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대규모 감원 나선 ‘그랩’, 매출 하락·투자자 압박에 굴복했다

‘소극적’ 비용 절감 견지하던 그랩, 결국 영업손실 못 면해 아직은 시장 ‘선도’하고 있지만, 이대로면 이미지 실추할 듯 인원 감축은 세계적 추세, 우리나라도 고용 불안 심각

pabii research
사진=그랩

싱가포르의 공유 차량 서비스 업체 ‘그랩’이 대규모 감원에 나선다. 그간 그랩은 실적 부진 등에 따른 성장 둔화 압박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해고를 단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리해고 등 비용 절감을 촉구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대규모 감원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해고에 소극적이던 그랩, 투자자들 압박 못 이긴 듯

2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전체 직원의 11%인 1,00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탄 CEO는 “이번 감원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정리해고”라며 “이번 해고 결정은 수익성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라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적 개편”이라고 힘줘 말했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이 같은 그랩의 해고에 대해 “이번 감원은 그랩이 더 빠른 비용 절감에 나서라는 투자자들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랩은 그동안 여타 업체들보다 감원 등 비용 절감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영업손실 및 성장 둔화 우려를 키워왔다.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단 의미다.

동남아시아 배달 시장 선도하는 ‘그랩’

그랩은 현재 동남아시아의 차량 호출 및 배달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실제 지난 2020년 그랩은 베트남 시장에서 75%에 가까운 압도적인 점유율로 경쟁사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동남아 사람들은 택시기사들의 불친절함과 바가지 요금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껴왔다. 때로는 택시기사의 강간 및 강도 등 강력 범죄를 걱정해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랩은 ‘별점제’를 시행함으로써 이 같은 최악의 동남아 택시기사들을 약 90% 소멸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별점이 곧 평판인 서비스에서 그랩 기사들은 행동 하나하나에 보다 신경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랩푸드, 그랩페이 등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결이 다른 서비스로까지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그랩 계정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서비스를 다 누려볼 수 있는 ‘그랩 공화국’을 구축한 셈이다.

그랩은 차량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며 얻은 거대한 데이터셋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통해선 타겟인 사람들의 이동 거리와 니즈가 몰리는 시간대 등 유의미한 빅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다. 이 같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운영상의 노하우를 쌓음으로써 새로운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탄탄대로인 줄 알았던 그랩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그랩은 인도네시아의 고투(GoTo)그룹 등과의 경쟁, 인플레이션 및 금리 인상 압박 등으로 성장 둔화 위기에 직면했다. 경쟁 업체들이 각종 프로모션과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면서 그랩의 사용자 증가세는 둔화했고, 이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그랩은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분기별 손실 폭을 줄였다고 발표했다. 올해 1분기 그랩의 순손실은 2억4,000만 달러(한화 약 3,093억6,000만원)로 전년 동기의 4억2,300만 달러보다 크게 줄었다. 하지만 1분기 총상품판매액(GMV·Gross Merchandise Value)은 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전체 GMV 성장률은 24%였다.

인원 감축, 韓도 예외 없다

인원 감축 등 비용 절감은 최근 금리 인상 등에 따른 경기 침체 상황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실제 그랩과 경쟁하고 있는 고투그룹과 싱가포르 전자상거래업체 씨(Sea) 등은 갈수록 고조되는 경기 침체 불안감에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등 적극적인 비용 절감에 나섰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도 감원 칼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엔 메타와 트위터에 이어 세일즈포스도 인력 최적화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다. 국내 주요 벤처·스타트업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에 따르면 올해 1월 해당 플랫폼을 통해 입사 지원을 한 경우는 총 16만6,683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10만4,560건 대비 59.4%나 늘어난 건데,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통보받거나 해고 불안감이 커지자 새 직장을 찾으려는 인력들이 구직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 결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 불안이 높아지자 이직이 잦은 편인 IT 업계 내부에서는 노조 열풍이 불고 있다. 노조를 통해 공동 행동에 나섬으로써 기업의 권고사직, 정리해고 단행 등에 대응하겠단 취지다. 지난 4월엔 엔씨소프트의 노조 ‘우주정복’이 설립되기도 했다. 이처럼 IT 업계에서 노조가 설립된 건 이번이 다섯 번째다. 구글코리아에도 같은 달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구글코리아지부가 설립된 바 있다.

고용 불안 심화에 구직자들의 속은 타들어 가기만 한다. 반면 기업들의 움직임은 둔하다. 원티드랩에 올라온 1월 신규 구인 공고는 5,07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5% 줄었다. 그만큼 새 직원을 찾겠다 나선 회사들이 적다는 의미다. 채용으로 연결되는 사례도 줄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올 1월 합격 건수는 1,062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10.2%나 줄어든 수치다. 현재 분위기상 벤처 시장의 분위기 회복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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