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신 통해 성장 꿈꾸지만, 여전히 너무 느린 한국

취임 1주년 경제성장 분석, 규제혁신으로 민간기업주도 경제살리기 시도 작년, 규제샌드박스 통한 228건의 신기술 도입했지만 “부가조건 엄격해 사업화 힘들어”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핀테크 기업 간 경쟁, 정부가 추구할 진짜 규제혁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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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무조정실

정부가 취임 1주년 경제 성과로 자유·혁신·공정·연대 4대 기조하에 규제 시스템을 혁신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립했으며, 미래 전략산업에 대한 초격차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 관계자들은 규제샌드박스, 글로벌 혁신 특구 조성 방안 등을 통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위를 점하기에는 여전히 규제 혁파에 보수적이며 속도도 느리다고 지적한다.

尹 정부의 규제혁신,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윤석열 정부는 당초 6대 국정 목표 중 두 번째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로 설정하고 경제의 중심을 기업과 국민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지난 8일 기획재정부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 경제 분야 주요 성과’ 보고서를 통해 출범 이후 총 1,027개의 규제 문턱을 낮추고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입지 규제 완화 대표 사례로는 신성장산업(차전지, 수소)이 들어설 수 있게 된 전남 광양제철소를 언급했다.

대통령실 역시 이번 정부에서 ‘규제혁신이 곧 국가 발전’이라는 인식에 따라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으며, 민간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입지·환경 등 핵심 규제의 신속한 혁파를 위해 대통령·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규제혁신전략 회의를 신설하는 등 노력을 펼쳤다고 강조했다. 대·중소기업 법인세 인하, 반도체 등 국가전략 기술 세제 혜택 대폭 확대, 임시투자세액공제 도입, 해외 자회사 배당금 익금불산입 등이 대표적인 성과라고도 덧붙였다.

나아가 규제샌드박스 제도개선 역시 다각도로 추진해 신산업 발전도 앞당겼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2022년 7월부터 과제 신속 심의를 위해 90일의 심의 기한을 신설하고, 안전성 검증 후 60일 이내의 규제법령 개정계획 수립을 의무화했다. 이에 지난해 228건의 규제샌드박스 과제를 승인했으며, 규제비용감축제와 규제일몰제를 도입해 과도한 규제가 신설되는 것을 선제적으로 막았다.

중소기업벤처부 역시 지난 8일 ‘글로벌 혁신 특구 조성 방안’을 발표하며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규제 지체를 극복하고 혁신 스타트업의 신기술 개발을 촉진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중기부는 “혁신이 최근 이어지고 있는 수출 부진과 원화 약세,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으로 인한 미국발 은행 위기 등 삼중고의 대외여건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이를 위한 고강도 규제 타파가 선행되어야 하므로 해당 방안을 발표했다”고 부연했다.

규제샌드박스, 장기적으로도 안전한 모래사장일까, 사장(死藏)시킬 모래늪일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진행 중인 규제샌드박스는 사업자가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일정 조건(기간·장소·규모 제한)하에서 시장에 우선 출시해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의 전부나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특히 실증 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규제를 개선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에 의하면 다른 국가와 다르게 우리나라의 규제샌드박스는 기업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실증 특례 방식을 비롯해 즉시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임시 허가’, 규제 여부를 부처가 확인하여 기업에 알려주는 ‘신속 확인’까지 추가했다. 또 금융 분야는 물론 실물경제 분야(ICT, 산업 등)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정책연구실장은 규제샌드박스로 인해 시장 출시가 제한되었던 다수의 제품과 서비스 등이 특례를 통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고, 실제로 2022년 12월 기준 10조5,000억원의 이상의 투자유치, 4,000억원 이상의 매출 중가, 1만1,000여 명의 일자리 창출 등의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관계자들은 규제샌드박스의 성공 여부는 관련 부처와의 협력이 잘 이뤄질 때 가능하며, 정부의 초점 자체가 양적 성과가 아닌 질적 성과에 맞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ICT 규제샌드박스를 이용하고 있는 ‘쓰리알코리아’는 규제샌드박스 신청 후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 등으로 인해 사업 초기 제동이 걸려 승인까지 3년이나 소요된 바 있다.

실증 특례의 경우 법으로 명시된 부분만 허용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으로 진행되는 탓에 현장 규제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임시 허가에만 그칠 뿐, 실제 허가는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원 연구실장 역시 기업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점은 규제 특례를 위한 부가 조건의 합리화라며 금지된 서비스의 예외 허용을 위해 마련된 부가 조건이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없을 만큼 제한적이거나 너무 엄격해 실 사업을 시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유니콘기업 보유 순위’에서 대한민국 유니콘 수는 11개로, 이는 개발도상국인 브라질보다도 적은 수치다. 정부는 신산업 규제를 풀고 혁신을 이루겠다고 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규제를 푸는 속도가 기술 변화의 속도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전문가 50명에게 정부의 규제혁신 정책을 물은 설문조사에서도 ‘체감하기 어렵다’(45.5%), ‘속도가 더디다’(27.3%)는 평가가 많았다.

애플도 마찬가지, 국내외 기업 균형 조절 위해 규제혁신은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청년층으로부터 애플은 최근 한국에서 현대카드와 손잡고 애플페이를 도입했다. 애플페이는 이미 출시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왔으며, 삼성페이 등을 이용하지 못했던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희망으로 여겨져 간편결제나 삼성페이로 뒤덮인 대한민국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성공을 확신하는 예측이 우세했다. 아울러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애플페이의 성공적 안착 이후 애플의 다음 목표는 한국 내 ‘애플 금융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국의 규제는 만만치 않다. 애플통장이나 애플페이 레이터와 같은 서비스를 한국에 도입하려면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네이버페이 머니 하나통장’이나 ‘네이버페이 후불’과 같은 국내 서비스처럼 금융 서비스를 직접 제공할 수 있다. 애플캐시의 경우 선불충전금을 통한 재화·용역 구매 등 간편결제서비스 구조와 유사해 국내 ‘전자금융거래법’상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 등록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애플의 한국 금융 산업 진출로 인해 국내 핀테크 시장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서비스 품질이 올라가고, 규제 변화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로 애플과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국내 금융업 진출로 인해 빅테크 관련 규제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미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등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기존 금융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금융업에 우회 진출하는 만큼 금융 안정 위험에 대한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규제를 모두 풀어버리는 것이 기업의 성장을 독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민간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라면 규제혁신 성과에 대한 발표나 기업에 선사하는 혁신이 아닌, 기업에서 요구하는 실용적인 규제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행보가 기업들에게 한순간 피어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잘 타는 장작처럼 여겨질 수 있도록 진짜 ‘혁신’적인 시도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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