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국내 해운산업, 정부 5,000억원 규모 ‘위기대응 펀드’ 조성

5,000억원 규모 ‘해운산업 위기대응 펀드’, 운임 하락·ESG 규제 강화 선제 조치 수출 의존도 높은 우리나라 ‘기간산업’인 해운업, 코로나19 이후 악재 겹치며 ‘침체기’ 부채 비율 급증에 되살아나는 ‘한진해운’의 악몽, 탄탄한 정부 지원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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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캔싱턴호텔에서 열린 ‘해운산업 위기대응펀드 출범 및 선화주 상생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왼쪽부터) 김양수 해양진흥공사 사장,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김광수 포스코 플로우 대표, 정태순 해운협회 회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해양수산부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가 해운산업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최대 1조원 규모의 위기대응 펀드를 조성한다. 해수부와 해진공은 27일 서울 켄싱턴 호텔 그랜드스테이션홀에서 ‘해운산업 위기대응 펀드(이하 위기대응 펀드)’의 출범을 알리고 선·화주 간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해운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최근 △운임 하락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글로벌 ESG 규제 강화 △경기 침체로 인한 물동량 감소 등 악재가 겹치며 해운산업에 드리운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는 상황이다.

해운산업 구조조정·ESG 지원 펀드 출자

위기대응 펀드는 본격적인 해운업 저시황기 진입과 친환경 규제 강화에 앞선 선제 조치로, 해운산업 구조조정 지원 펀드와 국적선사 환경·사회·투명경영(ESG) 지원 펀드로 구성됐다. 최초 5,000억원 규모(각 2,500억원)로 출범하며, 향후 민간 투자자 유치와 국적선사의 투자 수요에 따라 최대 1조원 규모까지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해운산업 구조조정 지원 펀드는 국적선사에 부실 징후나 경영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전·사후 구조조정 또는 국적선사 간 인수합병(M&A)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과거 해운산업 구조조정은 사후적 구조조정에 국한돼 있었으며, 위기가 닥쳤을 경우 국적선사의 선대·터미널 등 핵심 자산을 불가피하게 매각해야 했다. 정부는 구조조정 지원 펀드를 통해 경영 위기 발생 전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지원, 국내 해운업의 중심축인 핵심 자산을 보호하겠다는 구상이다.

국적선사 환경·사회·투명경영(ESG) 지원 펀드는 국적 중소선사의 친환경 선박 확보 지원, 국적선사가 발행하는 녹색채권(자금 활용 용도를 환경친화적 프로젝트 투자로 한정하여 발행하는 채권) 인수 지원 등에 중점을 둔다. 특히 중소선사의 친환경 선대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국내 선사가 국제 해운시장의 ‘탈탄소 규제’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선·화주 간 상생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업무협약에는 주요 화주 기업인 포스코플로우·현대글로비스와 한국해운협회가 각 업계를 대표해 참여했으며, 이 펀드의 주요 투자기관인 해진공이 함께했다. 이들 기관은 ‘국적선사의 환경·사회·투명경영(ESG) 역량 강화를 통한 화주 기업의 친환경 공급망 구축’이라는 공동 목표를 가지고 ‘국적선사 환경·사회·투명경영(ESG) 지원 펀드’를 활용한 친환경 선박 공동 투자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휘청이는 국내 해운산업

해운산업은 우리나라의 주요 기간산업 중 하나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대외무역 의존도가 59.8%(일본 31.5%, 중국 28.2%)로 매우 높은 상태이며, 수출입 화물의 99.7%가 선박을 통해 운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운산업은 철강‧물류‧조선 등 전방 산업은 물론 해상보험‧선박금융 등 고부가가치 후방 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커 그 중요도가 더욱 높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이례적으로 상승했던 해상 운임이 급락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 △교역 규모 정체 △선박 공급 과잉 등 악재가 겹치며 글로벌 해운산업 전반이 침체하고 있다. 특히 2021년 가파른 물동량 회복에 따른 역기저 효과, 러시아-우크라이나발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부터 출발한 해상 운임 하락 기조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우리나라 해운기업들은 ‘적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원가 구조의 취약성, 운임 하락, 유가 인상 등이 적자 누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올해부터 강화되는 국제 해운 탈탄소 규제와 해운 기업의 ESG 경영 요구도 국적선사에는 무시할 수 없는 부담 요인이다.

‘한진해운’ 선례 반복해선 안 된다

국내 해운산업의 가장 큰 우려는 높은 부채비율에 따른 금융 부담이다. 과거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사례에서 부채비율 급증의 위험성이 부각된 바 있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15년 동안 한진해운의 운영 선박은 43척에서 110척으로 2.5배 늘었다. 글로벌 해운 시장의 ‘공급 확대 경쟁’에 동참하며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선박 조달 비용에 대한 상환 부담에 시달리며 재정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고, 운임 하락 및 연료비 인상 등 외부 환경 악재가 겹치며 궁지에 몰리게 됐다. 정부 역시 한진해운의 편이 아니었다. 당시 해운산업 지원은 간접적인 지원과 자산 매각을 통한 자구책 시행 유도가 대부분이었으며, 자금 지원책인 선박 펀드, 회사채 만기 연장 등은 기업에 시중보다 높은 금리(9~12%)를 적용했다. 결과적으로 정부 지원책이 기업에 더 큰 재정적 부담을 안긴 것이다.

한국 해운산업은 한진해운의 파산 이후 훼손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최근 해운 운임이 미끄러지고 해운기업 적자가 쌓이자, 업계는 한진해운 사태의 ‘데자뷔’를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과연 이번 위기대응 펀드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급격히 침체한 국내 해운산업을 끌어올리는 ‘동아줄’이 될 수 있을까. 이번을 계기로 국내 해운산업이 변화하는 시장에 빠르게 적응하고, 국가 기간산업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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