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4 자율주행차 시대 오는데, ‘총체적 난국’ 못 벗어난 韓 ②

韓 앞서가는 獨·美·日, 우리나라 위상은 어디까지 추락하나 법적·기술적 역량 부족한 韓, 레벨 3조차 준비 못 해 해외 입법례 참조해 따라야 할 듯, “어쩔 수 없다”

pabii research

최근 글로벌 사회에서 모빌리티 혁신의 상징으로 언급되고 있는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산업적 투자와 정책적 지원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교통서비스 변화의 동력이자 차세대 자동차 산업의 핵심 기술로서, 우리나라도 국정과제에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를 포함하는 등 관련 기술 개발 및 투자, 입법적 노력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에 대해선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 정부가 뭉그적대는 사이 해외에선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법 제도 구축에서도 앞서가는 美, ‘차원’이 다르다

독일·미국 등 자율주행 선진국들은 법 제도 구축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 채 앞서나가고 있다. 미국은 지난 수년 동안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법률의 재·개정을 넘어 자율주행 관련 연방 정부의 계획과 입장을 시사하는 정책보고서를 발표해 자율주행자동차의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는 형태의 성과를 내왔다. 또한 기술적・실무적 측면에 집중하던 과거의 논점에서 벗어나 자율주행 관련 주체 간 협력과 정보 공유 필요성을 제시하고 효율적 개발을 위한 범부처(법무부・농업부・국방부・에너지부 등)의 참여와 자율주행기술의 폭넓은 활용을 강조하는 등 자율주행자동차를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미래를 혁신할 수 있는 기술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실히 드러냈다.

특히 미국은 기술 규제·교통안전·기술 혁신 등을 아우르는 세 가지 정책 방향성과 10가지 기술 원칙을 제시하며 더욱 진보한 자율주행자동차 체계화를 이뤄냈다. 미국 연방 정부는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해 △사용자와 커뮤니티의 보호(안전 및 사이버 안전 우선시) △효율적 시장의 촉진(기술 중립성 유지) △주체별 역할의 조화 촉진(일관된 표준과 정책 홍보)의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사용자의 보호’라는 큰 틀 안에서 시장을 육성하고 다양한 주체의 조화를 이뤄내겠다는 미연방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미연방 정부는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안전기준 정립을 통해 자국의 법적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정립하기도 했다. 미연방 정부는 지난 2016년 ‘자율주행자동차를 위한 안전 기준 가이드라인(Vehicle Performance Guidance)’을 발표하며 안전기준의 추상적인 원칙을 최초로 제시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점차 발전한 끝에 2022년 ‘자발적 안전 자체 평가(VSSA; Voluntary Safety Self Assessment)’로 제도화돼 미국에서 실증 운행하는 자율주행자동차에 적용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의 경우 자율주행자동차의 시험운행 단계를 넘어 ‘상용운행’을 실시하기 위한 법령을 마련하기도 했다. 해당 규정에 따른 상용운행의 정의는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자의 고용인 등이 아닌 일반인이 일반도로로 운행하거나, 판매・대여・교통 서비스 등 상업적 목적으로 시험운행 이외의 운행’이다. 상용운행을 위한 보증서, 자가보험 등 사고에 따른 손해배상에 필요한 재무적 요건 또한 함께 규정됐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르다.

獨, 자율주행차 관련 권한·책임 구체화했다

독일의 경우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StVG’ 개정을 바탕으로 2021년 5월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에 필요한 법적 체계 마련에 나섰다. 당시 독일 정부는 ‘자율주행법(Gesetz zum autonomen Fahren)’을 마련해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레벨 4 자율주행)에 필요한 규정을 신설 및 개정하는 동시에 ‘의무보험법(Pflichtversicherungsgesetz)’에 자율주행자동차 교통사고에 따른 손해배상 관련 사항을 추가했다.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자동차가 일반 도로에서 운행될 수 있는 본격적인 법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독일의 ‘StVG’ 개정이 특히 주목받은 건 독일이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과 관련해 여러 주체의 권한과 책임을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자율주행자동차 보유자에 대한 책임으로 △자율주행자동차의 관리나 기술 감독자의 역할 수행을 제대로 확인해야 함 △속도와 관계 없이 보유자의 사고 책임이 인정될 수 있음 △자율주행 중 저장된 데이터를 관련 기관에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음 등을 제시했다.

