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망 사용료’ 분쟁, 트래픽 대량 발생 원인 넷플릭스 아닌 ‘구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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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트래픽 28.6% 발생시키는 구글, 정작 국내 망 사용료 논쟁에서는 발 뺐다
"트래픽 소량인 국내 CP도 내는데, 빅테크가 왜 안 내나" 일각서는 역차별 호소
공격적으로 망 사용료 체제 개편하는 EU, 우리나라 담론은 여전히 '지지부진'

해외 사업자 중 유일하게 망 이용료를 납부하지 않고 있는 구글이 국내 통신망 트래픽 비중 1위라는 통계가 발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구글이 국내 통신망에서 차지하는 트래픽 비중은 28.6%에 달했다. 2위 넷플릭스(5.5%), 3위 메타(페이스북·4.3%)의 5배가 넘는 수준이다.

구글은 인기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로 상당한 트래픽을 발생시키고 있지만, ‘넷플릭스-SK 분쟁’으로 대표되는 국내 망 사용료 논의에서는 사실상 제외돼 있었다. 이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넷플릭스가 아닌 구글이 국내 망 사용료 논의의 중심축에 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망 사용료 전쟁, EU의 ‘과감한 결단’

망 사용료와 관련한 통신업계와 플랫폼 사업자 사이 갈등은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은 지난해 “통신망에 대한 공정한 기여를 고려해야 한다”며 “방대한 데이터 트래픽을 생성해서 비즈니스를 영위하면서도 연결성에 대한 투자에 이바지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미국 대형 플랫폼 기업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였다.

지난해 유럽통신사업자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유럽에서 콘텐츠 사업을 영위하는 6개의 빅테크 플랫폼 기업(메타· 알파벳·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이 발생시키는 인터넷 트래픽은 전체 중 55%에 달했다. 이로 인한 추가 비용만 해마다 50조원에 육박한다. EU 측은 플랫폼 기업들이 현지 초고속 통신망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면서 폭증하는 트래픽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는다고 판단, 끊임없이 규제를 촉구해 왔다.

EU는 올 6월 ‘대규모 트래픽 발생기업’의 공정 기여, 즉 망 이용료 부담을 위한 정책 도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13일 채택했다. 결의안에는 디지털 전환을 위해 대규모 트래픽 기업들이 통신망 구축에 적절한 자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정책 기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빅테크에 데이터 트래픽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기가비트 연결법’도 올해 하반기 유럽의회 제출을 앞두고 있다.

네이버는 내고, 구글은 안 낸다? 형평성 논란

한편 국내 시장 상황은 ‘공정 기여’와는 거리가 멀다. 대다수 국내 기업들은 국내 통신사에 성실하게 망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가 통신 3사에 지불하는 망 사용료는 2016년 약 734억원, 2017년 약 1,141억원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서도 네이버가 지불하는 망 사용료는 유사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네이버의 지난 4분기 기준 망 트래픽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사진=unsplash

대다수의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구글을 비롯한 해외 업체들은 ‘납부 회피’에 급급하다. 최근 SK브로드밴드와의 긴 망 사용료 분쟁을 끝마친 넷플릭스 역시 장기간 망 사용료를 납부하지 않았으며, 메타의 경우 150억원 규모의 턱없이 적은 망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 사업자들은 이 같은 국내 망 사용료 납부 체계가 ‘역차별’이라고 호소한다.

통신사·최종 이용자·CP(콘텐츠 공급자) 간 적절한 역할 분담은 우리나라 시장에 자리 잡은 일종의 ‘질서’다. 국내·국외 CP의 99%는 소량의 트래픽에 대해서도 정상적으로 망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다. 문제는 대량의 트래픽을 유발하는 초대형 CP들은 이 같은 국내 시장 흐름에 맞서 “망 사용료를 납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매는 국내 담론, SK-넷플릭스 합의로 ‘도돌이표’

망 사용료 분쟁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분쟁의 중심축에 섰던 SK와 넷플릭스가 돌연 합의를 발표하며 논의가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2019년 SK 측은 엄청난 트래픽을 유발하는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 것은 ‘무임승차’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넷플릭스는 통신사가 최종 이용자와 CP가 양쪽에서 대가를 받는 것은 ‘이중 과금’이라고 반박하며 맞섰고, 분쟁은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3년 가까이 이어져온 두 기업의 소송전은 갑작스러운 분쟁 종결 선언으로 흐지부지됐다. SK가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넷플릭스와 협력하는 것을 택하면서다. 소송전의 물살을 타고 진행되던 국회의 망 사용료 관련 입법 시도는 순식간에 추진력을 잃게 됐다. 국회는 지금까지 소위 ‘넷플릭스방지법’으로 불리는 망 사용료 의무화 관련 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8건을 발의한 바 있다.

막강한 자본을 보유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 대비 국내 통신사업자는 힘이 부족하다. 제도가 제때 힘을 더해주지 못할 경우 국내 통신사는 트래픽 부담을 고스란히 감수하며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 논쟁에서 물러난 가운데, 남은 것은 국내 트래픽의 3분의 1가량을 발생시키는 구글뿐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거대 사업자 구글을 상대로 EU와 같은 ‘과감한 논쟁’을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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