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기 좋은 도시 서울? 낮은 ‘글로벌 개방성’에 짐 싸기 바쁜 해외 창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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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글로벌 개방성 10점 만점에 6점, 도쿄보다 낮아
"창업 생태계 글로벌화" 외친 정부, 제도 개선은 '깜깜무소식'
기술창업비자 받고도 본국 향하는 외국인 창업자 속출
서효주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가 11월 9일 컴업2023 정책 제안 발표회에서 보고서를 발제하고 있다/사진=아산나눔재단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글로벌 개방성을 확대하고 부작용은 제도적으로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부 유출, 일자리 감소 등 여러 부작용을 우려해 폐쇄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고수하다 보면 해외 진출 기회도 그만큼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서효주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9일 개최된 스타트업 행사 컴업(COMEUP)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의 발제자로 나서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비중은 약 7%로, 싱가포르나 이스라엘 등 선도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비효율적이고 불분명한 절차·규제 뜯어고쳐야”

글로벌 창업 생태계 평가기관인 스타트업지놈(Startup Genome)에 따르면 서울의 창업 생태계는 전 세계 도시 중 12위를 기록했다. 주요 지표를 살펴보면 ‘글로벌 개방성’ 항목에서 10점 만점에 6점을 받았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9점), 영국 런던(10점), 이스라엘 텔아비브(10점) 싱가포르(10점) 등 선도국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심지어 서울보다 전반적인 창업 생태계 순위가 낮은 일본 도쿄(7점), 독일 베를린(9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10점)보다도 낮은 점수다.

이날 서 파트너는 “해외 진출에 성공한 국내 스타트업은 2022년 기준 300여 개로, 싱가포르나 이스라엘과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이라고 강조하며 “싱가포르나 이스라엘은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 진출을 전제로 사업을 시작하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아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글로벌 개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절차 및 규제 완화 △지원 프로그램 구성 및 퀄리티 제고 △인식 개선 및 인프라 구축 등을 제시했다.

먼저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법인 설립, 창업 비자, 취업 비자 등 비효율적이고 불분명한 절차와 규제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서 파트너는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법인을 설립할 때 방문해야 하는 기관은 10곳이 넘고 기간도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2~3주는 더 걸린다”고 말하며 “외국인의 국내 창업 관련해서는 최소 자본금 등 여러 요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수립하는 대신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학력 조건 등 불필요한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고 사업비 지출액 등 비용 및 투자 항목을 중심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서 파트너는 해외자본 유입과 해외투자, 해외 진출 등에 대한 규제 완화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으로는 국내외 VC에 대한 최소 자본금이나 전문 인력 요건을 장기적으로는 완화하되, 관리와 감독을 강화해 부작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2017년 이같은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한 싱가포르를 언급하며 “6년 동안 싱가포르에서 관련 제도를 악용하는 등 큰 문제가 발생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질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서 파트너는 “여러 스타트업이 중소벤처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코트라 등 여러 기관 및 부처에서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데다 원론적인 내용의 멘토링에 그친다고 평가했다”며 “구체적인 국가나 산업에 맞춰 시장 진출 전략을 모색하는 전문성을 제고하고, 프로그램 수를 줄이는 대신 하나하나가 내실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패널 토론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한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역시 “스타트업 생태계가 전 세계로 연결돼 성장하면서 글로벌 개방성은 스타트업 경쟁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며 “정부가 이번 정책 제안을 적극 활용해 제도와 인식 개선에 힘써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8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청사진만 있고 실천은 없는 ‘창업 대국 도약’

정부도 이같은 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스타트업코리아 종합대책’의 핵심을 창업 생태계 글로벌화에 뒀다. 지난 8월 30일 발표된 해당 종합대책에는 ‘세계 3대 창업대국 도약’이라는 목표 아래 △한인 창업 해외법인 지원 근거 마련 △글로벌 팁스 트랙 신설 △글로벌 펀드 지속 조성 △외국인 창업 및 취업 비자제도 개편 △글로벌 창업허브 구축 △가상 창업 생태계 조성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이를 통해 현재 1개에 불과한 글로벌 100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을 오는 2027년 5개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이영 중기부 장관은 해당 종합대책을 두고 “그동안의 산업 벤처 정책 틀에서 크게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은 윤석열 정부의 중장기 정책 방향”이라고 소개하며 “대한민국을 아시아 넘버원, 세계 3대 글로벌 창업 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어 장벽→인력난, 외국인에게 더 혹독한 창업 생태계

하지만 정부가 구체적 개선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사이 ‘코리안 드림’을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창업가 중 상당수는 국내 창업 생태계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실정이다. 실제로 법무부와 중기부에 따르면 우수 기술을 가진 외국인의 국내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3년 도입한 기술창업비자(D-8-4) 제도는 해마다 40여 건의 발급 건수에 그치는 것도 모자라 이들 중 절반가량이 제도적·문화적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국을 등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2년 11월 기준 유효한 기술창업비자는 총 111건에 그쳤다.

학사 이상 학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 국내 법인을 설립했거나 설립 절차를 진행 중일 것, 정부가 운영하는 오아시스(OASIS·창업이민종합지원) 프로그램에서 80점 이상을 획득할 것 등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갖춰 기술창업비자를 획득했음에도 한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은 “한국의 창업 관련 제도적 장벽과 폐쇄적 문화가 사업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같은 한국 창업 생태계의 낮은 글로벌 개방성은 외국인 스타트업 커뮤니티 서울스타트업스의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2021년 커뮤니티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해당 조사에서는 한국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로 △언어장벽 △투자유치 기회 부족 △인력 충원 어려움 △세금 △비자 문제 등이 꼽혔다.

이에 한국도 주요 국가들처럼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고 전산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창업진흥원은 ‘국내 글로벌 창업 생태계 활성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국내 시스템은 행정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외국인의 경우 절차 인지와 실행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하며 “시공간 제약 없이 비자 발급 신청 등을 할 수 있도록 온라인 표준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민자 종합지원시스템 전담 조직과 자격요건 심사 및 제도 개선을 담당하는 운영협의 체계를 구축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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