다만 독일의 ‘StVG’는 자율주행의 도로 운행 요건 등에 대한 법적 근거가 될 뿐 자율주행차가 일반 도로에서 운행하기 위한 기술적 기준이나 운행 허가의 세부 요건 등에 대한 근거는 될 수 없었다. 이에 독일은 ‘AFGVBV’를 새롭게 제정, ‘StVG’ 제1d조~제1h조의 규정을 구체화해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 허가 기준이나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자가 자율주행 운행 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요건을 규정했다.

정부 부처별 체계성 갖춘 日, 차세대 자동차 시장 선점할지도

일본 또한 차세대 자동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만큼 자율주행자동차 시대를 위한 법적·기술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자동차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 개발과 정부 부처가 주도하는 실증사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정부는 경제산업성·국토교통성 및 경찰청이 중심이 되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각 정부 부처들은 각자 나름의 역할을 맡아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에 체계성을 덧붙여 가고 있다. 우선 국토교통성은 ‘자동운전 전략본부(自動運転戦略本部)’를 전담 부서로 조직해 지난 2016년부터 교통정책 차원에서 자율주행 관련 정책・입법의 기초 작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지난 2017년부터 ‘자율주행 비즈니스 검토회(自動走行ビジネス検討会報告書)’를 조직해 연차별 자율주행차 상용화 전략을 개발・추진해 왔으며, 도로교통정책을 주도하는 경찰청은 2014년부터 지능형 교통체계(ITS)의 도입 방안을 제시해 왔던 ‘관민 ITS 구상・로드맵(官民ITS構想・ロードマップ)’에 자율주행자동차의 도입 및 일반도로에서의 상용화를 위한 계획을 추가하며 자율주행 정책의 한 축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2022년 3월엔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 ‘道路交通法’ 개정안을 제출해 처리했다. 이날 ‘道路交通法’ 개정에선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을 의미하는 ‘특정자동운행(特定自動運行)’이라는 용어가 신설됐다. 과거 레벨 3 자율주행을 ‘자동운행(自動運行)’으로 정의한 기존 개정 사례를 바탕으로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을 ‘특정자동운행(特定自動運行)’이라는 용어로 정의한 것인데, 이 정의에 따르면 특정자동운행은 도로에서 자동운행장치의 사용조건 안에서 이 장치를 갖춘 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을 말하되 자동차 운행 중 도로・교통 및 자동차의 상황에 따라 차내 장치를 조작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제외된다. 인간 운전자의 조작 없이 운행될 수 있는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을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한 것이다.

자동운행장치를 갖춘 자동차가 정비 불량이거나 해당 장치의 사용조건을 충족하지 않을 때 즉시 자동적으로 안전한 방법으로 정지시킬 수 있어야 하는 등의 안전기준도 명시하고 있다. 당초 개정 전 법률에선 정상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운전자가 운전을 책임지도록 했으나 개정법은 인간이 아닌 특정자동운행장치라는 시스템이 차량을 통제하도록 법을 체계화했다. 명백히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를 염두에 둔 법 개정이다.

‘총체적 난국’, 믿고 싶지 않은 현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를 위한 체계적인 법 개정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우선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때문에 보험사들도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된 시장에 뛰어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특히 심각한 점은 레벨 3 자율주행자동차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보험사 차원에서 자율주행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 쉽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보험사의 경우 위험 상품을 자체 평가할 역량이 낮다 보니 국내에서 해외와 다른 정책을 시행할 경우 보험사들의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부담의 증가는 곧 시장 형성에 장애가 된다. 이외에도 차량 수리 등 비용 지불 관련 법적 체제 미비, 자율주행 자체 기술력 부족 등도 발목을 잡는다. 입법을 차치하더라도 애초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사업 역량 자체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단 해외의 입법례를 참조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력 부족·제도 미비 등이 종합된 ‘총체적 난국’, 이것이 우리나라가 서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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