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대학 국제화,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 절반이 한국계

국내 대학 연구환경 열악, 우수 인재 유치 어려워 까다로운 영주권 취득 절차, 외국인 교수 이탈로 이어져 학생 수 감소 등 대학 위기 극복 위해 정착 유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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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유학생 등 외국인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교육부

국공립대가 국제화를 강조하며 외국인 교원의 채용을 늘리고 있지만 외국인 교원의 절반이 한국계 외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아 고급 연구인력의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무늬만 외국인’인 한국계 교원의 채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교원의 근속년수 11.9년, 전체 평균보다 6년 짧아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국공립대학 39곳 중 27곳이 외국인 교원을 채용하고 있으며 이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11.9년으로 집계됐다. 전체 교원의 평균 근속년수는 18.1년으로 외국인 교원의 근속년수가 6년 이상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비영어권 국가로 외국인의 생활 적응이 쉽지 않은 데다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처우나 연구환경이 좋지 않아 실력 있는 인력이 유입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인 교원의 경우 E1 비자를 발급받아 최대 5년까지 체류할 수 있다. 고용이 지속될 경우 E1 비자를 연장하거나 체류 목적에 따라 비자를 변경할 수 있지만 비자를 연장하면서까지 한국에서 연구활동을 이어가는 외국인 교원은 드물다. 더욱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높은 소득 수준을 증명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 교원의 근속년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같이 고급인력의 확보가 쉽지 않다 보니 외국인 교원 채용 시 한국계 외국인의 지원이 늘어나면서 현재 한국계가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 의원실에 따르면 국공립대 27곳에 재직 중인 외국인 교원 291명 중 한국계는 85명으로 47%의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계가 과반인 대학은 15곳이며 외국인 교원 모두가 한국계인 대학도 7곳이나 됐다. 일부 대학들이 대학 평가에 대응하기 위해 ‘구색 맞추기용’으로 외국인 교원의 비중을 늘리면서 상대적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쉬운 한국계 교원을 유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활적응 등 지원체계 미흡한 상태에서 외국인 비중 확대

한국계 외국인 채용 사례가 늘어나면서 역차별의 문제도 제기됐다. 한국인 교수의 경우 은퇴 등 결원에 따른 채용이 있지만 사실상 포화상태인 데 반해 외국인 교원 쿼터가 늘어나면서 아예 채용단계부터 외국 국적자만 지원하도록 제한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내국인 연구자의 지원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국인 교원의 절반을 한국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실제 국공립대 한국계 교원 중 88%가 한국에서 출생해 유학 기간 중 미국, 캐나다 등으로 국적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외국인 교원 자리에 급속히 늘어나면서 해외 유학파들 사이에서도 외국인 교원이 임용되기가 쉽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이후 정부가 대학의 국제화를 강조하면서 대학 평가기관들은 국제화 척도인 영어 수업과 외국인 교원의 비중을 확대했고 대학들은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외국인 교수를 대거 채용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다소 무리한 국제화 전략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영국 QS 세계 대학 랭킹 ‘국제화’ 부문에서 아시아권 대학 상위 50곳 중 20곳이 한국 대학이 차지할 만큼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교원의 생활 적응 등 지원체계가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들이 단순히 숫자 늘리기에만 치중하면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외국인 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불안정한 경력관리 시스템과 학내 주류로 편입할 수 없는 ‘유리 천장’을 경험한 외국인 교원들이 이탈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실제 외국인 교원의 증가세도 답보 상태에 있다. 강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27개 국공립대에 재직 중인 외국인 교원은 2019년 278명, 2020년 280명, 2021년 297명, 2022년 288명, 2023년 291명으로 평균 증가율이 2%에도 미치지 않았다. 그나마도 외국인 교원 대부분은 주로 영어 강의만을 전담하면서 학내 보직이나 대학원생 지도를 맡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외국인 교원의 석·박사 배출 실적도 내국인 교원에 비해 훨씬 적은 데다 논문 게재 건수도 2022년 기준 1인당 3.3개로 저조했다.

외국인 인재의 유치와 국내 정착을 위한 대학의 변화 필요

우수한 외국인 인재의 이탈은 비단 외국인 교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외국인은 모두 1,944명으로 10년 새 4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박사학위 취득 후 본국으로 귀국한 비율도 빠르게 증가했다. 한국 체류를 위해 비자를 받기도 어려운 데다 한국에 취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우수 외국인 인재의 국내 정착을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17일 교육부는 해외 인재를 지역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인재의 정착을 지원해 지역경제 활성화, 첨단분야 경쟁력 확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법무부도 과학기술 분야 해외 인재의 국내 정착을 장려하기 위해 ‘과학·기술 우수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선진국들은 이미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장학금 제공, 이민법 개혁 등 전략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학의 역량 강화를 위해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연구, 생활 환경을 개선해 한국을 정착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이는 지방소멸과 학생 수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 상황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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