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 산하 ‘협회’가 만든 ‘닫힌 사회’

정부 허가제 시스템이 만든 ‘정부 인증 만능주의’ 민간이 더 잘하는 분야에는 민간으로 권력 이양해야 ‘협회’보다 ‘실제 역량’이 더 인정받는 시대로 이전

pabii research

요즘 ‘협회’들이 곤혹을 느끼는 모양새다. 로톡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에게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했던 변협이 공정위와 변호사징계위원회 모두에게 압박받고 있다. 공정위는 변협의 개입이 ‘일반 사업자단체’가 신규 플랫폼 사업 활동을 방해하지 말라는 정부 정책 방침에 위배된다고 발표했다. 변호사징계위원회는 300만원의 과태료에 불만을 표현한 변호사들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 사기를 막겠다는 이유로 공인중개사협회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자는 법 개정안도 국회 국토위에 이어 국토교통부에서도 난색을 표현했다. 프롭테크 기업들의 반발과 더불어, 특정 협회에 대한 법정단체화 및 의무가입 내용에 대해 헌법소원이 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3일 시행된 건축사법 일부개정법률에서 건축사들의 의무가입을 지정했다가 현재 헌법소원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정부 산하 ‘협회’는 권위의 상징인가? 억압의 상징인가?

스타트업들이 변호사 시장과 공인중개사 시장에 홍보 플랫폼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협회’들이 설 자리를 크게 잃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로톡의 승리가 공식화되고 나면 굳이 변협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나올 것”이라며 “학위와 시험 합격증만으로 충분히 변호사라는 검증이 되고, 답변 역량과 승소율 등으로 역량이 가려질 텐데, 굳이 변협에 가입비를 내야 하는지 회의적인 것이 최근 변호사들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MZ세대가 사회의 중심으로 서서히 대두되면서 그간 권위의 상징이었던 ‘협회’가 억압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협회로 등록되는 일반적인 절차인 재단·사단법인은 서울시 기준 1년에 약 250~300건 정도 된다. 2022년에 243건, 2021년에 281건, 2020년에 257건, 2019년에는 306건이었다. 협회 설립을 했던 적이 있는 한 관계자는 “정부 프로젝트 하려고 만들”었다며 “비영리법인이지만 수익 모델이 있어야 하므로 결국에는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연간 수천만원의 지원금 지원”에 초점을 맞춰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어 설령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더라도 다른 수익원을 위해 협회 가입비 등을 받고, 정부를 대신해서 인증, 조직 운영 등을 한다는 이유로 추가적인 정부 지원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즉 스타트업이 홍보 플랫폼이라는 무기로 협회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전까지 협회가 돌아갔던 주요 수익원이 세금을 통한 각종 지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 권력에서 시장 권력으로의 이양

최근 플랫폼 중심 스타트업의 성장을 놓고 정부가 지정한 권력에서, 시장 경쟁에서 승리한 권력으로 권력이 이전되고 있는 것이라는 평도 나온다.

과거 정부 지원 프로젝트 위주로 운영되는 협회에서 짧은 직장 생활 후 사기업으로 이직한 한 관계자는 “사실상 고인물”이었다며 “행시 출신 고위직 공무원들이 내놓는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정부출연연구소(정출연)와 경쟁하는 것”이 협회에서 진행하는 연구였다고 밝혔다. 이어 “민간 기업의 연구 프로젝트들은 수익성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탓에 연구 보고서를 내는 게 아니라 사내 발표 자료로 활용되고 끝나는 경우도 많을 만큼 틀을 갖춘 보고서에 대한 압박이 훨씬 덜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사기업 연구소에서 인턴 생활을 경험한 후 스타트업에 취직한 한 경력자는 “협회들이 어떤 안을 가져올지 예상해서 반박하는 답변을 내놓는 것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며 “연구소가 돌아가는 구조를 경험한 탓에 어떤 방식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질지 알 수 있어서 답변을 작성하기 쉽다”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어 현장에서 체감하는 관계자들은 대부분 ‘협회가 가진 권력’이 사라져야 영업망을 확대할 수 있다며, 플랫폼 스타트업이 최근 들어 논란이 되는 디지털 플랫폼 독점으로 인한 피해만 막을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더 효율적인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정부 기관 인증에 의존하는 국민 정서도 바뀌어야

한 향수 업계 관계자는 민간 자격증으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단법인을 설립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 목적보다 홍보 목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지만, 대부분의 소비자가 ‘정부 인증’이 없다는 이유로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불평을 여러 차례 했던 탓에 올해 들어 내부 인력을 따로 배정했다는 것이다.

유럽 몇 개국에만 있는 향수 전문 업체들의 경우, 지원자가 소수인 탓에 대학과 연계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기본적인 논리력을 갖춘 인재를 뽑아 내부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내부 훈련으로만 진행했으나 ‘학위’, ‘인증’ 등의 단어를 찾는 학생들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들어 ‘협회’가 스타트업의 사업모델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향수 제조업 분야에서도 같은 흐름이 자리잡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부가 정부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는 없으나, 허가제로 운영되는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등록제, 나아가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정부가 인정해야 국내 스타트업들이 ‘한국은 규제 천국인 나라’라는 불평을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정부 인증만 철석같이 믿고 있는 민간의 시민의식도 함께 성장해야 한국이 ‘규제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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