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프로’ 당초 생산 목표보다 절반 이하로 낮춰, 복잡한 제조과정 등이 걸림돌

첫해 생산량 100만 대→40만 대 대폭 감축 전망 높은 제품 가격에 소비자·업계 반응 기대와 달리 ‘미지근’ 고해상도 유지하는 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서 ‘수율’ 문제가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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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확장현실 헤드셋 ‘비전프로’/사진=애플

애플이 내년 초 출시를 앞둔 확장현실(XR) 헤드셋 ‘비전프로’의 생산량을 대폭 줄일 것으로 보인다.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 수요와 복잡한 제조과정으로 인한 수율 문제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선 장기적으로 비전프로의 대중화 성공 가능성을 점치며 5년 내 2,000만 대가량의 누적 판매량을 달성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유일한 조립협력사에 목표 생산량 낮춰 주문

파이낸셜타임즈(FT)는 3일(현지 시간) 애플의 최대 조립협력사인 중국 럭스셰어가 2024년까지 40만 대 이하로 비전프로를 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또 다른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애플이 생산 첫해에 13만~15만 대에 해당하는 수량만 주문을 요구했다고도 전했다.

이 두 가지 수치 모두 애플이 당초 내부 목표로 정했던 첫 1년간 생산량에 크게 못 미친다. 애플은 지난달 5일 비전프로를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발매 첫 해 동안 100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애플과 럭스셰어 모두 파이낸셜타임즈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프로는 2014년 애플워치 이후 애플이 9년 만에 내놓은 착용형 공간 컴퓨터다. 지난 7년간 1천 명이 넘는 개발자들이 투입돼 완성한 야심작으로, 스키 고글 모양의 헤드셋을 착용한 사용자는 앱 화면과 영상 등이 현실 공간에 공존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눈동자 움직임과 목소리 등을 통해 앱을 실행하거나 멈출 수 있으며, 손가락을 움직여 가상 화면을 키우거나 줄일 수 있다.

당장의 수요는 그리 높지 않을 거라 판단했을 수도

시장에선 애플이 생산량 목표치를 대폭 낮춘 이유를 두고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힘이 실리는 주장은 애플이 당장 내년까지 비전프로의 수요가 기대치만큼 높지 않을 거라 판단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애플의 비전프로 출시 계획 발표 이후 소비자와 가상현실(VR) 업계의 반응은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지난달 정보통신매체 나인투파이브맥은 약 2만5천여 명을 대상으로 ‘비전프로 출시 후 구매 계획’을 묻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전체 응답자의 54% 이상(1만3,453명)이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 생각이 없다’고 응답한 반면, ‘구매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사용자는 약 37%(9,181명)에 불과했다.

아울러 비싼 제품 가격과 별개로 대중적이지 못한 가상현실 경험도 전문가들이 당장의 수요가 저조할 것으로 내다보는 이유다. 현재 가상현실을 비롯한 증강현실(AR) 시장은 이미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매직리프와 같은 업체들이 포진해 있으나, 이들 업체가 내놓은 기기 중 어느 것도 대중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IT저널리스트 마이클 가텐버그는 “애플이 비전프로를 통해 AR·VR기기가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위해 필요한 VR 경험 공유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대중화를 위한 전략의 부재를 지적했다.

애플의 확장현실 헤드셋 ‘비전프로’/사진=애플

복잡한 설계와 디자인, 공급망 문제까지 겹쳐

복잡한 제조과정으로 인한 수율 문제도 애플이 생산량 목표치를 낮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특히 비전프로의 디스플레이의 복잡한 설계와 디자인 과정이 애플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비전프로에는 2개의 마이크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와 1개의 곡면 렌즈 형태의 외부 디스플레이가 탑재된다. 문제는 이 부품들의 디자인 과정이 매우 복잡해 정상품 제조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생산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헤드셋 착용자가 외부를 보는 것과 동시에 내부에선 고해상도를 유지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제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제조업체들의 주장이다.

기술자문회사 D/D 어드바이저리의 반도체 분석가 제이 골드버그는 “비전프로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애플의 전자기기 가운데 가장 복잡한 제품”이라며 “애플은 현재 생산 고도화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애플도 비전프로를 통해 판매 첫해에는 이익을 거둘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비전프로의 실패를 예단하긴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플이 퍼스널 컴퓨팅 시장에서 혁신을 일궈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시장 진입 초창기 수요 예측과 생산량 확대에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 판매량은 늘어날 것이란 주장이다.

마이클 가텐버그는 “만일 애플이 대규모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이 이것을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으로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면, 비전프로는 1984년 매킨토시를 선보인 이후 애플의 가장 큰 혁신이 될 것”이라며 “이는 50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한 회사만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제품이고, 실패의 대가는 단순히 30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한 회사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어 소비자 기기의 대중화 기점인 2,000만 대 누적 판매까지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캐널리스의 제이슨 로 애널리스트는 “2024년에는 35만 대 생산에 그치겠지만, 5년 후에는 1,260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제한된 생산량이 오히려 애플의 고객들을 더욱 끌어모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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