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0만원으로 국채 투자 가능”, 시장 반응은 ‘미지근’

‘저위험 중수익’ 국채 발행 소식에 시장 참여자들 ‘시큰둥’ 2009년 출시된 국고채 ETF, 일찌감치 시장 안착 “안정성은 강점, 유동성 한계 극복하려는 고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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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개인투자자들이 10만원가량의 소액으로도 국채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동안 기관이나 고액 자산가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국채 투자가 일반인 투자자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면서 ‘저위험 중수익’을 내세운 국채를 향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시장 참여자들은 다소 미온적인 반응을 내보이고 있다.

만기는 10년 이상, 금리는 3%대 후반 예상

27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개인 투자용 국채 발행에 대한 근거를 포함한 「국채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마치고 2024년 상반기 개인 투자용 국채 출시를 위해 관련 업계와 세부 사항을 막바지 조율 중이다. 정부는 개인 투자용 국채의 최소 투자액은 10만원, 연 최대 투자액은 1억원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번 개정안은 주로 증권사를 통해 진행되던 개인들의 국채 투자가 각종 불이익을 이유로 현저히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피롯됐다. 실제로 우리나라 개인 투자자의 국채 보유 비중(2021년 기준)은 0.1% 이하로, 영국(9.9%)과 싱가포르(5.1%), 일본(2.4%), 미국(0.5%) 등 주요국에 비해 매우 낮은 기록이다.

개인 투자용 국채는 기재부 장관이 사전 공고한 이자율로 발행된다는 점에서 공개 시장 내 입찰 방식으로 발행되는 일반 국고채와 구분된다. 정부는 발행 시점의 시장금리를 기준으로 개인 투자용 국채 금리를 결정할 방침이다. 시장에서는 현재 금리 수준을 고려했을 때 3%대 중반에서 4%대 초반으로 국채 금리가 정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기 보유 시에는 매입액 2억원 한도로 이자소득에 대해 14% 세율이 적용되며, 가산금리가 적용된다. 만기는 10년 또는 20년의 장기물로, 중간에 일반 채권이나 주식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파는 것은 할 수 없다. 만약 중도 현금화가 필요할 때는 정부가 이를 다시 매입하는 중도환매 방식을 따라야 한다. 이때 세제 혜택 등은 적용되지 않으며, 추가 페널티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무조건 10년 또는 20년의 만기를 모두 채워야만 예정된 원금과 이자를 일괄 수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국민 중장기 자산 형성을 취지로 개인 투자용 국채를 발행하는 만큼 만기를 최대한 길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반 은행보다 높은 금리와 만기 보유에 따른 절세 혜택이 장점”이라고 강조하며 “이르면 내달 국무회의에 관련 내용이 안건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동성 높은 국고채 ETF 있는데 굳이?”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의 발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09년 7월 출시된 국고채 상장지수펀드(ETF)가 버젓이 판매 중인 만큼 10년 넘는 초장기 국채의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고채 ETF는 국채 시장의 수익률 변동 또는 가격변화를 일정 간격으로 지수화한 국고채 관련 채권지수를 추적하는 펀드다. 최소 5만원의 금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며, 주식처럼 거래소시장을 통해 자유롭게 매매가 가능하다는 특징 덕에 빠른 속도로 투자자를 늘려 왔다.

국고채 ETF는 채권지수를 따라 움직이는 인덱스펀드인 탓에 지수 등락에 따른 원본 손실이 나타날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개별종목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건너뛸 수 있고 시장의 방향성에 대해 투자한다는 점에서 투자의 용이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시장 대표지수에 투자하는 분산투자의 효과를 기대하는 투자자도 많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고채 ETF 등 채권형 ETF 설정액은 올해 4월 기준 17조3,70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13조2,681억원) 대비 4조1,025억원(30.9%) 증가한 수치다.

높은 안정성에도 화폐의 시간가치 배제할 수 없어

전문가들은 명확한 대안이 존재하는 만큼 개인 투자용 국채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채 발행 잔액이 1,100조원을 돌파하면서 기관투자자 위주로 운영되는 현재 국채 시장 구조에서는 더 이상 잔액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정부의 위기감이 개인투자용 국채의 발행 배경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요 기반이 약해지면 국채 금리가 상승해 국가의 이자 부담은 늘고, 회사채 시장으로도 상승세가 옮겨붙어 기업 자금 조달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개인 투자용 국채 발행으로 국채 수요 채널을 확대하고 국고채 조달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전체 국채 발행량에는 한도가 있어 개인투자용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일반 국고채 발행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국고채 금리가 낮아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개인투자용 국채 1조원 발행으로 국고채 발행량이 1조원 줄어들면 발행(조달) 금리는 1.0~1.2bp 떨어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투자용 국채의 핵심이 만기 보유에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꼽힌다. 국채는 국가가 부도나지 않는 이상 원금과 이자가 모두 보장되는 투자 대상으로, 안정성 면에서는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 10년에서 20년까지 자금이 묶인다는 점에서 ‘화폐의 시간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연 3.5%의 금리로 1억원의 자금을 20년 만기 국채에 투자할 경우, 만기 원리금은 약 1억9,900만원이다. 이 가운데 이자 소득인 9,900만원에 14%의 이자소득세를 공제하면 실제 손에 쥐게 되는 금액은 약 1억8,514만원이다. 20년 후에 손에 쥐게 될 1억8,514만원이 지금의 1억원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닐 것이라고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개인투자용 국채는 안정성이 강점인 상품이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유동성이 제한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개인투자용 국채를 담보로 대출을 시행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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