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 논란 국내 공매도 제도, 개인·기관·외국인 공매도 진입장벽 일원화 어려운 이유는?

전체 공매도 거래 규모 중 개인 투자자는 2%, 기관·외국인 투자자는 98% 개인·기관·외국인 공매도 담보비율 및 상환 기한 일원화해야 한다? 금융당국 및 업계, “자본주의 시장 원리상 차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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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의 ‘뜨거운 감자’인 공매도와 관련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개인 투자자와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공매도 담보비율을 일원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실시간 감시 시스템 구축 요구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되레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을 불러와 종국적으로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반박했다.

금융 업계에서도 김 위원장과 궤를 같이하는 분위기다. 물론 개인과 기관·외국인 투자자 간 공매도 시장에서 진입장벽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더 큰 자본과 신용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들이 개인 투자자 대비 공매도 시장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원리상 당연한 순리라는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사진=금융위원회

김 금융위원장, “개인, 기관·외국인 투자자들 공매도 요건 일원화 쉽지 않다”

11일 김 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담보비율을 일원화하는 곳은 국제적으로 찾아볼 수 없고, 현실적으로도 일원화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못 박았다. 공매도 담보비율이란 주식 차입 시 요구되는 최소 담보유지비율을 뜻한다. 담보유지비율은 차입액 대비 보유해야 하는 담보 총액을 의미하는데, 현행상 개인투자자의 경우 120%, 기관·외국인 투자자는 105%가 적용되고 있다. 앞서 금융위는 개인 투자자의 공매도 담보비율을 기존 140%에서 120%로 낮춘 바 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기관 투자자들은 개인 투자자와 달리 별도 규제가 없는 데다 담보비율이 105% 수준으로 낮게 적용되고 있는 만큼 개인 투자자의 담보비율은 여전히 높은 것 아니냐’는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개인 투자자의 담보는 현금인 반면 기관은 주식이다. 즉 기관들의 경우 공매도 거래 방식 자체가 개인이 하는 대주 거래가 아닌 대차 거래 방식으로 하고 있다”며 “이때 주식을 헤어컷(유가증권 등의 가격 할인)해 담보로 인정하기 때문에 실제 담보비율은 140%를 훌쩍 넘어가는 만큼 개인보다 기관이 유리하다는 발언은 지금 상황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 시스템 구축 요구에 대해선 “공매도 전산시스템은 외국에서도 채택하지 않고 있다”며 “외국인 투자 자금이 ‘얼마나 빠지고 들어왔다’를 논의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가 중요한 나라인데, 타국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해 거래를 굳이 어렵게 하는 게 과연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정책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주식 배당, 옵션 등 주식을 빌리는 기관의 목적이 각기 다르고 전화, 이메일, 플랫폼 등 기관 주문 상식도 상이하다”며 “이런데 어떻게 실시간 파악을 하는가, 파악해도 기술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 증권 시장의 ‘뜨거운 감자’, 공매도 제도

공매도는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빌려서 매도한 뒤,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헐값에 되사들여 차익을 내는 주식 매매 방식이다. 사실 국내 공매도 제도는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늘상 ‘뜨거운 감자’로 인식돼 왔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비판점으로 삼는 가장 큰 지점은 공매도 제도가 개인 투자자들에겐 참여가 어려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자금력과 정보력 측면에서 원천적으로 불리한데, 공매도 상환기간(기관은 무제한, 개인은 90일마다 연장) 및 담보비율까지 기관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설정돼 있어 개인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공매도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다는 비판이다.

불법 공매도가 여전히 판치는 상황도 국내 공매도 시장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금융위에 따르면 불법 공매도 혐의로 올해 상반기 30곳에 총 89억8,805만원의 과태료 및 과징금이 부과됐다. 특히 에코프로의 자회사인 에코프로에이치엔·에코프로비엠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이노베이션 등 이차전지주를 겨냥한 불법 공매도가 적발됐다. 이렇듯 불법 공매도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다 보니, 개인 투자자들은 금융당국이 사후 조치가 아닌 시장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불법 공매도 적발 시스템은 구축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2018년 당시 금융위원장이 2019년 불법 공매도 적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으나 4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구축이 안 됐다”며 “국내 시장은 큰손들이 얼마든지 불법 공매도가 가능한 시스템인 만큼 걸리지 않고 있는 수많은 불법 공매도가 물 밑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금융위가 당초 개인 투자자들의 공매도 담보비율을 기존 140%에서 120%로 낮췄음에도 불구, 개인 공매도 비중은 외국인, 기관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의 공매도 참여율은 외국인·기관이 98%로 압도적인 반면, 개인은 1~2%에 불과한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을 통해 개인의 공매도 참여를 확대했으나 개인의 공매도 시장 진입은 여전히 제도 개선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국내 공매도 제도가 ‘외국인·기관 투자자들의 놀이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일각에선 개인의 참여를 확대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과 기관의 허들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일원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듯

이번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매도 개인·기관·외국인 담보비율 일원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 것도 모두 이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개인 투자자들의 공매도 허들을 낮추는 게 아닌, 외국인·기관의 공매도 진입장벽을 높여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공매도 제도가 사실상 외국인과 기관에만 국한돼 활용되고 있는 데다, 앞서 살펴봤듯 공매도 담보비율을 낮추는 등의 관련 규제 완화가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2016~2019년 통계에서 공매도 주체의 수익액은 개인 신용 투자 대비 39배나 많았다”며 “외국인과 기관·개인의 공매도 상환 기관을 90일로 통일하는 한편, 공매도 담보비율도 130%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금융 업계에선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직 IB 업계 관계자 A씨는 “개인이 기관에 비해 상대적 열위에 있는 것은 불공정한 차별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며 “가령 은행은 대기업, 중소기업, 소득이 좋은 개인, 소득이 약한 개인에 대해 대출 금리를 다르게 적용하는데,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맥락으로 기관 투자자가 개인 투자자 대비 더 큰 신용으로 공매도 시장에서 엣지를 갖는 건 자본주의 원리상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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