박하는 구조가 장기간 이어진만큼 푸르밀을 비롯한 우유업계는 수익성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쟁사인 남양유업은 밀어내기 갑질이라는 이유로 언론을 탔다가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오너 일가는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우유업계를 떠났다. 현재 남양유업 전 오너 일가는 레스토랑업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유업 및 빙그레 등의 우유업계 주요 기업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푸르밀 인수를 타진했던 LG생활건강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인수가 무산되었던 것은 푸르밀 노조 및 경영진과의 합의 불발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우유업계에서 수익성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유업계 전반이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인 원유가격연동제를 재조정하지 않고 푸르밀과 남양유업 등의 기업 오너 일가만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낙농가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 사룟값 인상으로 수익성 악화 

낙농가들도 원유 가격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농장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맞선다. 지난 7월 한국낙농육우협회 경상남도지회는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날로 치솟는 사룟값과 계속되는 감산 정책에 경남지역 낙농가들은 생존권 갈림길에 서있다”며 “농가 부채는 지난 2년간 39.5%나 증가했고, 지난해 폐업 농가는 전년 대비 67%까지 늘었다”고 주장했다.

낙농육우협회는 최근 2년 사이 배합사료 가격이 31.5~33.4%, 조사료가격이 30.6% 폭등하고, 낙농가의 실질생산비가 1,000원 내외에 육박하면서 실제 일일 우유 생산 1톤 규모(사육 규모 60~70두) 낙농가의 15일 치 유대가 사룟값을 제하고 40만원대밖에 받지 못하는 지경까지 왔다고 토로해왔다.

지난 8월에는 낙농가들이 모여 유가공협회 앞에서 원유가격 협상 촉구를 위한 릴레이 집회에 돌입하기도 했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은 연동제 폐지 여부와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정부가 제도 개선안을 강하게 밀어붙이자 낙농가에서는 납유 거부를 불사한 극렬한 생존권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푸르밀’ 관련 키워드 네트워크/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정부가 제도 개선안에 타협 불가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데에는 2026년 FTA 발효로 국내 유제품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게 될 경우 2000년 80.4%에서 2021년 45.7%로 하락한 우유 자급률은 더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농가가 받는 국산 원유가격은 리터당 1,104원으로 해외보다 많게는 약 3배 수준의 높은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원유가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유가공협회의 주장이다.

우유 소비는 국민의 복리 증진인데 왜 기업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게 했나?

통상 전문가들은 결국 낙농가에게 적절한 탈출구를 마련해줘야 협상이 진척될 것이라며 설명했다. 현재 정부의 안은 낙농가들이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상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소비자인 국민이 복리를 누리는 사안인 만큼 낙농가에게 비용 전가를 하려는 강경책보다 유화책을 내주며 기업들이 사업을 계속 영위할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남양유업 오너 일가의 이탈과 푸르밀 폐업 사태로 낙농가에서도 매출액이 줄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팽팽한 협상이 기업들의 도전을 포기하게 만들고 시장이 감소하면서 한국 낙농가 전체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올 상반기 들어 폴란드를 비롯한 해외 멸균 우유 수입은 57%나 늘었다. 원유가격연동제로 강제 구매하는 물량 때문에 우유 재고가 매년 10만t씩 쌓이는 와중 가격 부담으로 해외 멸균 수입 우유에 대한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가장 수입 물량이 많은 폴란드의 경우 원화 환산 기준 현지 가격은 리터 당 480원이나 한국에서는 약 1,300원~1,500원이다. 그에 비해 국산 우유는 2,700원이다. 우유 업계는 2020년 기준으로 이미 100원당 5.7원씩 손해를 보는 사정이라고 불평을 내놨었다. 우유 소비량은 매년 줄고 있다. 결국 두 업계의 분쟁은 폴란드 우유 수입 물량만 늘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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