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타트업 플랫폼 vs 정부 산하 ‘협회’

리걸테크, 프롭테크 등의 스타트업 서비스 막는 ‘협회’들 스타트업 응원에 정부도 벤처들 쪽에 손 들어주는 모양새 정부 규제 아래 이익 누려온 ‘협회’ 모델의 퇴장

pabii research

법률플랫폼인 ‘로톡’ 가입 변호사 9명에게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가 최대 300만원의 벌금을 집행한 데 이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 단체화하고 공인중개사들이 의무 가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특히 공인중개사법의 경우 직방, 다방 등의 국내 프롭테크 스타트업의 영업을 사실상 막는 규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 ‘직방금지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두 이익단체 모두 스타트업들이 업계의 기존 서비스 방식에 균열을 일으키는 데 대한 불만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로톡 운영사인 로앤컴퍼니는 변협의 움직임에 반발해 공정위에 신고한 상태고 직방금지법은 국토교통부에서도 난색을 표현하고 있다.

홍보할 길 없는 변호사들에게 길 열어준 플랫폼

변협은 지난 2021년 5월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 변호사 윤리장전을 개정했다. 핵심 골자는 변협 소속 변호사들이 로톡을 비롯한 법률서비스 플랫폼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징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로앤컴퍼니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의 금지행위이자, 표시광고법상 사업자단체의 표시 및 광고 제한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다음 달인 6월에 즉각 공정위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변협의 법 위반 의혹을 조사한 뒤 같은 해 11월과 12월에 과징금 및 시정명령 등의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사실상 공소장에 해당하는 보고서를 받았음에도 시정이 되지 않자 로앤컴퍼니는 줄기차게 불이행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고 결국 공정위는 지난 2022년 10월에 전원회의를 통해 변협 제재 여부와 처벌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변협은 심의를 차일피일 미뤘고 11월로 연기됐던 전원회의도 지난 2월 15일에나 열리게 됐다. 그 사이 변협은 로톡 이용 변호사 9명에게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징계를 내렸다. 지난 15일 전원회의 결과가 아직 공표되지는 않았으나 변협을 일반 사업자단체로 규정하고 일반 사업자단체가 신규 플랫폼의 사업 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감시하겠다던 공정위의 신년 발표대로 처벌 수위가 결정되리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과태료를 부과받은 변호사들도 이의신청을 진행 중으로, 변호사징계위원회의 결정도 공정위의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시간을 끌어왔으나 로톡과 변협의 싸움은 로톡이 최종 승자가 되는 모양새다.

직방금지법, 소비자 보호 vs 공인중개사 지원

직방금지법이라는 별명이 붙은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의 기존 목표는 전세 사기 방지였다. 무등록 불법 중개 행위를 막아 국민 재산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전세 사기가 급증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하자, 공인중개사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 법안의 요지다. 그러나 법안대로 진행될 경우 프롭테크 업계가 그간 운영해온 온라인 플랫폼들은 부동산 중개 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 프롭테크 분야 사업체에 투자를 진행한 바 있는 한 벤처투자자는 “직방금지법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가 타다 사태처럼 플랫폼을 차단하는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국토위 수석전문위원실은 16일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중개업에서의 자정작용을 제도화하려는 것으로 그 취지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특정 협회의 법정 단체화는 자유로운 단체 설립·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개업 영위의 조건으로서 해당 협회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방식이 개정안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인지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회 국토위에 이어 국토부에서도 개정안에 대한 입법 의견으로 “대한건축사협회의 법정 단체화 및 의무가입 내용을 담고 있는 ‘건축사법 일부개정법률(지난해 8월 3일 시행)’과 관련해 헌법소원이 제기돼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일부 프롭테크 업계의 반발이 있으며 법정 단체화로 인해 중개 서비스가 획일화돼 신산업 창출 및 국민 편익을 저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거쳐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방형 시스템의 스타트업과 폐쇄형 시스템의 ‘협회’

국내에서 ‘협회’라는 명칭을 쓰는 재단법인 및 사단법인을 직접 만들어 본 한 관계자는 “주무관청이 어디인지 결정하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리고 최대한 못 만들도록 방해하려는 느낌이 강했다”고 불만을 표현했다. 이어 “주변에서도 협회 혹은 학회 설립을 위해 사단법인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긴 싸움’이 될 것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며 정부 조직에서 지원하는 협회 시스템에 큰 진입장벽이 있음을 증언하기도 했다.

재단 및 사단법인 설립 지원 경력이 10년이 넘는다는 한 행정사는 “이렇게 만들어진 협회는 다수의 인력을 모아 이익집단으로 작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탓에 담당을 맡지 않으려는 것이 통상적인 공무원 성향”이라고 답했다. 또 “설립을 하도록 해 주겠다고 공무원을 설득하는데 이미 지치고, 실제로 도전하는 경우 중 설립까지 가는 경우는 경험상 10%가 되지 않는다”는 답변도 내놨다.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어진 협회는 인력 및 조적 관리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집행하는 기관으로, 나아가 광고 메시지 자체를 규율하는 권위 집단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로톡, 직방 등의 스타트업은 기존의 변호사, 공인중개사 협회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셈이다. 스타트업의 플랫폼이 광고 채널로 완전히 안착하고 나면 사실상 협회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고생 끝에 만들어 놓은 협회가 수익 모델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지 않을 협회 관계자는 없을 것이다. 또한 수백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만든 플랫폼의 영업을 방해하는 데 불만이 없을 기업가와 투자자도 없다. 두 집단 간의 싸움은 필연이다. 현재 리걸테크, 프롭테크 시장의 반발로 인해 협회들의 불만은 불만으로만 끝나는 모양새다. 스타트업이 혁신인 이유는 이렇게 ‘고인물’이었던 시장에 균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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