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건설사 덮친 ‘돈맥경화’, 경제 ‘뇌관’ 건설업계 줄도산 위기론 확산

올 상반기 종합건설사 폐업 218건, 전문건설업체 폐업 1,158건 건설업 대출 규모 증가세 가팔라, 지난해 4분기 67조8,000억원 수준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조달 여건 악화 개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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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주택 현황/출처=대한건설협회

건설현장이 고금리와 미분양 물량 적채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LH 철근 누락 사태, GS건설 부실공사, 새마을금고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불안감 등 대내외적 분위기가 악화되면서 자금 및 리스크 관리 여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사는 고사 직전인 상황이다.

건설업계 위기론 ‘팽배’, 중소 건설사 한계기업 비중 증가

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건설업계의 자금경색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중소 건설사와 시행업계는 올 하반기 금리 인상과 건설사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또 한번 가시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적 감소와 자금난이 최근 1~2년간 이어지면서 더 이상 버틸 체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방 중소 건설사 한계기업(영업이익이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 비중은 2021년 12.3%에서 지난해 16.7%로 증가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218건으로 지난해 전체 폐업건수(261건)의 85%에 달한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96.4%나 증가했다. 종합건설사의 폐업은 전문건설업체의 연쇄 폐업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올 상반기 폐업한 전문건설업체는 1,1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47건)보다 22.4%가량 늘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이미 5곳 안팎의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아파트 브랜드 ‘썬앤빌’로 알려진 건설업체 HN Inc(에이치엔아이엔씨)는 지난 3월 회생절차에 돌입했고, 아파트 브랜드 ‘줌(ZOOM)’으로 알려진 중견건설사 대창기업, ‘해피트리’로 유명한 신일건설도 올 상반기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해엔 우석건설, 동원건설산업, 대우조선해양건설 등이 부도를 맞았다. 경남에서 기반을 다져온 동원건설산업, 주상복합 브랜드 ‘엘크루’를 보유한 대우조선해양건설 등도 계속된 자금난으로 최종 부도 처리됐다.

사진=레고랜드 홈페이지

부동산 침체·자금조달 상황 악화, 중소 건설사 ‘위기감’

중소 건설업계가 유독 어려운 건 부동산 시장 침체와 관련이 깊다. 집값 하락과 고금리에 따른 분양경기 악화, 청약시장 서울 쏠림 현상 등으로 늘어나는 지방 미분양은 중소 건설사에 부실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말 기준 미분양 주택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미분양 주택은 6만6,388가구로, 이 가운데 수도권 미분양 물량은 1만559가구지만 지방 미분양은 5만5,829가구에 달했다. 지방 미분양 물량이 전체의 85%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 분양시장 참패, 미분양 물량 증가에 대한 부담으로 건축허가, 착공, 준공 등도 모두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국토부가 공개한 올 상반기 건설산업 현황에 따르면 건축 인허가 면적은 7,202만9,000㎡로 전년 동기 대비 22.6% 줄었고, 같은 기간 착공면적은 3,592만㎡로 38.5% 감소했다. 주택인허가 실적은 18만9,213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27.2%, 분양 승인 실적은 6만6,447가구로 같은 기간 43% 줄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건 일부 서울 대형 건설사의 이야기”라며 “중소형 건설사는 여유 자금이 없어 당장 억지로 수주를 해도 공사비 지출로 분양가를 시장 상황에 맞추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올 하반기에도 자금조달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건설경기는 당분간 고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 수익성, 유동성 악화로 주식을 통한 자금조달, 신용등급 개선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말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롯데건설, 태영건설, 한신공영 등 일부 건설사에 대한 신용등급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건설업 대출 규모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 건설업 대출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6년 4분기 37조7,000억원이던 건설업 대출규모는 지난해 4분기 67조8,000억원 규모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금리 인상과 더불어 부동산 PF 부실화 우려로 건설업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건설사들이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에 집중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금리 인상 및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채권시장 신용경색, 부동산 PF 부실화 우려 등으로 건설업 자금조달 여건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 건설사 줄도산 우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지방 권역 중소 건설사의 줄도산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연쇄 부도’의 공포가 다시금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도 쏟아낸다. 지방 및 중소 건설사의 금융권 대출길은 거의 막혀 있는 상태다. 최근 저축은행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건설사들은 신규사업을 위한 PF대출은 물론이고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조차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소 건설사 입장에선 사실상 구멍이 없는 셈이다.

문제는 중소 건설사의 붕괴는 향후 주택공급 시스템 붕괴, 실업 대란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특히 민간 아파트를 건설 중이던 건설사가 파산하게 되면 아파트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떼이거나 묶이는 경우가 발생하고, 피인수되지 않고 청산될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해당 건설사에 대출이나 채권 및 주식을 보유한 투자 및 채권자들 또한 적잖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업계에선 기업들의 공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가 상승으로 분양가를 내릴 수 없으니 자잿값 등 원가를 줄여 숨통을 트게 해달라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구제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 자체에는 다소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1997년 IMF 당시 대기업도 문을 닫았는데, 큰 틀에선 공적 자금 투입 없이 한계기업과 부실기업을 정리한 측면이 있다”며 “기업이 수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는 등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중소 건설사 줄도산이 현실화될 경우 경제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 전망되는 만큼 의미 있는 수준의 정부 지원은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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