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콘텐츠] “불공정이 관습?” 故 이우영 작가가 남긴 과제

故 이우영 작가와 대행사간 저작권 침해 소송 생전 이 작가 “팔다리 잘린 기분, 참담해” 업계 만연한 불공정 계약, 상생 생각할 때

pabii research
사진=대교 미디어콘텐츠사업본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지난 11일 세상을 등졌다. 더 안타깝고 덜 안타까운 이별이 어디 있겠나 싶지만, 故 이우영 작가와의 이별은 유족들은 물론 국내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유독 깊은 탄식과 슬픔을 불러왔다. 이 작가가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을 두고 유통 대행사 측과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는 것을 누구보다 뜨겁게 응원한 이들이기 때문.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소년 챔프에 연재된 「검정고무신」은 1960년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 그리고 그 가족들이 사는 모습을 코믹한 모습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은 2006년 새로운 연재처를 찾는 과정에서 한 대행사와 함께 저작권 등록을 진행했다. 당시 저작권 지분은 이 작가와 스토리를 담당한 도래미 작가가 각각 27%, 대행사 대표는 36%로 책정됐다. 이후 2011년 대행사 대표는 도래미 작가의 저작권 지분 27%까지 매입해 무려 53%의 권리를 확보했다.

대행사 대표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권리만을 쥐고 있었던 이 작가는 2019년 자신이 그린 캐릭터 ‘기영이’를 다른 작품에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피소당했다. “손발이 잘린 느낌”이라며 참담한 심정을 전한 이 작가가 2015년 이후 영상화된 <검정고무신> 등에서 받은 돈은 수익의 약 0.5%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가의 그림에서 비롯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추억의 검정고무신>과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 집>이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주요 OTT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반면, 그는 대행사와의 지난한 싸움에 지쳐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이 작가가 오랜 싸움에서 깊은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이 죽어야 이 문제가 이슈가 될까?’라는 말까지 했다”며 저작권을 둘러싼 불공정 계약이 이 작가의 문제만이 아님을 시사했다.

사진=KBS

콘텐츠 업계에는 창작자에 불리한 저작권 계약이 관행처럼 퍼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업계에 첫발을 들인 새내기 창작자들은 대행사의 “작품의 가치를 극대화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불공정한 계약서에 서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행사가 창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향후 해당 작품을 통해 얻는 수익을 모두 차지하는 이른바 ‘매절 계약’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매절 계약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전체 저작권을 모두 넘기는 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창작자마다 다른 계약 내용, 신인일수록 불리

판타지 동화 「구름빵」은 매절 계약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해당 작품을 창작한 백희나 작가는 2004년 1,850만원의 원고료를 받고 향후 모든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원작을 토대로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이 탄생했고 이는 4,000억원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백 작가가 원고료 이외에 받은 보상은 전무하다. 그는 저작권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불사했지만, 법원은 출판사의 손을 들어줬다.

2017년 출간 후 국내에서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것을 비롯해 세계 20개국이 넘는 나라에 번역 출간된 소설 「아몬드」는 원작자와의 협의 없이 연극화를 추진하다가 ‘절판’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작품을 쓴 손원평 작가는 “출판계와 공연계가 ‘저작권’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허약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기회조차 ‘손 작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현실이다.

손 작가는 「아몬드」 외에도 「타인의 집」,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 등 여러 베스트 셀러를 집필했으며, 문학계는 물론 영화계에서도 굵직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똥파리>, <좋은 이웃>, <침입자> 등 다수의 영화에서 연출과 극본, 번역 등 핵심 인물로 활약한 이른바 ‘힘 있는’ 작가다. 이런 손 작가에게까지 저작권 침해의 위협이 가해졌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비례 보상 택한 유럽, 한국은 “5월 이후 논의”

유럽연합에서는 창작자들의 몫으로 ‘비례적 보상’을 채택했다. 글로벌 최대 OTT 넷플릭스 역시 2020년 독일의 창작자에게 천만 시청완료가구(Completer)당 일정 수익을 비례적인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국내에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안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안 등 총 5건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들 개정안은 창작자가 제작사 및 유통사 등 타인에게 지식재산권(IP)을 양도한 경우에도 콘텐츠를 최종 제공하는 OTT, 극장, 방송사 등을 대상으로 보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을 골자로 하고 있다. 상대적 약자인 창작자의 협상력과 정보 부족이 불공정한 계약으로 이어져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는 넷플릭스와 독일 창작자들 사이의 합의문을 인용해 “공정한 보상금 보장은 예술가 및 창작 집단과 유통 플랫폼의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의 초석이다. K-콘텐츠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업계 내에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보장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가장 뜨거운 스토리의 산실로 꼽히는 웹툰 업계는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서 응답 작가의 21%가 연간 수입이 2,000만원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데뷔 3년 미만의 작가들 가운데는 1년에 1,000만원도 벌지 못한다는 응답자가 11.8%에 달했다. ‘2차 저작권, 해외 판권 등 제작사에 유리한 계약’, ‘매출 정산 내역 미제공’ 등 불공정 계약을 경험한 응답자도 각각 23.2%, 17.5%에 달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왕서방이 돈을 쓸어 담았다. 구경꾼들은 곰의 재주에 박수를 치며 돈을 지불하면서도 이 돈이 곰에게 얼마나 배분될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든 콘텐츠에서 스토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단순한 수익을 떠나 극심한 정신적 노동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하는 창작자들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예전부터 그래왔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양보와 손해만으로 이어져 온 관행은 전통이 아니라 악습에 불과하기 때문. 사람들을 웃고 울릴 매혹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계약서에 ‘갑-을’대신 ‘상-생’을 써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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