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일정 수준 이상 기업만 복수의결권 행사 가능”, 법적 근거 ‘시행령’은 한계로 지적

복수의결권 시행령 입법예고한 중기부, 금액·지분 조건 제시 한시법 한계 지적하던 법조계도 “수긍할 수 있는 수준” 급변하는 시장 환경 반영하기 위한 고민 병행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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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개최된 ‘복수의결권 제도 정착을 위한 간담회’에서 권낙현 법무법인 이후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사진=벤처기업협회

중소벤처기업부가 오는 11월 시행을 앞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시행령 개정안을 21일 입법예고했다. 창업 후 100억원 이상의 누적 투자 유치 및 최종 투자 유치 금액 50억원 이상인 경우에 한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턱없이 낮은 기준으로 제도의 오남용을 막고 시장 연착륙을 위한 방안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급변하는 시장의 환경을 반영하기에는 ‘시행령’이라는 법적 근거가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5월 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처특별법)은 시행령에 제시된 금액 이상의 투자를 받아 창업자의 지분이 전체의 30% 이하가 되거나 최대 주주의 지위를 잃는 경우 복수의결권 주식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정 수준 경쟁력 확보한 스타트업에 복수의결권 인정, 업계는 반색

이날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 따르면 벤처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은 해당 금액 기준을 ‘총 100억원 이상 투자를 받았고, 마지막 투자 유치가 50억원 이상인 경우’로 명시했다. 금액 요건을 산정할 때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투자는 합산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제외 통보를 받은 기업의 기발생 복수의결권 주식은 즉시 보통 주식으로 전환된다. 이 경우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한 기업은 해당 사실을 즉각 주주에게 알리고, 발행 상황을 1개월 내에 중기부에 보고해야 한다. 위반 시에는 중기부의 직권조사를 비롯해 사안에 따라 100만원~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중기부는 앞서 16일 벤처기업협회와 정책간담회를 여는 등 시행령 발표를 앞두고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왔다. 임정욱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복수의결권 제도가 혁신 벤처기업의 성장을 단단히 뒷받침할 수 있도록 세심히 관리하겠다”고 밝히며 “업계의 의견을 적극 개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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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결권 제도는 중소·벤처 기업이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창업주 지분이 과도하게 희석되며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도입됐다.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하고 5월 국무회의를 거친 해당 제도는 오는 11월 17일 시행을 위해 구체적인 시행령 마련 단계에 있다.

사업 확장기 ‘시리즈 C’ 도달해야 가시화

이번 발표된 시행령에 따르면 복수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창업 후 누적 투자 100억원 이상을 유치해야 하며, 최근 투자가 50억원 이상이 돼야 한다. 여기에 더해 창업자의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지거나 최대 주주의 지위를 잃는 경우에 한정된다. 일반적으로 벤처 업계에서는 한 기업의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품화 단계에 들어가는 시리즈 B 이상에 달하는 경우에 투자 유치가 50억원을 상회한다. 상품화 단계에 돌입하는 스타트업의 수가 많지 않은 탓에 시리즈 A 단계에서는 대규모 투자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시리즈 B에서 50억원 이상의 투자를 확보하고 100억원 이상의 누적 투자 금액을 달성하더라도 창업자의 지분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는 손에 꼽힐 정도다. 통상 벤처 투자는 다수의 투자자가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만큼 창업자의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결국 중기부가 제시한 복수의결권 행사 조건에 부합하려면 시리즈 C 이상의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시리즈 C 단계는 시리즈 B로 사업화에 성공한 스타트업의 사업을 스케일업하는 단계다. 기존 사업의 연관 사업을 추진하거나 공개 시장 상장(IPO), 인수합병(M&A)을 위한 투자가 이뤄지는 단계인 만큼 이때는 해당 스타트업의 사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풀이할 수 있다.

벤처 업계에서는 복수의결권 제도가 조금씩 구체화되는 데 반색을 표하고 있다.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함으로써 스타트업들이 성장과 혁신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경영철학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간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냈던 법조계에서도 중기부의 시행령 발표에 “시장의 상황과 특별법의 한계를 고려한 최선의 정책”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일몰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벤처특별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무분별한 복수의결권 허용이 기존 법 시스템을 해치는 데 큰 우려를 내보인 바 있다. 정부가 지난달 11일 ‘중소기업 육성 종합계획(2023년~2025년)’을 발표하며 벤처특별법을 상시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급변하는 시장에도 시행령 변경에는 3개월 소요?

다만 일각에서는 ‘누적 투자 유치 100억원 이상’, ‘최종 투자 유치 50억원 이상’ 등 투자 유치 조건이 금액으로 제시된 점을 들어 시장 상황을 즉각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벤처투자는 유동성 변화 등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 급증과 급감을 반복하는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기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4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급감했다. 지난해 상반기의 50억원과 올해 상반기의 50억원은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동일한 가치가 아닌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조건의 근거가 시행령이라는 데 있다. 우리 법은 국회에서 제정하는 성문법을 의미하는 법률에서 규정하지 못한 세부적인 내용들을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 등으로 정한다. 만일 환경이 급변해 일부를 개정할 필요가 있을 때 시행령은 ‘입법계획의 수립-입안-관계기관과의 협의-당정 협의-입법예고-규제심사-법제처심사-차관회의-대통령 재가-공포’의 10단계를 거쳐야 한다. 여야 합의가 수월하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통상 3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시장의 상황은 이 기간에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전문가들은 시행령의 하위 개념인 시행규칙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한다. 총리소속 기관 또는 중앙부처에서 마련하는 시행규칙은 일부 개정이 필요할 때 시행령과 동일한 흐름 속에서 ‘법제처 심사-차관회의-대통령 재가’의 세 단계를 생략하고 7단계의 과정만 거치면 되는데, 이 과정에서 통상 4~6주의 시간이 단축된다.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인 만큼 복수의결권의 원활한 추진 동력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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